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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Sep 01. 2024

내가 떡볶이를 좋아하는 이유

추억의 맛을 찾아서 떠난 부전시장과 서면 1번가 먹거리

나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고추장을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고추장을 그냥 퍼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다.

고추장을 그냥 먹으면 잔소리를 들으니까, 옆에 있던 멸치를 찍어 먹었다.

등교 전 필수품이 고추장과 멸치일 정도로 푹 빠져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때 롤러스케이트 타다가 발목이 부러져 지역병원에서는 받아주질 않아 부산 백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았다.

이때 성장판은 닫혔고 내 키가 멈출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그때 내 키는 158cm였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나는 고추장이 정말 좋았다.

그 덕에 멸치를 미친 듯이 먹었던 나는 그 후로도 10cm가 더 컸다.

그러다 멸치에 질렸던 나는 고추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떡볶이다.

떡볶이는 어디서 먹던 맛이 다르다.

각 집마다 고유의 고추장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앞에서 파는 떡볶이의 맛은 비슷하다.

그 이유를 찾아보겠다고 매일매일 찾아가 떡볶이를 먹었지만, 결국 이유를 찾지 못하고 살만 쪘다.

그렇게도 좋아했던 떡볶이.

오늘은 그 맛있게 먹었던 추억의 떡볶이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아침부터 세운 나의 계획은 바로 범일동 매떡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매운 떡볶이로 소문난 집.

처음의 기억은 늘 아련하다.

강렬한 매운맛 때문에, 얼굴에 경련까지 일어났다.

그럼에도 맛있게 먹었던 범일동 매떡.

매운맛이 강렬하면서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단맛을 좋아했다.

극한 자극에 자주는 못 가고 날이 선선할 때 찾아가곤 했다.

그랬던 범일동매떡 1인분 가격이 5천 원에 달했다.

그건 아니지 않나.(가격 거부감)

일단 부전시장에 내려서 환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잠깐 부전시장을 구경하다가.

떡볶이 비교체험?!

사람들이 많은 떡볶이 집이 있었다.

홀린 듯이 들어가 떡볶이 1인분을 주문했다.

부전시장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떡볶이

부전시장 입구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이미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

처음 와본 곳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맛을 보장해 주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떡볶이 1인분을 주문하니 바로 포장해 주셨다.

바로 앞에서 식사하시는 분들이 튀김을 맛있게 잡숫고 계셨다.

다음에는 튀김까지 야무지게 먹으리.

순대와 유부초밥, 꼬마김밥이 입구에서 당당하게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부전시장 월구떡볶이 메뉴들이 입구에서 유혹중이다

오늘은 떡볶이 투어이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한다.

따끈한 떡볶이 봉지를 들고 범일동을 가야 하나, 버스 환승시간을 확인하니 촉박했다.

범일동 매떡이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떡볶이었나?

고민은 짧았다.

다음 나의 행선지는 바로 서면 1번가 먹거리 거리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부전시장에서 떡볶이의 단짝, 당면만두를 구매해서 갔다.

당면만두마저 가격이 올라서 20개 3,200원 가격에 깜짝 놀랐던 것은 안 비밀.

물가가 계속 오르니, 나의 엥겔지수가 높아만 지지만, 그래도 나는 맛있는 걸 포기할 수 없다.

서면 1번가는 부전시장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한다.

시간은 정오로 흐르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설마 아예 없어지진 않았겠지.

포장마차에서 판매하는 떡볶이는 늘 정겹고 맛있다.

하지만 날이 더운 날 먹으면 딱 쉬기 쉽다.

위생문제도 있고, 날이 너무 더우면 음식이 잘 상한다.

예전에 한 번 사 먹고 기분이 안 좋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한동안 여름에는 서면 1번가에서 떡볶이 먹지 않는다가, 오늘은 나쁜 기억을 지우고 도전한다.

두근두근 하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서면 1번가에 다행히 문을 연 떡볶이집이 있었다.

서면 1번가 떡볶이는 1인분 4,000원

직장인들이 이미 떡볶이 주위에 빙 둘러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

만두와 해물찌짐, 순대와 어묵이 있지만, 다들 먹는 음식은 떡볶이다.

그 근처만 가도 풍기는 떡볶이 냄새가 있다.

진한 고추장의 향기, 이곳만의 특색이 있는 오묘한 냄새가 있다.

예전에는 이 거리 전체가 떡볶이 포장마차로 가득했었는데, 오늘은 단 한 곳만 문을 열고 있었다.

떡볶이 포장마차로 유명했던 이곳은 다른 떡볶이 체인점들이 대체되고 한 곳만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나도 이곳을 자주 찾지 않았으니, 다만 나의 향수를 지켜주는 이 떡볶이 집의 고마움이 가득 담겼다.

떡볶이를 주문함과 동시에 가위로 자르면서 비닐봉지에 넣어주신다.

예전보다 크기가 작아진 떡에 조금 놀랐지만, 일단 집에 가서 확인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떡볶이 봉투를 꽉 잡아매었지만, 버스를 타기에는 부족하다.

가져온 장바구니 봉투에 넣고 다시 백팩에 넣었다.

만족.

그렇게 따끈한 백팩을 안고 집으로 가는 길이 설레었다.

식사시간이 지났지만, 조금만 있으면 완벽한 식사를 할 수 있으리라.


집에 도착하자마자 떡볶이는 식탁에 두고 당면 만두를 바로 프라이팬 위에 올린다.

기름에 튀기듯이 구워야 맛난 당면만두를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집에 있던 가지전을 같이 데웠다. 흥분되는 곁들임 음식이다.

시원한 버스 안에서 식은 떡볶이는 접시에 덜어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운다.

내가 나를 위해 식사준비하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수 없다.

떡볶이 맛있게 먹는 방법은 당면만두와 가지전

추억의 맛을 찾아 떠나온 길의 수확물이 실하다.

생각지도 못한 부전시장에서 구매한 떡볶이는 양도 든든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가래떡이 젓가락으로 한 번에 집기 무거울 정도로 크고 든든했다.

향은 학교 앞에 파는 떡볶이에서 나는 향과 똑같았다.

당근과 파가 제법 들어있었다.

양념까지 넉넉하게 들어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기분이 좋았다.


서면 1번가에서 구매한 떡볶이는 바로 비교가 되었다.

진한 고추장향과 끈끈한 양념은 한눈에 보아도 양이 적었다.

떡의 크기가 옆에 있는 떡볶이의 반도 안되었다.

같은 1인분과 다른 가격.

작년에는 1인분 3,000원이었는데, 천 원이 오른 이유를 모르겠는 담음새였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부전시장 떡볶이는 떡과 어묵이 적당히 입어서 폭신하고 먹기가 수월했다.

양념은 순했고, 국물이 많은 대신에 간이 삼삼했다.

서면 1번가 떡볶이는 양념이 적은 대신에 간이 세다.

짜고 달고 매콤하다.

하지만 떡과 어묵이 덜 익어서 맛이 별로였다.

심지어 양념도 방금 풀었는지, 양념에서 멸치가루와 다시마 향이 그대로 났다.

초보자가 비싼 양념을 풀어쓴 맛이었다.

예전에는 정말 맛있게 먹은 1번가 떡볶이였는데, 오늘은 완전 실망이었다.

기대 없이 구매한 부전시장 떡볶이는 학창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추억을 지키기 위해 구매한 서면 1번가 떡볶이는 실망해서 다시는 사 먹고 싶지 않은 맛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하나만 구매하지 않아서.

더 좋은 것을 찾을 수 있어서.

가래떡 떡볶이의 매력은 알맞게 익은 떡의 식감이다

안도감과 실망감을 함께하며 먹는 떡볶이의 맛은 오묘하다.

내가 구운 당면만두와 가지전의 맛이 참 좋구나 생각하면서.

추억은 추억으로 두어야 그리워진다.

과거의 시간에 멈추어있는 기억을 지켜야 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린이에게 떡볶이는 매운 음식이다.

어릴 때부터 고추장을 퍼먹던 나에게 떡볶이는 매운 음식이 아니었지만 친구들에게는 도전과도 같은 음식이었을 것이다.

호불호가 분명한 나의 식성에 맞추어 주던 친구가 날 위해 함께 먹던 떡볶이에는 진한 우정이 담겨있었다.

맛있게 먹는 내 모습에 같이 행복해하며 함께 먹던 친구가 흘렸던 눈물.

그만 먹으라고 만류하던 나에게, 맛있는데 매워서 어쩔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이라며 연신 휴지로 눈물을 훔치던 친구의 눈물겨운 우정.

만들 수 있는 음식이 떡볶이뿐이었던 내가,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만들어 주었던 떡볶이.

접시에 덜어주며 맛있게 먹으라던 나의 말에 군말 없이 한 그릇 비워주던 친구들의 마음.

그때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니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떡볶이를 먹었던 이유는 나를 위하는 그들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웃으면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

그렇게 자란 나는 인간 떡볶이가 되어, 나를 보기만 해도 떡볶이가 먹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에게는 떡볶이가 사랑이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음식이 바로 떡볶이다.

혼자 먹어도 외롭지 않다.

늘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한 맛에 서운함이 들기보다는, 오늘의 아쉬움은 주머니에 넣어놓고, 추억만 남겨놓자.

더 좋은 맛의 떡볶이를 찾았으니까 더 좋은 것이다.


날짜는 여름의 막바지인 듯한데, 더위가 쉬이 가질 않는다.

오래도록 나와 함께하고 싶은가 보다.

그래도 가야 할 때는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 올 때 반가운 것이다.

미련 가지지 말고 후련하게 떠나보내야지.

날이 시원해지면 나는 떡볶이를 더 많이 먹게 될 것이다.

더위와 상극인 떡볶이는, 여름이 지나면 훨씬 수월하게 먹을 수 있다.

하루 3끼, 1년 365일 먹어도 질리지 않은 내 음식 떡볶이.

당신에게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추억의 음식이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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