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둥벌거숭숭이 Aug 28. 2024

역사와 공존하는 공간 부산 여기 이곳

좌천동굴에서 안용복 기념관, 증산공원까지.

연일 세상이 소란하다.

유독 길게만 느껴지는 여름이 이렇게 시끄러워서 되겠는가.

불현듯 시원한 장소에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다.

소란함을 피해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래서 찾아보았다.

내가 갈 수 있는 동굴은 어디 있을까.

이게 웬걸.

부산에도 동굴이 있었다.

오늘 찾아갈 곳은 바로 좌천동굴.

좌천 지하철역에서 3분 도보로 이동하면 바로 만날 수 있는 그곳.

그렇다면 나는 간다.

좌천지하철역 3번과 5번 사잇길에서 만난 태극기는 웅장하다

여행하는 마음이 정말 중요하다.

예정된 길은 좌천 지하철역 3번 출구 쪽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3번과 5번 출구사이에 묘한 기운이 흐르는 길이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간다.

바로 독립 운동가 정오연 생가터로 향하는 길이었다.

소녀가 태극기를 들고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태극기.

이런 걸 예술이라고 표현하나 보다.

벽에 그려진 모양이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멀리서 보아야 온전한 태극기의 모양이 된다.

이렇게 좋은 장소가 있었다니.

무언가 대단한 걸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태극기를 지나면 좌천동굴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도로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는 좌천동굴.

동굴의 바위 위에 위치해 있는 주택의 모습이 굉장히 아슬아슬하면서 이색적이다.

일제강점기 방공호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좌천동굴은 여러 굴이 있었지만, 특별한 기술 없이 일제가 강압적으로 한국인들을 동원하여 만든 인위적인 동굴로 세월의 풍파와 안전문제로 대부분이 폐쇄되고 좌천동굴만 남아있다.

해방 이후에는 피란민들의 임시거처로 사용되다가 그 후에는 민방위 훈련장소, 그리고 동굴집이라는 주점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아귀찜, 파전, 막걸리 등을 판매하며 운영했던 동굴집은, 2009년 도로확장공사 시행으로 인해 동굴집은 허물어지고 좌천동굴은 폐쇄되었다가 8년 후 주민주도형 마을재생사업의 일환인 산복도로 르네상스로 좌천동굴이 다시 개방되었다.

지금도 좌천동굴 앞에 가면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반가이 맞이해 주신다.

출입객의 인원을 확인하는 일을 하시는 어르신의 전화 통화소리를 들으며 좌천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어머니가 목이 마르신가 보다, 아드님 얼른 얼음물을 가져다주세요.

여름의 동굴 안은 시원함의 최고봉이다

좌천동굴은 월요일과 공휴일에 휴무를 하고, 운영시간은 10:00부터 16:00까지이다.

공휴일은 달력에서 빨간색으로 칠해진 날이다.

일요일은 무조건 문을 열지 않으니 참고하시길.

입구부터 시원한 좌천동굴은 폭이 약 2m, 길이가 약 50m 정도의 작은 동굴이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동굴집이 운영되던 때에 이곳에 와서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재빨리 찾아가서 체험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천장이 낮은 파란빛의 동굴은 깊게 구부리고 보아야 하지만, 조명이 주는 신비로움과 야광빛이 나는 다양한 동물들 보는 재미가 있다.

다만 혼자서, 삼각대도 없이 방문했기에 동굴과 함께 있는 나 자신을 찍지 못해 아쉬웠다.

이런 아쉬움은 재방문으로 메꾸면 되는 것이다.

좌천동굴의 모습과 설명문

굴은 여러 개였다.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때론 주점으로 여름의 시원함을 날려주는 공간이었다.

시대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아직도 남아있는 동굴의 모습은 작지만 알찬 체험이었다.

그리고 부산 동구 지역에서 느낄 수 있는 어르신들의 활기참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이라는 취지에 걸맞은 어르신 직업창출.

어떤 사람이라도 쓰임새 있는 역할이 주어진다면, 그 사람은 어제보다 더 빛나는 오늘을 사는 것이다.

일신 여학교와 독립 선언서가 공존하는 공간

보이는 길로 올라가던 중 보였던 독도공영주차장.

독도? 이곳에 독도공영주차장?

의문을 갖고 오르는 도중 만난 일신 여학교.

이 거리 전체가 교회였다.

오늘은 닫혀 있었던 부산진교회.

대한인들의 독립운동을 도왔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발자취.

일제에 핍박받던 민중들, 그중에서도 도외시되었던 여학생들의 교육에 힘쓴 일신 여학교가 위풍도 당당히 서 있었다.

역사가 공존하는 길이다.

그 바로 앞에는 깨어있는 33인의 독립선언서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그들의 이름과 얼굴이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길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좋은 곳을 왜 나는 알지 못했을까.

생소하게만 느껴졌던 매축지, 도심 속의 동굴만 찾아온 이곳은 더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 보았던 독도공영주차장의 답을 알려주는 장소를 발견했다.

바로 안용복 기념관이다.

안용복 기념관. 안용복 장군은 누구인가?

조선의 천민출신의 어부였다.

숙종 대에 살고 있었던 안용복은 1693년 울릉도에서 어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울릉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기에 그 근처에서 어업을 하는 왜인(일본인)들이 더러 존재했다.

안용복은 이에 분개하고 적극적으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에도시대 막부에게도 항의가 전달되어, 외교적 분쟁으로 만들기 싫었던 일본 측에서는 그의 요청을 우여곡절 끝에 받아들이고 그를 조선으로 다시 보낸다.

무사히 조선에 돌아온 안용복은 일본에서 돌아왔다는 그의 말에 조선 의금부에서 취조를 당한다.

조선은 당시 왕정사회였지만 엄연히 법이 존재했다.

허가받지 않은 외국출정과, 당시 왜인(일본인)과 울릉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조선의 천민이었지만 공무원을 사칭하여 말을 하였으므로, 이는 조선에서 중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울릉도를 공식적으로 조선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받고 돌아온 그에게 상을 내려야 하지만, 공무원 사칭은 중죄다.

일반적인 판례라면 사형까지도 가능한 수준의 중죄이지만, 외교적으로 큰 업적을 올린 그이기에 천민에게 조선의 의금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귀양이라는 처벌뿐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정평이 높은 성호 이익은 안용복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다. 미천한 일개 군졸로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계책을 내어 강한 적에 대항하였다. 왜인들의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하였으며, 한 고을의 땅을 회복하였다. [성호사설 3권, 이익]


안용복의 고향이 부산 동구이기 때문에 바로 이곳에 안용복 기념관이 있는 것이다.

기념관은 아담하다.

바로 앞에 그가 타고 다녔을 법한 배 한 척과 조선시대 의복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모든 사용료는 무료이니 마음 편히 즐기셔도 좋다.

작은 기념관이지만 내용이 알차다.

지위가 무슨 상관이랴, 옳다고 생각한 일을 당당히 말하는 안용복은 안용복 장군이라 불릴 충분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안용복 기념관 바로 앞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알록달록한 아파트 사이에 있는 작고 소중한 엘리베이터는 내부에 에어컨까지 설치되어 있다.

증산공원까지 편하게 모시는 엘리베이터는 시원하다

동구시민들의 시원하고 튼튼한 다리가 되어주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평일에는 관리해 주시는 어르신들이 2분 이서 맞이해 주신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바로 출동해 주시는 기사분들이 있나 보다. 믿음직한 엘리베이터다.

그렇게 부산시내가 내려다보는 시원한 엘리베이터 2개를 타면 금세 증산공원에 닿을 수 있다.

좌천 아파트와 증산공원, 팔각정은 필수코스다.

증산공원 바로 입구에는 오래전에 지어진 좌천 아파트가 있다.

아름다운 색감과 예스러운 모습에 금방 시선이 간다.

여기도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공간이다.

귀가 어두운 어르신이 틀어놓은 tv소리가 공원을 오르는 내 귓가에도 들릴만큼.

소란한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다.

언젠가 또다시 들러서 천천히 즐겨보고 싶은 곳이다.

계단을 오르고 오르면 증산공원의 제일 위에 위치한 팔각정을 만날 수 있다.

이곳 정말 추천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히 올라와서 맛보는 산 정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을 한껏 맛볼 수 있다.

증산공원 팔각정에서 바라본 부산 전경

한여름에도 등산을 맛볼 수 있구나.

누구보다 시원하게, 더 빠르게.

팔각정은 시원한 바람이 많이 불어서 쉬고 계시는 어르신 분들이 많이 계셨다.

나만 빼고 좋은 곳을 많이 알고 계시는군요.

계단 조금 올라왔다고 흐르던 땀이 금세 식는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 탁 트인 조망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증산공원의 명물. 바로 무덤가도 가보았다.

증산공원 놀이터 앞에 위치한 무덤

정삼품(正三品) 통정대부(通政大夫) 부령 김 공(扶寧 金公)

 출처: https://cutekorean.tistory.com/452 [cutekorean:티스토리]

바로 부안 김 씨 입향조 김재성 할아버지의 무덤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용두산 공원에 있던 할아버지의 묘를 이곳 증산 공원으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터가 좋은 곳에 선조를 안치시킨 후손들은 용두산 공원 개발과정에서 근처의 공동묘지로 할아버지의 묘를 이전한 것인데, 이장한 공동묘지도 공원으로 재개발되어 다시 이장하라는 행정기관의 권고를 받은 것이다.

절차에 따라 이장을 했는데, 또다시 행정기관에서는 이장을 요구한다.

후손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직 문제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고,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는 형태다.

완만한 합의가 필요한 상태.

증산공원에 여유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은 놀이터 한가운데에 있는 무덤을 보며 왜 여기 있을까 의문만 가질 뿐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사안을 눈으로 확인.

오늘의 목표는 달성되었다.


부지런히 돌아다닌 하루였다.

이렇게 역사를 진하게 맛볼 수 있는 하루라니.

역사는 선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곳을 지키는 사람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극히 드물었다.

나는 한번 가보고 좋아서 주말에 가족들을 대동하고 또 들렀다.

주말에도 한산한 이곳은 혼자보기 정말 아까운 곳이다.

재미있고 자랑스러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곳, 편하게 등산할 수 있는 곳.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아름답게 나온다.

하늘과 맞닿을 정도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부산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당신이 이곳에 시간을 내서 방문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더 많은 이야기들, 지식을 안고 갈 수 있다.

그리고 증산공원이 끝이 아니다.

증산공원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산복도로를 만날 수 있다.

산복도로가 전해주는 이야기도 기깔나게 재미있다.


부산하면 바다가 떠오르지만, 산을 보는 것도 흥미롭고 재미있다.

여러 가지 체험을 하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바다보다는 관광객이 적어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나만 알기 아까운 것들이 참 많다.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조금 더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불쾌지수 높아지는 여름에도 행복할 일이 참 많아서 좋은 하루다.

당신의 더위도 1도 낮추는 즐거움이 있는 하루가 되기를.

이전 08화 제1회 북 앤 콘텐츠 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