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터엄마는 되지 않겠어요
내 몸속엔 파이터맨이었던 아빠의 기질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언제나 말보단 주먹이 먼저 올라왔던 아빠의 육아법은 아마도 오은영박사가 지금 봤다면 “잠깐만요!!”를 수도 없이 외치며 아빠를 가정폭력범으로 경찰에 신고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욱하는 성격을 그대로 타고난 나의 언니는 일찌감치 가정을 꾸리는 일을 포기하고 혼자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언니가 한일중에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언니완 다르게 내향적 성격을 가진 나는 아빠의 성격은 하나도 안 닮았다는 말을 항상 들으며 컸지만 그건 내 깊고 깊은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다. 난 99%는 비교적 차분하지만 1% 정도는 누군가 발화시키면 미친년 저리 가라 싶을 정도로 광분하는 똘기를 품고 있다.
초등시절 내 뒤에 앉아 자꾸 내 머리를 잡아당기고 나를 놀려대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난 학교를 가기가 공포스러울 정도였기에 선생님께도 얘기해 봤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셨다. 어느 날 또다시 나를 놀리던 그아이를 참을 수 없던 난 조용하던 수업도중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뒤를 돌아 교과서를 들고 그아이 양쪽 싸대기를 연속 10회 후려쳤다. 불쌍한 그아이 얼굴에선 쌍코피가 흘러내렸고 사태파악을 못하고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던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서 난 분이 들풀려 씩씩대며 홀로 서있었다. 다행히 그 남자아이는 말썽쟁이였고 난 모범생이었기에 내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랬겠냐며 선생님께선 별다른 처벌을 하지 않으셨고 그 후로 그 남자아인 절대로 내 곁에 다가오지 않았다.
난 내 속에 흐르는 파이터아빠의 피를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 피를 갈아버리고 싶을 만큼 싫어했기에 난 언제나 1%의 발화지점까지 가지 않기 위해 억누르고 인내하고 참아냈다.
그런데 육아가 시작된 후 내 속에 꼭꼭 감춰놓았던 아빠의 피는 마구 소용돌이치며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이와 전쟁을 치를 때마다 난 끓어오르는 분노와 나도 모르게 올라오려는 손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 했다. 절대로 아빠의 손버릇을 내 아이에게 대물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내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악마 같은 본능은 나를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이가 5살쯤 무릎에 앉아 놀던 아이가 갑자기 내 뺨을 때린 일이 있었다. 그다지 의미가 있는 행동이거나 아플 정도는 아니었으나 난 순간적으로 눈이 돌아버렸다.
‘감히 네가 엄마를 때려?’ 파이터아빠로 인한 기억으로 인해 누군가 내 몸에 손을 대는 일에 유난히 민감했던 난 나를 때린 아이가 갑자기 작은 악마로 보였다. 내가 그렇게까지 너를 사랑해 줬는데 ‘감히’라는 생각뿐이 나지 않았다. 작은 가방에 아이짐들을 마구 욱여넣으며 이 집을 당장 나가버리라고 소리소리를 질러댔다.
아이는 공포에 질려서 눈물을 터트렸고 난 그런 아이의 작은 손목을 억세게 잡은 채 현관까지 끌고 갔다.
당장 나가버리라고. 너 같은 아이는 엄마한테 필요 없다고.
한번 터져버린 폭언은 빗발치듯 나오기 시작했고 아이는 울며 빌기 시작했다. 현관에 앉아 울며불며 비는 아이를 보는데 갑자기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보였다.
아빠는 내가 작은 잘못을 하나 해도 나를 집밖으로 내쫓곤 했다. 버릇없이 아빠를 쳐다봤다고. 밥값을 못한다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아빠는 분풀이를 하며 나를 현관밖으로 밀어버리곤 했다. 난 내 아이 앞에서 아빠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파이터아빠 딸에 딱 걸맞은 파이터엄마가 되어선 내 아이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폭언을 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순간 제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가 섬뜩했고 내 속에 흐르는 피가 소름 끼치게 싫었다. 아이를 안고 미안하다며 울고 또 울었다. 아이를 위한 눈물이기도 했지만 내 어린 시절의 나를 향한 눈물이기도 했다. 내 작은 아이는 아무 죄도 없었고 그때의 나 역시 아무 죄도 없었다.
나는 내 본능을 억누르는 게 아닌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용서를 해야 했다. 어린 시절의 난 아무 힘이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옳은 길을 선택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삶으로 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 모든 핑계를 아빠에게 돌리며 그 뒤에 숨는 게 아닌 내 삶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살아야 한다.
난 이제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박혜윤작가의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떠올린다.
화라는 화학물질이 뇌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데 90초가 걸린다고 한다. 90초가 지나도 계속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이 화학반응을 지속시키겠다는 나의 선택이다.
나의 선택. 이것이 가장 중요했다. 모든 선택권은 온전히 내게 있었다. 분노할 땐 모든 걸 잊고 그저 그대로 분노를 온몸으로 느끼고 나의 선택으로 90초 후 그 분노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감정을 다스렸고 내 속의 1%의 똘기는 점차 사라져 갔다.
어느새 9살이 된 아이가 가끔 내게 말한다.
“엄마는 잔소리꾼이지만 나한테 화를 내진 않아. 쪼끔 착한 엄마긴 해”
난 옳은 선택을 했다. 본능을 탓하며 파이터엄마의 길을 걷는 게 아닌 애정 어린 잔소리꾼 엄마의 길을 잘 걸어 나가고 있다. 내 화는 내가 다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