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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Dec 29. 2023

책 속에 온몸을 담구고파

나만의 인생책

 

어릴 때부터 책보는걸 즐겨했다. 성격도 내성적인데다가 무서운 아빠로 인해 주눅 든 어린시절을 보냈던 나에겐 꿈과 환상의 나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딱하나 책읽기였다. 내 단단한 머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줄만한 인문교양철학 장르의 책들을 어릴 때부터 즐겨봤더라면 문학소녀가 되어서 지금보단 한층 더 진지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난 주로 빨간색 핏빛표지가 빛이 나는 잔혹살인추리소설을 좋아했다. 시드니셀던(아시는가. 이 추리소설의 대가님을)에 빠져 살땐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지 한치 앞을 알수 없는 글솜씨에 빠져 소설가가 되는걸 상상해본적도 있었다. 그러나 추리소설 속 기발한 상상들을 음란하게는 할 자신이 있었지만 드러내놓고는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후 소설가는 내길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점차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 후 회사생활을 하면서 술독에 빠져 살 것 같은 여자가 독서에도 빠져 사는 반전을 들킬 때면 주변인들은 종종 놀라곤 했다. 책은 읽는것도 좋아하지만 좋은 책을 만날때면 내가 꼭 해보는 습관이 있다. 책에서 감명 받은 부분을 은근히 아무도 모르게 내 삶에 반영 시켜보는 것이다. 소소하게 작은 부분부터 큰 결심까지 책에서 얻는 지식이나 감정을 삶에 반영하다보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가 되가는 것 같은 혼자만의 만족감과 기쁨이 든다. 많은 책을 접했지만 그중 김슬기 작가의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를 읽은 후엔 육아 후 경단녀가 된 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했던 저자의 노력에 감명해 나 역시 이 책을 읽은 후부터 본격적으로 작가가 되기위해 노력해 올 수 있었다. 동물의 아픔에 대해 공감은 하고 있었으나 아무 실천도 해보지 않고 있던 중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을 읽은 후 시작하게 된 비건은 충동적인 시도에 비해 어느새 2년째 몸 건강, 마음 건강히 잘 유지 중에 있다. 책은 언제나 나를 움직이게 도와주었다.  

   

 한창 물질주의적 삶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그 끝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시점이었던 2년전 어느 겨울날 난 내 삶을 바꿔줄 운명의 책을 만나게 된다. 박혜윤작가의 ‘숲속의 자본주의자’이다. 이 책은 단순히 줄거리 요약으론 표현을 할 수 없는 통째로 씹고 뜯고 즐겨야 하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는 자본주의적인 삶을 내려놓고 미국 시골농장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를 해서 살아간다. 고학력의 교수직도 내려놓고 최대한 돈이 들지 않는 삶을 살기위해 소비를 줄이고 가족과 함께 똘똘 뭉쳐 각자의 역할을 하며 이상적인 삶을 산다. 이 책을 읽고난 후 내 심장은 요동쳤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두근거림과 설레임으로 몇 번씩 책을 다시 읽으며 밑줄치고 되내였다. 그동안 내가 가졌던 고민과 두려움들을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책은 나한테 말하고 있었다.     


 저자 역시 자본주의 삶을 살아왔었고 정상을 향해 끝없이 달리고 겪어봐보니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고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자본주의적 삶이 나쁜 것도 지금의 삶이 옳은것도 아닌 모두 다 삶의 지나온 한 과정일 뿐이며 지나온 과정중에 후회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미련없이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을 찾으라며 말해주고 있었다.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읽은 후 나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남들이 모르게끔 은근히 아무도 모르게 삶에 반영시키는 것이 아닌 드러내놓고 내가 바꾸고 싶은 부분을 하나씩 바꿔가며 내 삶을 움직여 보자고 결심하게 됐다. 남편과 긴 상의 후 고민만 하던 아이의 사교육부터 때려치웠고 무겁게 짊어지고만 있던 집을 던져버리기로 결심했다. 집을 내려놓기로 결심하자 그 후부터는 의외로 많은 부분들이 쉽게 버려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살고 싶어 했던 제주로 가기 위해선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남편의 회사를 버려야했다. 15년을 다닌 남편의 회사를 관두기까진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으나 평생직장이 될수 있는 곳은 아니였기에 우린 더 늦기전에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과정이 쉽진 않았다. 불안감은 시시때때로 언제 어디서든 밀려왔으며 주변에선 미쳤냐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친한 측근들은 하나같이 다 우리를 말렸고 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래도 내 결심은 확고했다. 타인의 시선이나 부모님의 의견으로 인해 내가 살고싶은 삶을 더 이상 미루고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언젠가 이뤄야 하는 꿈이 아닌 현재 내가 살고 싶은데로 사는게 진짜 삶이라 느껴졌다.    

  

 많은걸 정리하는 나날 중 운이 좋게도 숲속의 자본주의자 저자이신 박혜윤작가님과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고민이 많던 시절 작가님 책을 접하게 되고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지금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위해 많은걸 바꾸고 되돌리려 한다고. 많은 고민 끝에 제주이주를 결심하고 나니 물질주의에 빠져 살았던 내 지난 시간들이 너무나 부끄럽다는 나의 얘기에 작가님께선 말씀하셨다.


‘물질주의가 나쁜 게 아닙니다. 돈을 모으고 부를 늘리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삶 또한 좋은 삶입니다. 그 순간에 나에게 필요했던 일이였을 것입니다. 지금의 나에겐 의미와 필요가 없어진 것일 뿐입니다. 그 순간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물질주의를 부러워하든 아니든 모두 남들의 평가일뿐입니다. 진짜 나만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너무나 명쾌했다. 과거의 내가 추구했던 삶 또한 내가 살아왔던 삶이고 지금은 의미가 없어졌을 뿐 후회할 필요도 불안해할 필요도 없이 지금 내게 의미있는 삶을 찾아가면 된다는 말씀에 내가 가야할 길이 더욱 더 확고해졌다.     


 제주로 온지 어느새 1년이 넘어가고 있다. 내 인생 가장 잘 한일은 아이를 낳은일 하나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삶의 모든 순간에 책을 곁에 두었다는 게 가장 자랑스럽다. 제주 이주 이후로도 끝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써가고 있다. 내 삶의 방향이 이토록 바뀐 것은 ‘숲속의 자본주의자’ 한권의 책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그동안 읽어왔던 많은 책들이 경험과 교훈으로 쌓여 불안했던 그시기의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책의 형태로 찾아와 준 것같다. 지금도 난 길을 잃을 때마다 내게 울림을 줄 수 있는 방향을 찾아 그대로 실행하려 노력한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어떤 삶을 살든 100% 만족되는 선택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든 순간에 책을 곁에 둔다면 매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해나갈 수 있을것이라 확신한다. 오늘도 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계속해서 변화 되어갈 나와 우리의 삶이 기대된다.    


 

한번도 안본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는 인생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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