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bi미경 Dec 11. 2023

벤츠 때려치우다

레이, 넌 나의 벤츠야

   

똥차가고 벤츠 온다더니.

남편은 연애시절 벤츠를 몰고 있었다. 벤츠 때문에 남편을 꼬신건 아니었다. 그냥 정말 남편의 뒷태가 어여뻐서 꼬셨는데 덤으로 그놈이 벤츠를 타고 있었을 뿐이었다.(겹경사다) 하얀색 윤기가 좔좔 흐르는 벤츠는 우리의 연애시절을 함께 했다. 영원히 함께 할줄 알았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어느날 남편이 갑자기 사랑스런 벤츠를 팔아야한다는 날벼락 같은 말을 했다. 이렇게 보낼수 없다며 벤츠 문짝에 들러붙어 소리를 지르는 나에게 그때의 남친이었던 남편이 말했다.

“사실은.. 3년 유예할부로 산거였어.. 3년간 최소 이자만 내고 3년후엔 그대로 반납해야하는...”

뭐시라고?? 그럼 쉽게말하면 3년간 렌트한 차였단거네?? 우리차가 아니였네?? 렌트카였네??


그랬다. 저 차는 온전한 남편소유의 차가 아니었다. 신데렐라벤츠도 아니건만 3년이라는 시간의 종이 울리면 벤츠는 저 멀리 렌트카 요정에게 떠나야 하는 나완 맺어질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너였을 뿐이었다. 허무했다. 아주 맛있는 음식을 야금야금 아껴먹다가 순식간에 뺏긴 기분이었다. 내가 빌린차도 아니었고 남편도 무척이나 아쉬워했기에 더 이상 뭐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윤기 좔좔 흐르던 벤츠를 우리의 기억속에 파묻어야 했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의 맛을 이미 봐버렸기 때문일까. 기억속 그 벤츠는 파묻혀 있기는커녕 자꾸 튀어올라와 나를 유혹했다. 한번만 더 맛을 봐보라며. 이렇게 좋은차는 어디에도 없을것이라며.     


한동안 차 없이 생활했던 우린 아이가 생기고 난 후 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기 시작했다. 기억속에 묻어둔 벤츠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드디어 내가 나타날 때가 됐도다를 외치기 시작했다. 나만 들리리라 생각했던 그 외침을 남편 역시 토끼귀가 된채 귀 기울이고 있었다. 우린 귓가에 울리는 그 외침을 우리식으로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아이를 태우려면 안전성으로 유명한 독일차가 그렇게 좋다며. 독일차 중엔 역시 벤츠만한 차가 없다며. 우린 눈에 빛나는 광기를 뿜으며 결국 벤츠를 구입했다. 물론, 예전과 똑같이 3년 유예할부로. 말 그대로 내 소유도 아닌 렌트카를 비싼 이자를 내며 타기로 결심한 것이다. 유예할부든 뭐든 어찌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러워’가 절로 나오던지.     


아이가 놀이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등하교를 위해 벤츠는 내가 몰게 되었고 남편 역시 높아진 눈에 맞춰 또다른 수입차를 구매하게 되었다.(3년 유예할부로. 이젠 필수다) 우린 쌍 수입차 부부였다. 이미 성공의 폭죽을 터트린 것이다. 나란히 차를 몰고 나갈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다 우리만 보는 것 같았고 하늘을 나는듯 성공한 것 같은 기분에 어깨춤이 절로 나왔으며 자동차 핸들도 내 지시에 따라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비싼 이자는 어깨춤을 출 수 있는 댓가로 당연스레 훌훌 털어 드렸다. 우리가 거주하고 있던 신도시에는 높은 교육열만큼 엄마들의 치마바람도 상당했어서 아이들 학교 학원 앞에는 수입차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곤 했다. 나 또한 그 무리에 속해있다는 생각에 은근한 우월감이 올라오곤 했다. 그러나 동시에 뭔가 불편한 기분도 함께 들었다. 그 줄에 서 있을땐 마치 이미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이 삶이 가짜같다는 생각이 떨쳐지지가 않았다. 수입차를 유예할부한 것처럼 내 삶 또한 일정기한 동안 렌트된 삶 같았다.

개인의 능력과 조건, 취향에 따라 수입차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개인의 능력도 조건도 내 취향에도 맞지 않은 차를 있어 보이고 싶은 욕심 하나 때문에 한 대도 아닌 두 대나 소유, 아니 렌트하며 타고 있었다.


수입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필요에 의해 경차를 모는 사람들도 많았고 가까운 길은 걸어 다니며 한 대의 차량으로도 유지하는 집들도 많았다. 수입차의 빛나는 마크에 홀려있을땐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필요 없는지 자각하기 시작하자 점차 그들의 현명함이 더 빛나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수입차는 사실 전혀 필요가 없었다. 아이는 걸어서 10분 거리의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고 나는 엄마들과 브런치나 먹을때나 차를 몰았으며 남편 또한 출퇴근 거리가 멀어 차량유지비로 길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 꼴이었다. 점차 깃털같이 가볍게 느껴지던 벤츠 핸들이 돌처럼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아이 하교때 수입차들 사이에 줄서있는 내 모습 또한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차는 삶에 꼭 필요한 물품이지만 잘못 판단하면 사치품으로 전략해 버리고 만다. 나는 사치품으로 수입차를 몰고 다닐 만큼 성공한 여자도 아니었고 남편 역시 그 버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달콤한 유혹이었던 벤츠의 유예할부를 중도상환 해버렸다. 난 성공한 여자는 아니었지만 정신은 제자리로 돌아온 여자였다. 빛나던 마크의 벤츠는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고 다른 주인을 찾아 떠나갔다. 너무 일찍 터트렸던 폭죽은 거둬들였고 주변의 물음표 가득한 시선에도 미소로 응했다. 남편의 차 역시 중고시장에 이미 올려놓은 상태로 주인이 나타나주면 언제든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다.

필요에 의해 그리고 내 취향에 맞는 다른차를 예약해놓았다. 예전부터 계속 눈길이 가던 차였다. 귀엽고 실용만점인 경차 레이다. 그 차를 볼 때마다 미소가 절로 나오고 나랑 은근히 잘 어울리는 차라는 느낌이 떨칠 수가 없었다. 작은 몸집에 여러 실용성을 겸비한 레이를 몰면 겨드랑이에 날개를 단 듯이 자유자재로 이곳 저곳을 누빌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며칠 후면 내 곁으로 도착하는 레이는 유예할부가 아닌 나의 첫 정식 일반할부차이다.(부끄럽지만 이점 자랑하고싶다.) 남편도 수입차보단 레이를 모는 내가 더 잘 어울린다며 언제나 그랬듯이 내 선택에 박수를 보내준다.

레이와 잘 어울리는 여자.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멋진 한 쌍이 되어 산과 바다를 누벼보리라. 



레이 넌 나의 벤츠야


작가의 이전글 화, 때려치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