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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Sep 06. 2024

불나방 / 학원 레벨 테스트로 정해지는 아이계급

 

불나방은 나보다 친한 동생 H와 먼저 알고 지내던 엄마였다. 포뇽이와 같은 놀이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엄마였으나 학구열이 엄청 높아 보여 나와는 친밀감이 많지 않았지만 H의 소개로 알고 지내게 됐다. 불나방은 만나기 전부터 인별그램으로 친구를 맺고 있었기에 그녀의 삶은 이미 많은 부분 알고 있었다. 멋진 4층 주택에서 살고 있었고 눈이 커다랗고 예쁘게 생긴 딸을 키우고 있었다. 같은 주택단지 내 엄마들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었고 놀이학교에서도 반을 가리지 않고 많은 엄마들과 만남을 갖는 분이었다. 불나방의 4층 집은 아이가 다니는 놀이학교와는 2-30분 떨어져 있는 곳으로 조금은 교육권에서 벗어난 지역이었다. 불나방은 거주 중인 주택단지에 대한 자부심은 엄청났지만 본인 동네에 대해선 항상 불만을 표하곤 했다.     


“언니, 저희 동네는 제가 사는 주택단지 빼고는 도무지 아이 교육도 그렇고 맘에 드는 구석이 없어요”

“왜? 그래도 불나방네 집이 이쁘니까 괜찮지 않아?”

“호호호 저희 집은 좀 괜찮긴 하죠~ 그런데 언니 사실은 저희 주택단지 빼고는 그 옆에 있는 아파트들 다 임대아파트들이에요~ 여유도 없는 사람들이 애들은 어찌나 많이 낳았는지 한집당 아이가 2-3명은 되는 것 같고 애들 행색도 영~ 추레한 것이 동네를 다니기가 싫다니까요!”

“저번에 가봤을 때 난 전혀 그런 건 느껴지지 않던데?”

“아니에요 언니~ 애들 놀이학교가 있는 여긴 신도시라 엄마들도 세련됐고 애들 교육열도 높잖아요~ 저도 애들 초등학교 가기 전엔 어서 옮기던지 해야지 도저히 수준차이 나서 그 동네에 못 있겠어요~”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임대아파트에서 산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무조건 힘든 사람들이라고 볼순 없어. 그건 불나방 선입견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건 같은데.”

“어머 언니! 몰라서 하시는 소리예요. 겉모습부터 얼마나 차이가 큰데요~ 딱 보면 우리 동네 애들이 아닌 게 티가 줄줄 나는데 자꾸 저희 단지 놀이터까지 와서 놀다 간다니까요. 저번엔 글쎄 제 딸이 놀이터에서 누구랑 놀고 있어서 가봤더니 임대아파트 애들인 거예요!! 제가 너무 화가 나서 당장 관리실에 항의했잖아요. 지금생각해도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기분 더러워서 참나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건지..”     


불나방은 코에 불을 뿜으며 팔락거렸다. 흥분해서 얘기하는 그녀를 지켜보는데 난 점차 기분이 나빠졌다. 그 동네에는 아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동생이 살고 있었다. 잠깐 다녔던 문화센터에서 알게 된 동생은 참한 외모에 일도 열심히 하면서 아이도 올바르게 키우려고 최선을 다하는 누구보다 인성 좋은 동생이었다. 그녀는 몇 년 전 임대아파트 분양을 받았을 때 누구보다 행복해했고 감사해했다. 불나방이 혼자만의 생각으로 내뱉는 거침없는 말들 때문에 동생의 성실한 삶이 몽땅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아직도 불나방 같은 생각을 하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이 있다는 현실이 씁쓸했다. 임대건 전세건 자기 집이건 집은 내가 될 수도 없고 영원할 수도 없는 그냥 집일 뿐이다. 내 여건과 필요성에 맞춰서 내 가족이 편히 쉴 수 있고 가족 간의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자 내 집인 것이지 어떤 형태이든 누구 이름이든이 뭣이 그리 중요할까. 무언가를 내세우고 싶다면 집이 아닌 그곳에 거주하며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내세우고 싶다.     


불나방은 삶의 모든 기준을 돈과 유명세, 브랜드로 계급을 매기곤 했다. 남편도 이름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살고 있는 집도, 차도, 아이가 입는 옷까지도 모두 다 알만한 브랜드로 온통 감싸진 삶이었다. 개인의 취향이자 그녀의 삶이니 내가 뭐라고 판단할 수 없으나 그녀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본인만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비하했다.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차를 모는지, 아이는 어떤 유치원을 보내는지 이 3가지 조건에서 하나라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그 상대와는 말을 섞지 않았고 모임에 함께 자리라도 하게 될 때면 은근히 무시하고 대놓고 따를 시켰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모든 계급 얘기 속에서 그녀 자신은 없었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했었는지 그렇게 중요하다는 학벌은 어떻게 되는지 난 그녀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가끔 그런 주제의 얘기가 나올 때면 말끝을 흐렸고 갑자기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리곤 했다.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은 본인의 결핍을 더 드러나게 만들었지만 본인만 모를 뿐이었다.     


불나방은 학벌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화제를 돌렸지만 아이 학업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무슨 웅변을 하듯이 조기교육에 대해서 외치고 또 외치곤 했다. ‘이 연사! 아이들이 죽도록 공부만 하기를 소원합니다! 다 같이 외쳐봅니다! 공부! 공부! 공부!!’ 그녀가 두 주먹까지 불끈 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나방이 아이의 공부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아이 공부를 시키고 싶으면 혼자 열심히 시키면 되는 것을 이 학원은 필수과목이니 다녀야 하고 요학원은 필수과목이 아니니 다녀야 한다며 지금도 늦었다면서 주변 엄마들의 불안감을 조성했다


 불나방 딸이 다니는 학원은 일주일에 6-7군데였다. 영어, 수학, 과학, 문해력, 미술, 발레, 웅변까지 고작 6살인 아이는 놀이학교가 끝나면 각 학원들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뛰어다니기 바빴다. 학원마다 나오는 숙제까지 하느라 아이의 취침시간은 언제나 10시가 넘었는데 불나방은 그 사실조차 자랑스러워했다. 매번 아이가 숙제하는 사진들을 찍어 인증샷을 올리듯 그룹톡에 공유했고 사진 속 아이의 늘어져 보이는 글씨에선 피곤한 아이의 숨결이 내게 느껴질 정도였다.     


난 그때쯤 서서히 포뇽이의 학원을 줄여가고 있을 때였다. 놀이학교에 처음 들어갔던 5세 때엔 엄마들의 말에 흔들려 많은 학원을 보내보곤 했으나 점차 그 생활이 나와 내 아이에겐 맞지 않았다. 자꾸만 늦었다는 불나방의 얘기에 나 역시 불안감이 조성된 아이에게 여러 가지 과외활동을 시켜봤으나 늦기는커녕 너무 일러 보였다.      

“언니, 포뇽이 벌써 6살인데 아직도 수학학원 안 보내고 계시다면서요??”

“응 아직 한글도 잘 모르는데 수학학원까진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어머 언니! 모르시는 말씀이세요! 한글이야 누구나 익히는 거고 영어도 힘든데 지금 나이에 수학부터 잡아놓지 않으면 나중에 포뇽이 못 따라가요~! 수학은 지금 꼭 시켜야 한다니까요!”

“난 좀 천천히 하고 싶은데..”

“언니 그러다가 나중에 포뇽이만 수업시간에 멍하니 딴 데보고 있으면 그땐 어쩌시려고 그래요! 그게 다 결국 언니 탓이 된다니까요! 그러지 말고 수학학원 레벨테스트라도 어서 받아봐요. 보내든 안 보내든 포뇽이가 얼마나 아는지 테스트는 할 수 있잖아요. 저도 레벨테스트받아보고 깜짝 놀라서 서둘러서 보내게 됐잖아요. 제 말 안 들으시면 후회하신다니까요!”     


불나방은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를 붙들고 한참을 떠들었다. 아마도 자신의 말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 내가 불만스러웠던 듯했고 어떻게든 한 과목이라도 자신의 말을 따르게 하고 싶어 보였다. 슬그머니 불안감이 올라왔다.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도 불나방 같은 엄마의 말을 들으면 나 역시 사람이고 엄마라 매번 흔들리는 건 사실이었다. 그놈에 레벨테스트라도 한번 받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나도 레벨테스트 한번 받아볼게. 워낙 수학을 안 해본애라 아마 바닥이 나올 것 같긴 한데 수준이라도 체크해 보지 뭐”

“어머 언니 잘 생각하셨어요! 레벨테스트도 대기자 많으니까 빨리 받아보실 수 있게 제가 원장님께 살짝 언지좀 드려놓게요 호호호. 아마 테스트받는 날 포뇽이가 좀 힘들어할 거예요. 애들 문제인데도 어찌나 주관식들이 어려운지 풀기가 쉽지 않다고 제 딸이 그랬었거든요~ 그렇다고 너무 좌절하지 마시고 천천히 배워나간다고 생각하세요 호호호”      


불나방의 퍼덕거림에 결국 난 포뇽이를 데리고 유명하다던 수학천재학원을 갔고 포뇽이는 40분 정도 테스트를 받기 위해 교실로 들어갔다.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한 문제도 풀지 못해서 포뇽이가 상처받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닐지 괜히 온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기다리는 동안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았다. 40분의 시간이 지나고 학부모 면담이 시작됐다.

“어머님 요게 포뇽이 테스트지입니다”

으응? 수학학원인데 숫자보다 한글이 왜 이리 많아. 단순한 덧셈정도만 있을 거라 생각했던 문제집은 대부분 주관식 문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철수와 영희가 사과를 10개 땄는데 철수가 집에 가서 사과를 3개 더 가져오고 영희가 맛있겠다며 딸기까지 10개들이 한 봉지를 가져와서 어쩌고 저쩌고 해서 딸기와 사과는 몇 개일까요 하는 식의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어머님, 포뇽이가 평소에 책을 많이 읽나 봐요. 주관식 문제라 이해하기가 꽤 어려웠을 텐데 오히려 객관식은 틀린 게 몇 개 있긴 한데 주관식은 다 맞았더라고요. 이 정도면 A반으로 들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A.. A반?? 므..므흣흣흣흣. 갑자기 절로 코가 벌렁거려지고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포뇽이가 뭐든 배우는 게 느린 편이라 여러 명이 함께 진도를 나가는 학원보단 집에서 책을 많이 읽어주곤 했는데 아무래도 그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아이의 문해력 수준이 상급으로 나오면서 주관식 문제에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불나방아. 나 레벨테스트 보고 왔는데..”

“네네 언니, 좀 많이 놀래셨죠? 아휴. 제 딸도 그랬어요. 처음에 레벨테스트를 봤는데 주관식을 하나도 못 맞춰서 글쎄 C반이 나왔었어요~ 지금은 1년 넘게 다니면서 A반으로 올라가긴 했지만 처음엔 좀 멘붕이 와요. 너무 상처받지 마시고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다니시면 돼요!”

“아니 그게 아니고, 포뇽이가 주관식 문제를 어쩌다 보니 잘 맞춰서 A반으로 배정이 되게 됐어. 난 바닥으로 나와서 포뇽이 상처받을까 걱정했는데 그건 다행히도 면했어”

“A.. A반이요?? 아니.. 포뇽이.. 수학 학원은 처음이라고 하셨잖아요”

“응 수학학원은 처음인데 집에서 책을 좀 봤더니 그게 좀 도움이 됐던 것 같아”

“아.. 그러셨구나.. 알겠어요 언니.”

뚝.

“여.. 여보세요? 여보시오? 게 누구 없소??”


그녀의 전화는 그렇게 끊겨버렸다. 참으로 불나방스러웠다. 불타오르듯 퍼덕거리더니 포뇽이의 예상치 못한 결과에 그녀는 마음이 상해버렸다. 날개를 접고 아마 불나방 미니미에게 기어가서 너는 왜 C를 받았었냐며 불같이 화를 내고 있으리라.      


수학천재 학원은 보내지 않기로 했다. 아직 한참이나 어린아이들에게 레벨을 매겨 반을 나누는 것도 좋지 않게 느껴졌고 포뇽이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 시간에 차라리 집에서 포뇽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나 더 읽어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후에 듣기론 불나방이 같은 반 엄마에게 아무래도 내가 집에서 포뇽이 수학과외를 몰래 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한걸 전해 들었다.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누가 뭐 래든 내가 아니면 되는 것이고 앞으로 학원은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닌 포뇽이의 의견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의 앞서가는 날갯짓에 지레 겁먹고 내 아이까지 정상에서 등 떠미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 먼저 갈 사람은 먼저 가고 걸어갈 사람은 걸어가면 된다. 끝도 보이지 않는 정상을 향하는 길은 포뇽이가 정해서 찬찬히 걸어갔으면 좋겠다. 난 포뇽이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종알대며 열심히 발맞춰가야지.    

 

그리고 레벨테스트 따위 네가 뭔데 내 아이의 등급을 나눠. 내 눈엔 이미 A+++ 완성작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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