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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Sep 09. 2024

불나방 / 피 터지는 사립유치원 중간고사

도전! 골든벨

   

포뇽이 놀이학교는 행사가 많은 편이었다. 케이크 만들기 콘테스트, 댄스경연대회, 줄넘기대회, 영어스피치 등등 뭐 그리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지 툭하면 과목별로 부모참여수업을 했다. 아이들은 누가 잘했고 못했고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엄마들은 달랐다. 참여수업 후 그 결과에 따라 미소 가득 웃는 엄마가 있는 반면 인상을 쓰고 애를 끌고 나가는 엄마도 생기곤 했다. 그중 놀이학교에서 일 년에 한 번씩 꼭 하는 큰 행사가 하나 있었다.


바로 ‘도전! 골든벨!’


도전 골든벨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문제를 풀고 최후 1인이 골든벨을 울렸던 티비에서 했던 프로를 그대로 따라 만든 유치원생 대상 골든벨 울리기 대회였다. 이 행사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사립유치원의 중간고사나 다름이 없는 행사였다. 이 대회에 사활을 건 여자가 있었으니 그건 당연히 불나방이었다. 불나방은 매년 골든벨시즌만 다가오면 더듬이를 바짝 세우고 칼 갈 듯 날개를 갈아대며 살벌한 광기를 내뿜었다.     


“언니! 곧 있으면 도전 골든벨 행사 시작이네요 호호호. 작년에도 우리 나발이가 1등 한 거 아시죠? 애가 워낙 머리가 좋기도 하고 승부욕도 강하잖아요~ 언니는 작년처럼 관심 없으시죠? 아 언니가 아니라 포뇽이가 관심이 없는 건가. 하긴 괜히 도전했다가 떨어지면 그게 더 포뇽이한텐 상처가 되긴 하겠네요~ 호호호호”

뭬야? 포뇽이한테 상처? 이게 뚫린 입이라고..

“1등은 나발이보다 불나방이 하고 싶은 거 아니야? 우물 안에 개구리파티도 아니고 기출문제 다 알려주고 하는 게임에서 1등 하는 게 뭐가 좋아? 올해에도 나발이한테 기출문제 밤새 다 외우게 하려고?”

“어머머 언니. 제가 뭘 밤새 시켰다고 그래요? 포뇽이는 워낙 승부욕이 없는애라 언니가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나발이처럼 똑 부러지는 애들한테는 그만큼 엄마가 발맞춰서 뒷바라지를 해줘야 하는 거라고요. 해보지도 않으셔놓고는..”

“그걸 꼭 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아? 먹어봤는데 똥이면 도로 뱉을껴? 그리고 포뇽이가 승부욕이 없다고 누가 그래? 하나를 해도 기똥차게 하는 애 거 든!”

“또.. 똥이요? 이 언니 왜 자꾸 똥똥거리 신데요? 똥이든 기똥이든 어쨌든 나발이한테 이길 수 있는 애는 없거든요!!”     


저 기지배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내가 코털을 다 뽑아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포뇽이가 웅장하게 골든벨을 울려서 이것은 똥이었다고 똥똥.. 아니 떵떵거릴 수 있도록 하고 말 테다. 내 안에 숨겨놨던 승부욕이 치밀어 오르며 저 깊은 곳에서부터 음악이 울려댔다. 바로 로키 주제곡이다.


‘빰! 빰빰빰 빰빰빠~ 빰! 빰빰빰 빰빰빠~!!’

난 로키로 변신했다.    

  

포뇽이가 1등을 하고 싶게 만들 미끼가 필요했다. 포뇽이는 날 닮아서 굉장히 계산적인 아이였다. 본인이 관심이 있는 게 아니면 누가 뭐라 해도 움직이지 않았으나 달콤한 미끼가 있을 땐 얘기가 달랐다. 얻어낼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쟁취하고 마는 아이였다.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을 던질 것인가. 무엇을 던져야 내게 골든벨을 물어와 줄 것인가. 순간 떠오르는 게 빛을 내며 스쳐 지나갔다. 바로 ‘호캉스!’ 코로나로 마스크만 꽁꽁 쓴 채 어디에도 여행을 가지 못하던 시기였다. 유튜브를 볼 때마다 나오는 호캉스 영상에 포뇽이는 언제나 넋을 잃고 쳐다보곤 했다. 하지만 건강염려증이 심했던 나는 포뇽이의 조름에도 절대 여행은 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판사판 공사판 뭘 가릴 때가 아니었다. 골든벨을 목에 걸 수 있다면 피 같은 돈과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눈 딱 감고 호캉스를 향해 달려가리라.     


“포뇽아 포뇽아, 이 엄마 얘기를 좀 들어보련”

“왜 엄마. 왜 가까이 다가오는 거지”

“포뇽아 포뇽아, 곧 유치원에서 도전 골든벨하지?”

“응 그런데? 난 관심 없는데?”

“포뇽아 포뇽아, 이번 골든벨에서 우리 포뇽이가 열심히 해서 1등을 한다면! 그래서 골든벨을 물어와 준다면! 이 엄마가 특별히 호! 캉! 스! 를 가도록 하겠어!!!”

“호오오오카아아앙스으으으으으??”

“응!! 골든벨만 따온다면 우린 그날 바로 짐 싸서 호캉스를 떠나는 것이야!”

“엄마!! 약속 지켜야 해!! 골든벨은 내 거야!!!”     

‘빰! 빰빰빰 빰빰빠~ 빰! 빰빰빰 빰빰빠~!!’


판은 벌어졌다. 이번판은 이겨야 했다. 포뇽이는 내가 봐도 지독한 면이 있는 아이였다. 기출예상문제를 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포뇽아 달려!! 넌 할 수 있어!! 너에겐 뜬금없는 로키의 피가 흐르고 있어!!! 훈련은 아무도 모르게 진행됐다. 난 불나방에겐 도전골든벨 따위엔 전혀 관심 없는 척을 했고 포뇽이도 호캉스에 눈이 멀어 비밀서약을 지켜줬다. 우린 어느새 기출예상문제를 달달달 외우게 되었고 모든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드디어 대망의 날이 밝았다. 아닌 척 하지만 엄마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흘렀고 이번연도는 작년과는 다르게 경쟁률이 치열했다. 모두들 기출예상문제를 몇 번씩 풀어본 것 같았고 1등을 향한 열망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와 포뇽이는 기죽지 않았다. 우린 문제집을 씹어 먹고 발라먹고 삶아 먹은 표정으로 등장했다. 


‘빰! 빰빰빰 빰빰빠~ 빰! 빰빰빰 빰빰빠~!!’

“어머 언니, 포뇽이 표정이 예사롭지 않네요? 혹시 포뇽이 1등에 관심 있는 거예요??”

“응! 내가 뭐 하러 우물 안 개구리파티에 관심가지냐고 말려보긴 했는데 심심하다고 한번 도전해 보겠다고 하네? 그냥 재미 삼아 한번 해보라고 했어~ 왜? 신경 쓰여?”

“시.. 신경 쓰이긴요! 경험삼아 해보는걸 누가 말려요. 애가 상처받을까 걱정이지..”    

 

망할 저놈의 상처 누가 받을진 모르겠지만 한번 지켜봐 보자고 훗.

불나방에게선 급작스런 초조함이 느껴졌다. 무관심한 표정으로 부모님 석에 착석해 있었지만 불나방의 다리는 달달 떨려왔고 입술은 허예졌으며 눈에 핏발은 잔뜩 서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음을 느끼고 있었다. 은근히 지독한 내 성격과 그걸 닮아 대놓고 지독한 포뇽이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나발이의 어깨를 마구 주물러댔다.      


대회는 흥미진진했다. 영어문제에서 많은 애들이 떨어졌고 링 위에는 단 3명만 남게 되었다. 나발이, 포뇽이, 개구리. 이 3명은 마지막 남은 단 1개의 문제만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문제는 주관식이었다. 기출예상문제에 없는 문제였고 아이들에게도 이 문제가 최대고비였다.


“자~! 치열한 결전 끝에 단 3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문제는 주관식 문제입니다! 자 문제 나갑니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은 무슨 산 일까요!!”


난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 호캉스를 가기로 한 곳이 바로 한라산 옆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포뇽이가 1등을 하게 된다면 그에 걸맞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라산 옆에 있는 별 5개 호텔로 호캉스를 가게 될 것이라고 떠벌려놨었고 포뇽이 역시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포뇽이는 슬며시 미소를 짓고 나를 쳐다봤고 나 역시 화답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뇽이는 바로 답을 써 내려갔다. 그에 반해 개구리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나발이는 뭔가를 깨달은 듯 답을 적어내려 갔다. 난 은근히 동점이 나올까 걱정이 됐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불나방을 흘낏 쳐다봤다. 불나방은 나발이가 뭔가를 열심히 적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됐던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     


“자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이제 정답을 보여주세요!!”

포뇽이 답 - 한라산

개구리 답 - 설악산

나발이 답 - 백두산


“네!!! 정답은 한라산이죠!! 아~ 백두산 안타깝습니다. 여기가 북한인가요~ 하하하. 이번 골든벨 1등은 이포뇽입니다!!!! 축하합니다!!!!”     


예쓰!!예쓰!!예쓰!!!!!! 으하하하하하. 우리 포뇽이 최고!!!!! 이제 호캉스 가능거야!!!!!!

포뇽이는 당당하게 골든벨 1등을 차지했고 금빛 종을 울리며 메달을 목에 걸었다. 불나방은 난리도 아니었다. 곧 통일이 될 것이라며. 통일이 될걸 미리 예견하고 나발이가 쓴 답이라며 백두산도 맞는 답 아니냐며 원장님께 항의를 하며 나발이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난 불나방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해줬다.


“불나방아. 통일이 언제 될진 모르겠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잖니. 이제 그만 진정하고 패배를 받아들이렴~ 나중에 통일되면 나발이랑 꼭 백두산투어 다녀오고~ 우후후후후”


불나방은 얼굴이 벌게져서 나발이를 끌고 원장님께 고래고래 항의하며 퇴장했고 난 승리한 로키의 기분이 어땠을지를 온몸으로 느끼며 포뇽이와 함께 갈 호캉스를 위해 짐을 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의 기를 받아선지 제주 호캉스 여행은 아주 아름다웠고 황홀했다. 포뇽이와 난 한라산을 바라보며 건배했다. 


“포뇽이의 1등과 불나방의 추락을 축하하며! 건배!!”     

‘빰! 빰빰빰 빰빰빠~ 빰! 빰빰빰 빰빰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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