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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Sep 08. 2024

도심에서 즐기는 과거로의 여행

정관여행중에 만난 박물관과 칼국수가 맛나다

9월이 왔는데도 덥다.

이 더위는 쉽게 떠나기 싫은가보다.

미련은 서로를 지치게 할 뿐이다.

우리 시원섭섭하게 안녕하자.

내년에 또 만날 거니까.

입추가 지났는데도 가을이 오지 않으면 고추잠자리가 섭섭해하고, 코스모스가 늦게 필 수도 있으니까.

아무 계획없이 나선 길이었다.

그동안 장바구니에만 넣어놓고 사지못했던 레디백을 다이소에서 발견했다.

뭐지?하는 의아함과 동시에 기쁨이 샘솟았다.

이것은 나에게 새로운 여행과 동기부여에 힘을 실어주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게 나의 소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소비를 위한 소비를 시작했다.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것은 내것이라는 증명이다

멀리서 보아도 내것이라는 티가 나게 표시를 해놓고, 집 안에서 앉아서 책볼 때 쓰는 받침이 되었지만, 애초에 생각한 그 용도이므로 기분좋게 사용하고 있는 레디백이다.

이제 곧 내가 사용하는 도구들과 책으로 무거운 짐들을 보관하는 아름다운 가방으로 그 쓰임새가 이로울 것이다.

그렇게 산 가방을 안고 쫄래쫄래 걷다가 교차로에서 현수막을 만났다.

정관 박물관의 새로운 전시

이제 우리의 일기를 쓰겠소.

매일 일기를 쓰는 나는 이것이 무어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하늘은 청명하고 나는 시간이 있고, 그렇다면 가는 것이다.

정관은 신도시 조성사업으로 공사를 들어가기에 앞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존, 관리하면서 박물관을 건립하였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라 박물관 전체가 밝은 분위기이고 유물 수가 많지는 않지만, 관람하기에 어려움이 없이 편하게 보기 좋게 만들어져있다.

이번 방문이 나에게는 한 10번정도 되었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방문객수가 적어서 여유롭게 관람이 가능하고,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장소인 실외 전시관이 잘 조성되어 있기때문에 시간이 나면 혼자 가서 사색하기에 퍽 좋다.

정관 박물관은 3층 전시실 관람이 먼저다.

역시 이용객이 나 한사람 뿐이다.

늘 기대를 져버린 적이 없다.

넓찍한 로비를 지나면 1층 안내데스크에서 바로 3층을 이용하라는 안내의 말을 전해주신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3층으로 가니 만나는 오늘의 전시.

삶, 그리고 기억.

3층 안내데스크에 새로운 선물이 있었다.

전시를 보다 재밌게 즐기기위한 스티커제품이 돋보였다.

아이들이 오면 참 좋아하겠구먼, 그러면서 내 것을 하나 챙겼다.

접근성을 높이려는 박물관의 노력과 정관 출토품인 집모양 토기

정관박물관은 삼국시대 생활사를 엿볼 수있는 생활사 박물관이다.

정관은 예부터 소두방으로 불리며, 그 이름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소두방 공원이 그 몫을 톡톡히 하고있다.

소두방은 소댕의 방언으로, 소댕은 솥을 덮는 뚜껑을 말한다.

말 그대로 솥 뚜껑 모양의 소두방 공원은 황토길을 조성하여 맨발로 걷기 참 좋은 공원이다.

그렇게 정관의 오래된 이야기로 시작된 전시 바로 앞에서 만난 집모양 토기.

신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될 때 출토된 집모양 토기다.

솔잎모양으로 된 11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집모양 토기는 삼국시대의 초가집 모양으로 추정하며 집 내부가 원통형 구조로 되어있어, 이는 굴뚝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바로 앞은 가동 유적 36호 집자리를 재현한 삼국시대 집 속의 모습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저장공간과 저장용기, 저장내용물

국사책을 펴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구석기, 신석기시대 이야기이다.

우리는 발굴된 도구로 당시의 시대상을 상상하고 그려본다.

지층 아래에 묻혀있던 유물들이 온전히 보관되어있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박물관에서 만난 토기나 기타 물품들이 깨져있거나, 부서져있거나 하여 복원된 유물들을 보다 쉽게 만날 수 있다.

발견된 토기 옆에 씨앗이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무얼 먹고 살았는지, 농사나 수렵활동을 하였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먹고있는 복숭아나 팥 등도 그 시절 사람들이 먹고 생활했다고 하니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시대의 농법, 화훼법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을까 하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농부와 포수, 그리고 어부, 뼈로 점치기와 새 숭배.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러하다.

생산활동에 참여해야 먹고 살수 있었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재화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많다.

원초적이지만, 땀의 결실을 맛볼 수 있는 삶을 살았던 그 시절을 엿보는 재미.

동물 뼈에 그려진 점을 보고 미래를 예견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

그리고 곡식의 씨를 물어다주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던 새를 숭배했던 선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새 깃털을 이용한 장식들을 사극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큰 새의 깃털을 이용하여 장례를 치른다는 내용도 많다고 전해진다.


판갑옷과 정관 박물관을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

옛 사람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무덤에 있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그들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그 시절의 제련방식과 수공능력이 여실히 보이는 판갑옷의 모습이다.

갑옷의 모양, 크기로 그시대 사람의 체격과 제련기술을 추정할 수 있다.

신라와 가야문화의 만남으로 보다 화려한 문양이 돋보인다.

그렇게 길지 않은 전시관람을 마치면, '이제 우리의 일기를 쓰겠소' 특별 전시를 만날 수 있다.

그동안 정관 박물관을 위해 일한 사람들의 보고서와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순간순간의 기록들을 만날 수 있다.

모란 사자무늬 청동 손잡이 거울과 어린이 체험실

예나 지금이나 거울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특히 거울에 꽃무늬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들고 봐야하기 때문에 손잡이가 필수다.

인간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모란과 사자 문양을 거울에 새긴 예는 일본 무로마치시대(1336-1573)에 등장하여 에도시대(1603-1867)에 유행했다.

일본 거울은 17세기부터 18세기 조공무역, 공무역, 사무역 등을 통해 유입되거나 조선통신사의 예물 증답품으로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물관에 전시된 거울은 앞보다 뒷면을 보게된다.

모란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사자무늬 손잡이 거울이다.

거울위에 핀 모란꽃이 바람이 불면 살랑살랑 춤을 출 것 같이 생생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원근법을 무시한 사자는 무섭기보다는 귀여워보일 정도.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오면 어린이체험실을 만날 수 있다.

미리 예약도 가능하고, 이용객이 없을 때는 바로 이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해주셨다.

아이들이 체험하기에 정말 좋은 박물관이다.

나는 아이가 아니므로 발길을 돌려 내가 가고 싶은 장소로 향했다.

정관 박물관 전시관 보다 더 큰 야외 전시 공원

청명한 하늘에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특히나 이용객이 없기 때문에 나혼자 전세낸 공간이다.

높다란 망루와 소두방공원의 푸른 나무들의 조화가 그때 그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다.

평소에는 닫혀있던 고상창고의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가보았다.

땅의 습기로부터 곡물을 보호했던 고상창고.

봄, 여름, 가을 열심히 재배하고 수확한 작물들을 보관하여 겨울을 이겨내게 했던 고마운 고상창고다.

정관 박물관 야외 전시 공원

팔각정 쉼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소두방 마을의 모습을 재연한 곳이다.

제사장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의 모습.

마을을 지키는 울타리와 큰 살림집과 작은 살림집, 고상창고와 망루, 우물이 존재한 곳이다.

예전에는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물은 정말 중요한 존재다.

이 물을 길어 각 가정에서 하루를 살아갔을 것이다.

마을을 지키기 위한 망루에 서서 밤을 새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농사의 안녕을 기원하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아무도 없으므로 천천히 한 공간, 한 공간을 들여다보았다.

좁은 집 안에 주방과 거실, 방, 창고 모든 것이 한 공간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북적하게 살아도 삶은 살아진다.

지금은 각자의 개인공간을 원하고, 자신의 공간을 침해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사회는 계속 발전하고 모두를 위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것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물론 나역시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찾은 이곳이다.

함께해서 좋은 것과 혼자라서 좋은 것.

양가감정이 드는 순간이었다.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왠지 투박한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정관 맛집 장가네 칼국수

식사시간마다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다.

매주 일요일 휴무

영업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브레이크타임 오후3시부터 오후 5시까지

토요일은 3시까지 운영.

얼큰한 칼국수가 먹고 싶다는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았기에 방문한 곳이다.

앉자마자 테이블에 주어지는 김치에서 이 집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김치와 고추, 양념장만으로도 맛있는 식사가 예상된다.

얼큰 칼국수와 비빔칼국수, 김밥 한 줄을 주문했다.

맛집의 자부심은 원산지 표시에 있고, 내 최애메뉴는 김밥이었다.

원산지 표시가 귀여웠다.

고춧가루 국산과 중국산 섞음.

왜 섞었을까. 중국산만 쓴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국산을 쓴다고 하고 중국산을 섞어 쓸수도 있을 것인데.

섞으면 더 맛이 있는 것일까.

칼칼한 맛이 좋은 얼큰 칼국수였다.

내가 먹은 비빔 칼국수의 야채량이 마음에 쏙 들었다.

초고추장의 맛보다, 숙성된 양념장의 맛이 좋았다.

담백한 온육수에 테이블에 준비된 양념장을 넣어 먹으니 정말 맛있는 온육수가 탄생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참기름 향이 진하게 배어있는 김밥이었다.

내용도 실하고, 참기름을 양껏 부어주신 김밥을 한 입에 넣으면 행복한 맛이 차오른다.

비빔 칼국수는 숙성된 양념장과 풍성한 야채가 맛을 좌우한다.

오랜만에 진짜 맛있는 외식을 즐겼다.

비빔 칼국수 안에는 많은 채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콩나물, 호박나물, 채당근, 단무지 그리고 김가루와 깨소금까지.

면 반, 야채 반과 감칠맛 도는 양념과 투박한 칼국수면이 어우러져서 정말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채식이 있을까.

달콤, 상콤, 매콤한 비빔 칼국수와 함께 먹는 김밥 한알의 맛은 금상첨화다.

얼큰 칼국수를 먹으러 왔지만, 비빔 칼국수와 김밥에 반해버렸다.

좋은 것을 찾아 왔는데, 더 좋은 것을 찾은 사람의 기쁨은 배가 된다.

그렇게 기분좋은 식사를 하고 오늘의 하루를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 날이 있다.

유독 갈증이 심한 날.

무얼 해야할지, 어디를 갈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때에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행운에 큰 힘을 얻게 되는 날.

행운과 행복, 불운과 불행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오늘은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이지만, 다른 날들보다 조금 더 미소짓는 날이었다는 것.

사실 정말 즐거워서 당장에라도 소리지르고 싶지만, 혼자 잔잔하게 즐기고 싶었다.

지역 박물관은 크기가 작다.

그만큼 지역적 특색을 지니고 있고, 오늘 방문한 정관 박물관에는 실외전시관이 참 매력적인 곳이다.

혼자 즐겨서 여유로왔지만, 여러사람이 공존해도 배경이 충분히 아름다운 장소다.

10년간의 정관박물관의 이야기를 깔끔, 담백하게 풀어낸 전시였다.

체험을 마치고 먹는 투박한 칼국수와 김밥의 맛까지.

완벽한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현실에 지친 당신, 때로는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을 다녀보는 게 어떠실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옛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배부른 하루를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함부로 좋다고 말하면 질투와 시기가 두려워지는 오늘.

나는 좋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당신은 나보다 더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부러워서 더 재밌는 곳을 찾을 수 있게요.


참고자료 : 정관박물관 배부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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