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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Aug 25. 2024

제1회 북 앤 콘텐츠 페어

벡스코 제2 전시관이 사람들로 가득 찬 어느 날

날씨가 미쳤다.

24 절기 중 14 절기인 처서도 지났는데, 더위는 우리 곁에 있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것이다.

봄과 가을의 푸릇함과 서늘함을 좋아하는 이유는 추위와 더위가 지나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을을 목놓아 기다린 적이 언제이던가.

시간이 가는 것이 두렵지만, 또 얼른 추석이 와서 패딩을 꺼내고 싶은 양가적인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은 다만 나뿐일까.

가을 내놔. 얼른.

이렇게 더운 날 나는 벡스코 제2전시관에서 열린 제1회 북 앤 콘텐츠 페어전에 참석했다.

며칠 전 다녀온 증산공원의 여파다.

더위를 피해 잠시 쉬기 위해 들른 동구도서관에서 북 앤 콘텐츠 페어전 무료 초대권을 발견한 것이다.

역시 사람은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고,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직접 보고 확인해야 한다.

사전등록을 하면 무료로 볼 수 있지만, 이미 시간이 지났고, 누구나 다 참여가 가능하지만 사전등록을 하지 않으면 5,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무료 초대권은, 무조건 참석하라는 신의 선물이었다.

무계획형 인간인 나는 벡스코 앞 버스정류장에 내려 늘 가던 대로 벡스코 제1전시관으로 향했다.

잉?

북 앤 콘텐츠 페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지 않다.

표를 확인해 보니 벡스코 제2 전시관에서 행사가 열린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는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거니까.

잇잡버스 투표하면 선물을 줍니다.

덕분에 제1전시관 앞에 있던 잇잡버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무언가 시민의 참여를 바라는 행사 관계자의 눈빛이 보였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나도 한 번 해보자.

학생부터 노년층까지의 취업지원에 대한 생각과,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간단한 투표였다.

스티커를 2개 붙였는데 뽑기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로또인가.

1등 상품이 춘식이 차량번호판.

춘식이를 좋아하는 분이 당첨되면 좋겠구먼.

나는 번호 60번. 4등이 걸려 간식세트를 선물로 받았다.

뜻밖의 선물이다.

덥지만 기분 좋게 벡스코 제2 전시관으로 향했다.

그동안 벡스코는 많이 오고 다녔지만, 제2 전시장은 처음이다.

어릴 때부터 코믹 페스티벌을 자주 다녀온 덕분에 벡스코가 익숙하다.

학술대회 공간으로도 많이 활용되는 제2 전시장은 입구부터 시원했다.

입구에서 바코드를 찍어 본인인증을 하고 무료 초대권을 보여주니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아주 오랜만에 팔찌도 껴봤다.

왠지 놀이동산 자유이용권을 득템 한 기분.

팔찌차고 돌아다니는 어린이가 된 듯한 기분.

넓은 공간에 설레는 사람들의 눈빛이 가능하다.

활자가 보다 많은 공간.

다양한 책들이 모여있었다.

대부분의 책들이 현장구매하면 1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들도 보이고, 처음 보는 출판사도 보였다.

역시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행사 부스의 크기부터 다르다.

독립출판사의 이름으로 참여하신 새내기들의 수줍은 눈빛이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중간중간 사람들의 참여를 바라는 이벤트 부스들이 있었다.

함께 나누고 싶은 나의 책장.

나는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었더라.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바로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다.

일기처럼 부담감 없이 쓰인 글인데 참 공감된다.

하지만 두꺼운 책의 특성상 쉽게 읽히진 않는다.

아직 인상 깊은 구절이 없어 이벤트에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찬찬히 더 읽어보고 좋은 독후감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불안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불안이고,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답으로 귀결되는 중이다.

지금 당장 무얼 하지 않아도 꾸준하게 뭐든 한다면, 나중에라도 가치 있는 것이다.

추억의 뽑기는 정말 추억이다.

재미나게 놀거리가 함께 있었다.

종이 딱지는 언제 적인가. 가격이 20원. 1980년대 물품인가.

아직까지 생산이 되고 있는 것인지, 예전 물건을 간직하셨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잘 관리가 된 모습이었다.

심지어 종이 인형놀이가 있어서 굉장히 탐이 났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종이 인형놀이.

어깨끈을 잘못 자르면 쓸 수가 없는. 신의 가위질을 해야 하는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의 장난감.

종이류는 대부분 1장 2,000원에 구매할 수 있었다.

중간에 뽑기가 있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사행성이 짙지만, 상품이 전혀 과하지 않다.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니까.

솔담배도 보였다.

어른의 물품이 함께 있다.

어른은 추억을 간직한 채 아이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어른들의 놀이터다.

여러 공간이 재미로 가득 찼지만, 내가 제일 좋았던 곳은 바로.

책과 관련된 부속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예쁜 책커버와 책갈피.

특히나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미니북 책갈피다.

돼지가죽과 호주에서 온 고급종이로 만들었다고 관계자분께서 설명하셨다.

그의 설명과는 논외로 나는 책표지 그림들에 마음이 뺏겼다.

빈 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그림 자체만 보아도 어질어질한 것이 갖고 싶었다.

1개 3,000원, 4개 10,000원

그렇다면 무조건 4개.

서양화와 동양화, 동물과 종교 부문으로 종류가 나뉘어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뭉크의 절규가 좋다고 한다.

역시 특색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없는 부스는 물건에 관심이 역력히 있어 보이는 사람 한 명만 가게 앞에 있어도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선다.

아무도 없던 부스에 내가 한참을 책갈피 고르기를 하고 있으니 대여섯 명의 손님이 들어섰다.

막간 이벤트로 책갈피를 판매하던 부스에서 네이버 알림받기를 하면 명화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오늘은 선물 받는 날인가 보다.

돈을 쓰고 선물을 받았다.

내가 나에게 하는 선물.

또 곁의 사람에게 책을 좋아하게 만들 선물.

내가 고른 명화는 모네의 풍경화.

바라만 봐도 마음이 고즈넉해지는 그림이다.

유화는 평면의 그림인데도 그 질감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그림카드를 어디에 놓을지 상상만 해도 설렌다.

그리고 다른 부스들을 구경하다가 책을 읽을만한 좋은 자리를 발견했다.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공간이었다.

다양한 책을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바리스타 대회에서 1등 한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사서 마실수도 있고, 맛있는 빵을 곁들일 수도 있었다.

이미 자리는 만석이다.

다행히 내 자리 하나는 남아있었고, 잠시 쉬면서 책을 볼 수 있었다.

작가 강연 프로그램 일정

행사는 금, 토, 일. 총 3일 진행되는데, 3일 모두 좋은 강연이 함께하고 있었다.

나는 다만 시간이 안 맞아서 보지 못했지만 분명 알차고 좋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책구경, 사람구경, 좋아함 구경을 하다가 저작권 관련해서 상담을 진행하는 부스를 만났다.

간혹 참고하거나 그림을 삽입할 때 궁금했던 저작권법에 대해 문의를 하니 친절하게 답해주셨다.

질문만 했을 뿐인데, 이곳에서도 선물을 주셨다.

기본적인 양치세트.

별거 안 했는데 가방 안이 선물로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었다.

역시 좋다.

구경거리, 놀거리, 심지어 선물까지 주는 북앤 콘텐츠 페어

돌아오는 길마저 즐거웠다.

가방이 예기치 못한 선물로 가득 차서 그런가.

시원한 버스 안에서 더위를 한 김 식히니 특별히 더 좋았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더없이 알찬 선물들이었다.

특히 내가 나에게 한 선물이 제일 좋지만,

이제 곧 더위가 끝날 것이고, 다시 유행하는 코로나에 대비해 마스크를 항시 쓰고 다녀야 하니 요긴하게 쓰일 양치세트.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간식세트.

바라만 봐도 평화로운 명화그림.

소소하고 사소하지만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시 미니북 책갈피를 만들 생각을 하니 더 흥분되었다.

지치지만 쉴 틈이 없다.

미니북 책갈피 만들기 도전

일단 미니북 안에 들어갈 문구들을 선정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구절.

타인에게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기보다는 객관적이길 노력하자는 글귀를 늘 가슴에 새긴다.

사람을 싫어하지 말자, 그도 누군가에게는 사랑받는 존재고 이로운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첫 번째 문장은 볼펜이 자리잡지 않아서 번졌지만, 그것 또한 멋으로 생각하자.

무엇이든 다 처음이란 것이 있으니까.

처음은 어색하고 서툴다.

그리고 곧 익숙해지고 능숙해진다.

모든 것이 그러하다.

DIY 제품이지만 따로 필요한 것들이 있다.

바로 가위와 송곳, 그리고 본드다.

이미 집에 있는 물품이므로 설명서를 보고 어려움 없이 만들 수 있었다.

내가 만든 미니북 책갈피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드는구나.

종이를 책표지에 붙이는데 풀을 이용하라고 했지만, 나는 풀의 접착력을 믿지 않으므로 본드를 이용했다.

그래서 꽤나 튼튼한 책갈피가 완성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 가득 담긴 나만의 책갈피.

선물해도 좋을 것 같다.

역시 잘 골랐다.


책갈피를 완성하고 나니, 이제 외출하고 돌아온 피로감이 몰려왔다.

드디어 쉴 수 있겠구나.

만들기 한다고 어질러놓은 방안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비우고, 밖에서 흘렸던 땀을 씻어 내린다.

온전하게 휴식할 수 있는 시간.

오늘의 외출을 곱씹어본다.

예상외의 순간들이 다가왔지만,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가기.

새로운 것에 주저함 없이 다가가기.

잇잡버스에서 행사 중인 직원분의 무료함을 잠시나마 없애주었고, 한산한 판매부스를 사람이 많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기침과 같다.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좋아함으로 가득 찬 공간에 다녀온 나는 귀가 후에도 그 여운이 남아있었다.

아직 내가 만들어야 할 책갈피는 3개나 더 있지만, 그것마저도 좋다.

함께 미니북 안의 내용을 채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덧없이 흐르는 시간, 끊임없이 공존하는 지구가 검은 우주 속에서도 살아있는 이유는 소소한 하루 속에서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나도 오늘은 동참한 기분이다.

당신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주저하지 말고 당당히 손을 뻗어 그 기회를 당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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