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bi미경 Oct 14. 2024

바람의 시작 김교수


“언니.. 나 어떡해..”

오랜만에 전화 온 k가 울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언니.. 나 곧 이혼하게 될 것 같아..”

“이혼? 아니 너희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 이혼이야. 얼마 전에도 제부랑 여행도 다녀오고 그러지 않았어?”

“이혼만은 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그이 마음을 돌려보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내가 용서가 되지 않는대..”

“용서가 안된다니. 너같이 똑똑하고 예쁘고 아이까지 완벽하게 돌보는 와이프를 용서를 할 일이 뭐가 있다는 거야. 그리고 제부도 너 엄청 사랑하시잖아.”

“그게...”     

K는 대학교 때부터 친했던 후배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순수하게 생긴 외모에 마음 씀씀이도 곱고 공부도 성실하게 잘해서 석사까지 마친 아이였고 그 곁에는 항상 지금 결혼한 남편이 함께해 주었다. 그들은 캠퍼스커플로 만나 남편의 군입대기간도 잘 버텨주었고 둘 다 공부도 잘해서 남편과 K 모두 대학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대학에서 강의를 가르치고 난 후부터 우리 김교수님!이라고 부르곤 했다. 김교수부부는 결혼 후 예쁜 아들도 낳아 다정하고 모범적으로 삶을 열심히 살아갔다. 그런 부부가 이혼이라니. 그것도 그녀가 용서가 되지 않아서라니.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언니.. 정말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됐어... 나랑 친한 L교수 있잖아... 그 교수가...”      


    



어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출근한 김교수에게 밝고 활발한 L교수가 다가왔다.

“김교수! 내일 우리 둘 다 강의 없는 날인데 아이 등교시키고 우리 바람이나 쐬러 갔다 올까?”

“아 그럴까요 언니! 그런데 아이 하원 때까진 돌아와야 하는데 언니 괜찮아요?”

“응응 나도 울애들 하원 때 픽업하러 가야 해서 잠깐 바람이나 쐬고 올까 해서! 파주 쪽에 가서 몸보신도 하고 그 프로방스마을도 가보자! 거기가 그렇게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것도 엄청 많대. 어때 괜찮아?”

“좋아요 언니. 저희 애들 올 때까지 알차게 놀아요! 저도 프로방스 한번 가고 싶었어요!”

한동안 강의준비에 아이 챙기느라 정신없이 보내던 김교수는 오랜만의 콧바람이 반가웠다. L교수는 그녀가 얼마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M대학에서 만난 사이로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활기찬 성격으로 김교수와 성향도 잘 맞아 빠른 시간 안에 친해졌다. 그녀 역시 운동, 요리, 육아, 일 등등 뭐든 열심히였고 남편과도 사이가 좋아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를 등원시킨 L교수가 그녀를 픽업하러 왔고 그 둘은 파주로 향했다.     


“김교수! 나 요즘에 골프 시작했잖아~ 거기서 알게 된 회원분이 소개해준 맛집인데 여기가 그렇게 맛있대! 파주에서도 장어구이로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더라고!”

“오 장어구이~! 저 요즘 장어 안 먹은 지 오래됐는데 너무 맛있겠어요 언니!”


우리는 장어집으로 향했고 도착한 장어집은 전통한옥으로 지어져 거대한 풍채를 내뿜고 있었다. 마당에는 덩치 좋은 직원들이 숯불불판에 장어를 단체로 구워대고 있었고 뿌연 연기와 함께 흘러드는 고소한 장어냄새는 김교수의 식욕을 자극했다. 창가에 앉은 그녀들에게 주문한 장어들이 한 상 차려졌고 그녀들은 장어맛에도 홀렸지만 마당에서 열심히 장어를 굽고 있는 직원들의 우람한 팔뚝에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눈이 가곤 했다.

“김교수, 여긴 장어의 맛보다 저 머슴 같은 직원들의 팔뚝의 맛이 더 좋을 것 같아~ 큭큭큭”

“헉 언니! 그.. 그런 말을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면 어떡해요~ 다 들릴 것 같아요!”

“뭐 어때~ 저분들도 은근히 우리의 시선을 즐기고 있을 거야~ 큭큭”


그때였다.

“오. 여기서 뵙네요! L교수님!”

“어머나! 닥터김! 여긴 웬일이야! 난 친구랑 파주 왔다가 닥터김이 여기 추천해 줬던 게 생각나서 점심 먹고 있었어~!”

“하하하 그러셨군요. 어때요 제가 추천한 대로 맛도 뷰도 끝내주죠? 전 아침에 진료가 없어서 닥터최와 같이 몸보신이나 좀 하러 들렸는데 어디선가 L교수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정말 교수님이 여기 와계시네요 하하하.”

“아 닥터최랑 왔구나! 이런 우연도 있네! 우리도 지금 와서 이제 먹기 시작하고 있었어!”

“그러시면 저희 이것도 인연인데 점심이나 같이 할까요? 친구분 혹시 불편하실까요?”

김교수는 사람 좋아 보이는 닥터김의 호탕한 청을 거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괜찮다고 응했고 그렇게 4명은 한상에 마주하게 됐다. 

“여긴 김교수라고 나랑 같은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있어. 전공은 나랑 다른데 사람 좋고 싹싹하고 이뻐서 내가 콕 점찍어서 친해지게 됐지~! 그리고 여기 멋진 남자분들 둘은 얼마 전 골프 시작하고 알게 된 분들이셔. J병원에서 근무하시고 매너 좋고 성격 좋고 똑똑해서 골프멤버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이야. 서로 인사해!”

분위기는 무척 쾌활했다. 닥터 둘 모두 L교수보다 한두 살 정도가 어렸지만 다 비슷한 또래라 얘기도 잘 통했고 성격도 활발해서 낯가림도 없었다. 일에서나 삶에서나 모두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맑은 날씨에 반가운 사람들도 만나 장어만 먹기엔 아쉽다며 술도 한잔씩 하게 됐고 낮술은 잘 먹지 않던 김교수도 아이 하원 전 작은 일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술잔을 금세 비우곤 했다. 프로방스까지 보고 오기로 했던 일정은 장어집에서 자리가 길어지면서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고 그들은 그렇게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김교수는 골프를 배워본 적이 없었다. 삶도 바빴고 괜스레 사치를 하는 운동이라는 선입견도 있었기에 딱히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이후로 4명이 종종 만남을 갖게 되면서 김교수도 자연스럽게 골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김교수 남편은 그동안 김교수가 너무 운동과는 먼 생활을 해왔어서 건강을 위해서라도 김교수의 골프시작을 적극 찬성해 주었다. 수업과 여러 일정들 때문에 멀리까지 나갈 수 없었던 김교수 무리는 주로 스크린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곤 했다.      


‘카톡! 우리 파주장어팀! 내일 오전에 급 골프번개 어떠십니까!’

어느 날 그룹톡에 닥터킴의 번개소식이 울렸고 시간이 맞았던 그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2인 1조로 쳐야 하는 스크린골프는 인원수도 딱 맞았기에 김교수와 닥터김이 한 팀, L교수와 최교수가 한 팀으로 이루어져 내기 골프가 시작됐다.      

“와! 김교수 실력이 일취월장으로 늘어가네!! 이러다가 우리 팀이 지겠는걸!!”

“에이 아니에요~ 김 선생님께서 다 해주고 있는걸요~”

“닥터김! 우리 목도 마른데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낮술도 같이 하는 게 어때! 나 질 것 같아서 마구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

“하하하하. 그럼 제일 어린 이 닥터최가 멤버님들 취향에 맞게 쫘악 깔아보겠습니다 형님!”

닥터최는 쾌활하게 골프장 프런트로 나갔고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의 룸에는 마치 나이트클럽 룸서비스와 흡사한 온갖 술들과 안주들이 깔리기 시작했다. 김교수는 몹시 놀라웠다.

“아니 골프장에서 이렇게 술도 마실수가 있나요?”

“하하하. 우리 김교수님이 아직 골프초보라 잘 모르셨군요. 요즘 스크린골프장에선 안 되는 게 없답니다 하하하하”


양주부터 소주, 맥주까지 없는 술이 없었고 그들은 낮술이라는 달콤함과 약간의 폐쇄적인 스크린 골프장의 분위기에 흠뻑 취해갔다. 내기 골프는 점점 더 물이 올라갔다. 실력이 가장 좋은 닥터김은 김교수의 차례가 되면 친절하면서도 부드럽게 그녀의 자세를 잡아주었다.

“김교수, 어깨의 긴장을 조금 더 풀고 하체를 뒤로 살짝 더 빼보세요.”

닥터김의 손은 아주 커다랬다. 닥터김의 양손은 그녀의 양손을 덮어버렸고 부드럽게 그녀의 뒤에 밀착해 왔고 그녀의 작은 몸 또한 닥터김의 단단한 몸 안으로 덮혀지곤 했다. 그는 그녀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최대한 매너 있는 자세를 유지했지만 골프의 특성상 그들은 종종 한 몸이 되었다. 그녀는 그가 가까이 올 때마다 이상하게 자꾸 긴장이 되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체취가 좋았고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 그녀의 깊숙한 곳을 흥분시켰고 진땀이 흘렀다.

“가.. 감사해요. 김 선생님, 덕분에 실력이 자꾸 늘어가는 것 같아요”

“아닙니다. 제가 김교수님 덕분에 요즘 골프가 다시 재밌어지고 있는걸요. 싱긋”     

 내기 골프는 닥터김의 실력 덕분에 김교수팀이 이기게 되었고 승리에 취한 닥터김이 갑자기 급작스런 제안을 했다.

“제가 우리 멤버님들 덕분에 내기에서도 이겼는데 저희 처음 만났던 파주 장어집에서 한턱 크게 쏘겠습니다. 지금 바로 달려가는 건 어떨까요!!”

L교수와 닥터최는 환호성을 지르며 응했고 김교수는 어떡할까 잠시 고민이 됐지만 밝게 웃고 있는 닥터김의 미소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녀는 술과 그의 미소에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덧. 바람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소재가 소재인만큼 조금 더 깊숙한 표현으로 글을 써갈까 싶은데.. 혹여나 불편하신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전 21화 이쁘니에게 내린 지명수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