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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Dec 03. 2023

반모임을 때려치우다

우리 선 긋고 웃고 살아요


반모임. 내 아이와 같은 반 친구 엄마들과의 모임을 지칭하는 말이다.

아이 유치원시절 처음 반모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육아로 외롭고 지쳐있던 난 반모임을 통해 나와 비슷한 환경에 놓인 엄마들과 만나 서로 위로하고 공감받고 싶었다. 

반대표의 연락으로 동네 키즈카페에서 첫 반모임이 이루어졌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은근히 서로를 스캔하며 나와 뜻이 맞을만한 엄마를 찾아 눈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모임은 아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서로 인사를 나누는 그 정도의 분위기였다. 곧 그룹톡이 만들어졌고 이날 이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카톡! 소리는 마치 내 일상 속 배경음악처럼 깔리기 시작했다. 그룹톡 속 대부분 내용은 오늘 만남이 너무 좋았다며 어서 다음만남을 잡아보자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그렇게 많이 심하게 좋으셨나. 난 싫은 건 아니었지만 입꼬리에 착한 미소를 띠고 있느라 경련도 나는 것 같았고 서로 살아온 방식이 너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인지 공통적인 화제도 쉽지 않았고 자리가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생각관 다르게 그룹톡엔 어서어서 다시 만나자며 귀여운 이모티콘이 마구 올라오고 있었고 난 대답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이 손가락만 머뭇거렸다.



다음 만남은 첫 모임 때 나오시지 못했던 워킹맘의 주도하에 주말모임으로 잡혔다. 워킹맘께서는 같은 반 엄마들과 둘째까지 포함된 열명이 넘는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초대하셨다. 평범한 20평대의 아파트였던 집은 그날 꿈과 희망의 나라 롯데월드보다 더 붐벼대며 난장판이 되어갔고 부엌에선 엄마들의 술판이 벌어졌다. 털털한 성격의 워킹맘께서는 아이가 3개월이 되자마자 시어머님께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하셨기에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으셨고 대신 회사에 대한 스트레스를 늘어놓으시며 말술을 들이켜기 시작하셨다. 난 뒤엉켜서 노는 아이들 사이에 혹여나 작은 체구의 내 아이가 다치지는 않을까 싶어서 앉아있지도 서있지도 못하는 가시방석 자세로 아이를 쫓아다녔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이런 게 공동육아의 제맛이라며 술을 들이켜시며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도 않았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자리를 털고 나올 수 있었지만 그날로 끝이 아니었다. 이날 이후로 돌아가면서 아이들과 엄마들을 집으로 초대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룰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엄마들의 유형도 다양했다. 온 정성을 다해 아이들과 엄마들의 음식을 준비해 놓는 엄마도 있는 한편 반찬가게에서 아이들 음식만 적당히 주문해 주고 밤 9시가 다되도록 엄마들에겐 커피 한잔만 내놓는 자린고비 엄마도 있었다. 그런 날엔 그 엄마를 제외한 새로운 그룹톡이 생겨났고 자린고비 엄마 때문에 배고파 죽을 뻔했다며 은근히 흉보는 말들이 가득했다.


반모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모임의 의미 따윈 퇴색되어 갔다. 여고생들도 하지 않을 편 가르기부터 뒷말하기, 뒷말하고 난 아닌척하기, 몰래 모임 따로 잡기, SNS로 돌려서 흉보기 등 각양각색의 난투극들로 극에 달해갔다. 엄마들의 전쟁은 늘 수면아래에서만 우아하게 이루어졌기에 아이들 하교 때 서로 얼굴을 마주쳐도 웃고 인사하는 건 여전했다. 난 15년이 넘게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온갖 진상 광고주들을 겪어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이상하고 기이한 경험들은 처음 겪어 보았다. 어느 누구의 편에도 설 수 없었고 어느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암암리에 다가왔던 내 차례의 모임을 치른 후 아이와 난 심한 몸살을 앓았다. 도대체 지금 난 뭐 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를 위한 모임이라고 해놓고 막상 내 아이는 또래보다 작은 체구에 잔병치례가 많아서 모임이 끝나면 매번 고열에 시달렸고 나 역시 외향적인 성향이 아니었기에 반모임만 다녀오면 온몸에 에너지가 다 빨려나간 것 같았다. 엄마들에게 기대했던 위로와 공감 같은 건 나의 단꿈에 불과했다. 심리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던 난 모임을 피하기 시작했고 엄마들이 모여있는 걸 볼 때면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은 피해의식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누가 나를 욕하는 건 아닐지 내 아이가 피해를 입는 건 아닌지 매의 눈으로 sns를 살펴보며 정신은 여전히 반모임에 붙들려 있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나는 지금 무엇이 두려워 무엇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건 내가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나약하고 전전긍긍 남의 눈치를 보며 내 하루를 필요 없는 감정소모에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난 거의 2년간 얽매여있던 엄마들과의 관계를 확실히 끊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누가 뭐라고 욕을 하든 나에겐 필요 없는 인연이라는 결론을 냈고 더 이상 그들에게 내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철저히 이기적이 되고 싶었다. 마음을 나눈 동생 한 명에게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양해를 구했고 반모임 엄마들의 연락처를 모두 삭제해 버렸다. 한 명씩 삭제해 나갈 때마다 자신감이 올라왔다. 고민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자 더 이상 망설일 게 없었다. 지겹게 울리던 그룹톡에서도 ‘전 이만 탈퇴하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남긴 후 나와버렸고 그들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인스타그램도 탈퇴해 버렸다. 나는 그들 속에서 사라지기로 마음먹었고 그 누가 뭐라고 하든 귀담아듣지 않았고 내 갈길을 갔다. 


수면아래 사람들에겐 수면밖 세상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수면아래에서만 이루어지는 싸움에서 벗어나는 일은 수변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사람들이 타인에게 기울이는 관심은 생각보다 빨리 사그라든다. 어떤말을 하든 무슨말이 들리든 관심을 두지 않자 나는 그들의 모임 속에서 빠르게 사라져 갔고 반모임으로 인한 고민과 스트레스도 어느 순간 날아가버리기 시작했다. 

모임에 얽혀있던 시간들을 정리하자 아이와 둘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아이만 보고 내 아이만 생각할 수 있어서 자유로웠고 서점에도 가고 커피숍에도 가며 둘만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이 역시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을 제일 즐거워했다.

이젠 아이친구 엄마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지 않는다. 아이는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스스로 좋은 친구를 만들어갈 것이라 믿는다. 내가 할 일은 수면 위 서로의 공간에서 진심어린 안부를 묻고 각자의 삶을 응원하며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둘이라서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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