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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Sep 04. 2024

골수녀 / 그녀의 골수를 뽑아버리다

     

엄마들끼리 모이던 반모임은 그 범위가 점점 커져갔다. 엄마들의 대부분은 술자리를 좋아했고 그러다 보니 주중에만 모이는 건 아쉽다며 주말까지 만남이 이어지곤 했다. 난 주말에는 가족과 보내는 걸 편해하는 성향이라 주말모임은 매번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빠질 수는 없었다. 이놈에 반모임이라는 게 한번 참석하기 시작하면 그 발을 빼기가 무척 어려웠다. 같은 동네라 서로 뭐 하고 지내는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무슨 핑계를 댔다가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동네에서 얼굴 들고 다니기가 불편해질게 뻔했고 내 성향 때문에 내 아이만 친구들 모임에서 빠지게 하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임의 참석율 또한 90%가 매번 넘는 걸 보면 다른 엄마들도 말은 하지 못해도 나와 같은 생각이란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힘들고 귀찮은 모임이 왜 지속되고 있는 건지 들여다보면 이 모임엔 주최하는 자와 선동하는 자가 있었고 그들의 추진력은 지치지도 꺾이지도 않았다. 그룹톡은 항상 몇백 개가 넘는 대화들이 쌓여 있었고 대답을 매번 하기도, 그렇다고 대답을 매번 하지 않기도 어려웠다. 그룹톡은 대부분 아이사진, 아이자랑, 남편욕, 시댁욕이 주를 이루었고 대화의 끝은 언제나 나머지는 만나서 얘기해야 한다며 모임주선으로 이어지곤 했다.      


우리 반의 선동자는 골수녀였다. 그녀는 지독히도 모임을 좋아했다. 교묘하게도 선동은 하되 스스로 주최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많은 모임을 하면서도 돈은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얻어먹을 기회를 노렸고 핑계를 만들었고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갔다. 난 골수녀가 누군가에게 커피 한잔 술 한잔 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성격이려니 하기엔 나도 두 눈 멀쩡히 뜬 채로 카페라테 파티를 당한 적이 있었던지라 매번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그녀를 볼 때마다 언젠간 꼭 골수를 뽑아먹거나 그 넓은 등을 쳐 때려주고 싶곤 했다.     


어느 금요일 오후 그룹톡이 잔뜩 올라오기 시작했다. 골수녀와 워킹언니의 대화가 주된 내용이었다.

“워킹언니! 제가 어제 빌려드린 그림책은 잘 보셨나요? 방긋방긋”

“아! 골수야 우리 워킹이가 보고 싶어 했던 그림책인데 빌려줘서 아주 잘 봤어 고마워~ 내일 돌려주도록 할게!”

“에이 뭘요~ 우리 딸이 잘 때마다 껴안고 자는 그림책이긴 한데 워킹이가 보고 싶다면 빌려드려야죠 호호호호”

“어머 그랬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빌려달라고 했네. 딸이 찾진 않았어? 미안해서 어쩌지”

“괜찮아요 언니. 어제 딸 재울 때 그림책이 없다고 좀 울긴 했지만 제가 잘 타일러서 재웠어요 방긋방긋”

“울기까지 했다고? 이런 내가 너무 미안하네.. 내가 맛있는 저녁이라도 살게. 시간 될 때 말해줘~”

“어머 언니 무슨 저녁까지요~ 제가 오늘 시간이 좀 되긴 하는데.. 다음에 사주셔도 돼요 방긋”

“오늘 되면 바로 사줘야지. 이따 나 퇴근하고 우리 자주 가던 등쳐먹어 고깃집에서 만나자”

“네 언니! 너무 좋아요! 안 그래도 목이 칼칼한 게 알코올이 훅 땡겼는데 유후~ 신난다! 이거 어차피 그룹톡이니까 내용 보시고 되는 언니들 있으면 함께 가도록 할게요. 언니 괜찮으시죠?”

“응 그래그래. 그럼 이따 거기서 만나!”     


저 계략적인 마녀.. 아니 골수녀는 불금을 또 워킹언니 등에 업혀가기로 작정을 했고 난 이 모임에 참석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바로 워킹언니에게 개인카톡이 오더니 골수녀와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어색할까 봐 그렇다며 저녁에 시간 좀 내달라는 문자가 왔다. 골수녀는 보기 싫었지만 워킹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던 나는 저녁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고 그렇게 등쳐먹어 고깃집에 함께 모이게 됐다.


그날 골수녀는 남편이 일찍 퇴근했다며 남편까지 동반해서 등장을 했다. 끼리끼리 만난다는 옛말이 어찌나 잘 들어맞던지. 그녀의 남편 또한 자린고비 냄새가 풀풀 풍기는 뱃살 두둑한 아저씨였다. 그 부부는 자리에 앉자마자 쏘맥을 말아마시며 고기를 시켜댔고 후식으로 냉면에 된장찌개에 밥까지 아주 알차게 한 상 차려먹었다. 난 후덕한 그들이 먹고 마시는 모습을 보자 입맛이 뚝 떨어지고 속이 깝깝해지길래 깡소주를 연거푸 비워댔고 술이 점차 올라오기 시작했다. 남편이 항상 내게 말해왔던 게 있었다. 모임 때 술 취하지 말라고. 너 술 취하면 골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최대한 자제하라고 경고를 해왔었다. 그러나 이일을 어째. 이미 달고 단 쏘주는 내 몸을 찰랑거리며 점령해 버렸는걸.      


“골수야 맛있니?”

“네 언니! 왜 이리 안 드세요~ 여기 고기가 을마나 맛있는데요! 언니가 그렇게 잘 안 드시니까 체력이 약하신 거예요~ 호호호호”

“골수야 내 체력은 됐고, 우리 여기서 마무리하는 게 너무 아쉬운데 2차 가는 게 어때?”

“2차요! 당근 좋지요! 호호호호”

“그래. 그럼 2차는 여기서 제일 가까운 너희 집으로 가자! 자 일어서 어서!”

“저희 집이요? 아 그게.. 집이 정리가 좀 안 돼있기도 하고...”

“에이 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뭐 집 보러 가니 너 보러 가지 후후후후”


당황해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그녀의 남편에게도 양해를 구한 뒤 나와 워킹언니는 골수녀의 집으로 향했고 그렇게 2차 모임이 시작됐다. 그녀의 집에 가서 만찬을 시켜봐야겠다는 결심을 한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뭘 좀 시켜 먹을까 배민을 켰고 그걸 본 골수녀가 갑자기 외쳤다.


“언니들! 저희 아까 고기도 많이 먹었고 하니까 안주는 시키지 말고 술이나 한잔해요 방긋!”

이.. 이런 망할기지배. 두 번은 안 당한다 이거지?

“그래? 그럼 좋은 술 좀 꺼내와 봐. 저기 보이는 저 양주 좀 까자.”


나는 안주를 시킬 수 없다면 양주라도 까마셔 버리겠단 작정으로 양주를 들이켰고 골수녀는 그 흔한 과일 한 조각도 꺼내지 않고 술과 얼음만 내어놓았다. 빈속에 쏘주와 양주가 합해진 내 속은 출렁거리기 시작했고 약간은 비틀대며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도착한 나는 속이 더 안 좋아졌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참고 집에 가려고 정신을 차리던 나는 문득 깨끗한 골수녀의 화장실이 그녀의 번질거리고 뻔뻔한 얼굴처럼 느껴졌다. 

‘더럽히고 싶다...’라고 생각이 든 순간 난 이미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내 뱃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힘을 끌어모아 그걸 목구녕으로 올린 후 입을 통해 골수녀의 화장실 바닥에 구역질을 했다. 


“우웨에에에엑엑엑!!”


한번 시작된 구역질은 멈출 줄 몰랐고 그녀의 화장실은 순식간에 내 구역질로 범벅이 되었다. 어찌나 속 시원하게 내뱉었던지 십 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언니!! 언니!! 문 좀 열어봐요!!”

“엄머 골수야 내가 참지 못하고 그만..”

“꺄아악! 언니 이게 무.. 무슨 일이죠?”

무슨 일은 무슨 일이야. 그동안 묵혀왔던 너에 대한 감정들이 토사물이 돼서 나온 것뿐이지.

“이일을 어쩌니 골수야~ 빈속에 양주를 마셨더니 속이 안 좋았나 봐. 안주라도 좀 시켜 먹었으면 좀 나았을 텐데~ 난 남편이 데리러 왔다고 해서 이만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골수야 그럼 나 먼저 갈게. 담에 또봐!”


난 개운해진 속을 챙긴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의 집을 나왔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즐겁게 토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날 밤 아주 달디단 꿀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골수녀에게 카톡을 했다.

‘카톡! 골수야 어제 내가 술을 좀 많이 마셨나 봐~ 너희 집 간 건 기억이 나는데 그다음엔 기억이 전혀 나지를 않네~ 알다시피 내가 체력이 별로 좋지 않잖아~ 우리 즐겁게 헤어진 거지?’

‘아 네.. 언니. 어제 많이 취하셨나 봐요..’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거니까 방긋. 다음에 우리 또 한잔하자! 그럼 오늘도 파이팅~!’


워킹언니에게 어제 뒷일을 물어보니 골수녀는 씩씩거리며 화장실바닥을 닦았다고 하고 워킹언니도 서둘러 인사를 하고 나왔다고 했다. 한동안 그녀는 모임에서 술을 마시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그녀가 조용하자 그룹톡도, 반모임도 잠잠했다.      


일부로 토했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에이~ 토를 어떻게 일부로해용~’이라고 대답하고 싶고 그래도 참을 수 있지 않았냐고 물어본다면 ‘에이~ 자제력 있는 여잔데 당근 참을 수 있었지용~’라고 대답하고 싶다. 토는 참을 수 있었지만 그녀의 토할 것 같던 모든 행동들은 참지 못했던 난 적당할 때 반응해 준 내 목구녕 덕분에 속 개운한 밤을 보낼 수 있었고 골수녀의 깨끗했던 화장실 바닥에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아 개운해- 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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