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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Aug 30. 2024

골수녀 / 공동육아 하다가 골로 가겠네

  

놀이학교는 반모임이 활발했다. 반모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나는 주변에서 반모임은 득 보다 실이 많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래도 포뇽이랑 같은 반 친구들이 궁금했고 엄마들을 만나 육아에 대한 여러 고충을 함께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키즈카페에서 시작된 반모임은 만남의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었다. 한번 모인 엄마들은 1차 키즈카페 2차 저녁식사 3차 맥주집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반모임 달리기는 거의 철인 5종경기만큼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했다.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아이 입에 밥도 넣어야 하고 엄마들과의 대화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뒤에 달린 눈으론 내 아이가 다치지나 않을지 지켜봐야 했고, 아이들끼리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다른 아이를 탓하지 않으면서도 중재할 수 있는 센스가 필요했고, 술이 아무리 올라도 엄마들에게 헛소리를 하지 않을 자제력도 필요했다. 나는 체력이 약한 포뇽이가 친구들이랑 놀다가 치여서 어디로 날아가지는 않을지 살펴보느라 마음이 항상 불안했기에 다른 엄마들처럼 굳건히 자리에만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골수녀는 어떤 모임이든 빠지지 않는 여자였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모임이 끝날 때까지 미동도 없이 앉아서 주어진 음식과 술들을 먹어치우며 수다를 떨었다. 인별그램 속 골수녀는 육아에 굉장히 열의가 있는 엄마처럼 보이고 있었으나 실상은 너무나 달랐다. 골수녀의 아이는 모임에 익숙했고 혼자 노는 건 더 익숙해 보였다. 놀다가 아주 가끔 엄마에게 뭔가를 원해서 다가가면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복화술로 화를 냈다. 그녀가 의도치 않게 단 하나 아이에게 잘한 게 있다면 아이 혼자 모든 걸 해결하게 만든 방치능력이었다.      


반모임은 외부코스로 끝나지 않았다. 한 엄마가 아이들과 엄마들을 집으로 초대했고 그 후로 순서대로 각 집마다 아이들을 초대하는 보이지 않는 룰이 생겼다. 엄마들은 이걸 공동육아라고 불렀다. 망할 공동육아. 말이 좋아 공동육아지 현실은 아이들을 한 공간에 몰아놓고 엄마들은 마음껏 수다를 떨며 먹고 마실 수 있는 합리적인 술자리였다. 공동육아의 수순은 이랬다.     


『그룹 톡이 울린다 – 모임이 주선되고 누군가의 집에 모인다 – 그 누군가는 엄마들과 아이들이 먹을 그날의 저녁준비에 돈과 정성을 쏟는다 - 모인 엄마들은 식탁에서 먹고 마신다 – 아이들은 서로 뒤엉켜 뺏고 뺏기고 울고 웃고 던지고 날리다가 엄마들에게 끌려와 준비된 저녁을 코와 입으로 먹는다 – 전투적인 밥타임이 끝나고 다시 뒤엉켜 뺏고 뺏기고 울고 웃고 던지고 날린다 – 엄마들은 계속 먹고 마신다 – 땀범벅이 된 아이들은 또다시 끌려와 준비된 간식을 먹는다 - 집과 부엌은 점점 더 난장판이 되어간다 - 시간이 늦어진다 – 한두 명씩 자리를 뜨고 아이들은 안 간다고 울고불고 뒤집어진다 – 밤이 된다 – 마지막 엄마가 드디어 일어나 집으로 간다 – 집은 개판, 부엌은 설거지판, 화장실은 오줌판이다 - 남은 인내를 끌어 모아 아이를 씻긴다 -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에게 짜증이 올라온다 - 겨우 아이를 재운다 -그룹 톡이 울린다 – ‘너무 잘 놀고 와요 땡땡이 엄마! 수고 많으셨어요 방긋방긋’ – 와줘서 고맙다고 답변한다 – 영혼은 이미 털렸다 - 인별그램을 연다 – 놀러 온 엄마들 인별그램에 오늘의 사진과 함께 태그가 달려있다 - #공동육아덕에힘들지않아요  #다음엔우리집에서』     


누가 공동육아가 힘들지 않다고 그랬어! 난 죽도록 힘들던데! 난 공동육아를 집에서 치른 후 며칠을 앓아누웠다. 집은 치워도 치워도 레고조각과 마른 밥알들이 계속 튀어나왔고 모임 또한 쉬지 않고 계속 잡히고 이어졌다. 이 와중에 굳건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골수녀였다. 그녀는 9명의 엄마들의 순서가 다 끝날 때까지도 꿈쩍 않고 엄마들을 초대하지 않고 있었다. 난 저 여자가 언제쯤 어떻게 엄마들을 초대할지 기대하고 고대했다. 골수녀의 초대는 급습이었다. 뜬금없는 월요일 점심때쯤 그룹톡이 울렸다. 


‘카톡! 언니들!! 오늘 저희 집에서 간단히 모일까 하는데 시간들 괜찮으시죵??’


아니 이 여자가 정신이 있는 건가. 힘든 주말을 지난 월요일에 그것도 당일 점심때 초대를 한다는 건 못 올 사람은 알아서 빠지라는 의미가 대놓고 보이는 행동이었다. 굴할 수 없었다. 피곤에 절어 늘어진 오이지가 된 상태라고 해도 난 가야 했고 체력저하로 가기 전부터 이미 흐느적거리는 딸을 데리고 골수녀의 집으로 향했다.     

 

역시나 모이던 인원수의 반도 참석하지 못했다. 어찌나 아쉽던지. 그래도 난 아이들이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놀아주길 반짝이는 눈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온 집안을 다닐 수가 없었다. 얍실한 골수녀는 아이들에게 구역별 금지구역을 알려주고 있었다. 안방금지, 안방화장실 금지, 부엌금지, 장난감 금지, 물장난 금지, 뛰기 금지, 소리 지르기 금지. 뭐야 씨알. 놀만 한 건 다 금지네? 아파트의 특성상 뛰거나 소리 지르는 건 아이들에게 매번 주의를 주곤 했지만 저렇게 대놓고 놀기 전부터 금지사항들을 무섭게 얘기할 줄은 몰랐다. 아이들은 장난감도 꺼내지 못하고 금지구역들에도 기웃거리지 못하자 한데 모여 멀뚱히 티비만 들여다봤다. 어지르려야 어지를 껀덕지가 없었다. 저녁상도 기가 막혔다. 엄마들에게 커피 한잔씩만 내려준 골수녀는 그 후로 귤 한 조각도 꺼내놓지 않았다. 남에 집에 가선 그렇게 먹어대던 맥주도 없었고 저녁밥은커녕 주전부리조차 없이 그저 식어가는 커피만 하이글로시가 빛나는 깨끗한 식탁 위에 놓여있었다. 애들 저녁으로는 반찬가게에서 산 반찬 2팩이 전부였다. 그걸 바닥까지 긁어모아 애들한테 나눠줬고 골수녀가 한 거라곤 ‘쿠쿠 하세요 쿠쿠~’라고 명랑하게 외치는 밥통에 스위치만 누른 것뿐이었다.      


저녁 8시쯤 되자 엄마들의 배에선 천둥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티비보기도 지쳐했고 간식도 먹을 게 없자 집에 가자고 칭얼댔다. 그녀는 즐겁고 명랑하게 소리쳤다. “어머~! 애들이 오늘따라 기운이 없나보네용! 피곤해 보이는데 이제 그만 정리할까용!” 그래. 간다 가!! 배가 고파서라도 간다!!! 엄마들은 피골이 상접해선 그녀의 집에서 나왔고 난 집에 돌아와 라면을 급히 끓여 먹으며 이를 갈았다. 이 망할 기지배 같으니.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순 없어!!! 아아악!!!     


난 치졸한 골수녀에게 나 역시 치졸해지기로 결심했다. 나 이렇게 유치한 여자 아닌데.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야. 유치해질 거야! 어긋나버릴꺼야!!

그 주에 난 골수녀를 제외한 그룹톡을 만들었다. 그전까진 단체 그룹톡이 아니면 대화에 끼지 않았었지만 난 비장해져야만 했다. 


‘카톡! 기여운 우리 반 엄마들아! 이 언니가 할 말이 있어 방긋(나도 방긋할 수 있다고!) 이번주 금요일에 골수녀와 만나기로 했는데 우리 즐거운 불금인데 되는 사람들은 골수녀의 집으로 가서 함께 노는 게 어때?’

‘좋아요 언니! 저번에 참석 못해서 저도 아쉬웠는데 금요일은 갈 수 있어요!’

‘그래요 언니! 금요일에 저도 참석이요!’


엄마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골수녀의 얍실한 행동에 표현은 못했지만 다들 불만을 갖고 있었고 난 그걸 노려야 했다. 골수녀에겐 금요일에 카페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아놓고 금요일 당일 오후에 급 약속변경 전화를 했다. 포뇽이가 너네 집에서 놀고 싶어 해서 그러는데 집으로 가도 되겠냐고. 그녀는 별 의심 없이 그러시라고 했고 그렇게 우리 단체들은 골수녀의 집으로 향했다. 훗. 도착하기 전 난 골수녀가 없는 그룹톡에 미리 말을 해놨다.


‘기여운 엄마들아! 이 언니 배가 너무 고프고 술도 당기는데 골수녀집에 가서 팔딱팔딱 뛰는 회 한 접시 시켜달라고 하는 게 어때? 술은 내가 사가도록 할게!’

‘어머 좋아요 언니! 저번에 저희 집에서 시켜 먹었던 그 횟집 제가 추천해 줄게요.’

‘전 치킨도 먹고 싶어요! 치킨도 함께 시켜요!’

그럼 그럼 우리 오늘 배를 좀 채워보자꾸나. 지금까지 우린 모임을 할 때마다 초대한 엄마가 저녁까지 대접해 줘서 먹곤 했었기에 골수녀 역시 그 기회를 마음껏 안겨드리고 싶었다. 이번만큼은 커피 한잔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딩동딩동’

“골수야 우리 왔어!”

“어머, 언니들 한두 명 더 오신다더니 다 같이 오.. 오셨네요?”

“응 하원하다가 만났는데 다 시간 된다고 해서 함께 왔어. 괜찮지?”

“네.. 네”


나와 엄마들은 약속한 대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불금인데 술 한잔 땡기자면서 어서 음식을 시키자고 했고 골수녀는 똥 씹은 표정으로 우리가 추천해 주는 회와 치킨을 느릿느릿하게 시키기 시작했다. 난 그녀에게 한마디 더 얹혔다.

 “골수야 회는 대짜로 시키자!”


그날은 애들과도 뜻이 맞았다. 인원수가 많아진 아이들은 골수녀의 경고를 무시하고 안방과 부엌을 드나들며 음식을 흘리며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그녀는 처음으로 식탁 앞이 아닌 거실을 뛰어다니며 애들과 엄마들의 저녁을 챙겨야 했다. 그날따라 회가 왜 그리도 달던지. 하얗고 깨끗했던 하이그로시 그녀의 식탁은 회초장과 치킨부스러기로 채워져 갔고 난 처음으로 거실이 아닌 식탁 위에 앉아서 맘 놓고 술을 들이키며 진정한 공동육아를 몸과 마음으로 마음껏 즐겼다.     


상식이 통하는 자에겐 상식적으로 대해야 하나, 기본이 되지 않는 자에겐 나 역시 그 수준으로 내려가야 말귀를 알아듣는다. 내 행동은 유치하고 상식적이진 않았으나 가끔은 상대에 따라 바닥을 쳐줄 필요도 있다. 이 미묘하고 유치한 엄마들 간의 신경전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절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지능적이고 계산적이다.     


그날 나는 초장이 묻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골수녀를 만난 후 처음으로 이를 갈지 않고 잠이 들었다.

내 생애 최고로 달콤했던 광어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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