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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Sep 11. 2024

마법학교인가, 새로워진 부산대 박물관

박물관은 못 보고, 가온나래에 푹 빠진 날

9월에 이렇게 더워도 되는 것인가.

추석이 오면 패딩을 꺼내곤 했는데, 올해는 무슨 일인지.

열대야에 밤잠을 설치고 낮에는 강렬한 자외선에 몸이 녹는다.

마구 더우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한여름 열일했던 에어컨도 힘들다고 소리친다.

에어컨필터 청소하라는 경고등이 뜨고, 에어컨 수리 기사님들은 굉장히 바쁜 오늘.

배고픈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그럼 어쩌겠는가. 내가 해야지.

드라이브를 들고 에어컨 뒤판의 나사를 풀고 필터를 꺼낸다.

기름때인지, 곰팡이인지 시커먼 부분들을 열심히 닦아내고, 구연산과 물을 희석해서 만든 소독제를 필터에 분사한다.

나사는 돌려서 뺄 때는 쉬웠지만, 다시 끼울 때 어찌나 제자리를 찾기 힘든 건지.

비지땀을 흘리며 작업을 완료했다.

에어컨을 켜니 필터가 제대로 청소되었나 보다.

한여름 힘쓰는 일 하시는 분들의 노고가 여실히 느껴지는 오전시간이었다.

일을 다 마치고 나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러나 쉬지 않고 나가야 한다.

오늘은 바로 부산대 박물관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와의 약속이지만, 쉬이 깨지 않는다.

잠은 시원한 버스에서 자도록 하자.

부산대 박물관은 9월 중 개장한다는 소식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박물관이 아니라,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가온나래 건물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마치 해리포터영화 속의 호그와트를 배경으로 한 이색적인 건물과 시민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문구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부산대를 방문하게 되었다.

부산대 입구, 안내도 몹시 중요하다.

개강한 지 얼마 안 된 9월의 부산대 캠퍼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서면 nc는 사라졌지만, 부산대 nc는 건재했다.

예전에 자주 쇼핑을 다녔는데, 요즘은 그저 먹는 것에만 치중해 있는 삶이라 쇼핑을 등한시했다.

조만간 들러서 환절기 옷을 구매하겠어요.

금방 정신을 차리고 부산대 안내도를 확인한다.

오늘 가기 위한 박물관은 첫 방문이기에 위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안내도를 한참 보다가, 역시 모르겠다는 결론을 짓고 위아래 방향만 확인한 후, 바로 직진했다.

시월광장은 학생들로 가득했다.

정오가 넘어서니 강렬한 자외선이 제할일을 하기 시작했다.

따가운 햇볕 사이를 천막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산대축제는 여름에 끝났는데 이건 뭐지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바로 동아리 회원 모집이었다.

음악동아리, 심리동아리 등이 모여있었다.

그들의 귀여운 호객행위가 있었다.

단것을 주면 좋지, 학생들의 푸릇함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대학생활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학교 자체를 즐겼으므로 미련은 없다.

학비가 아깝지 않은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길.

대학본부를 지나서 옆으로 난 길로 쭉 올라가니 박물관을 만날 수 있었다.

멀리서도 보인다. 독특한 돌벽으로 지어진 건물.

너는 무슨 마법을 가르쳐 줄거니.

부산대학교 박물관

학기 중에는 학생들로 학교가 넘친다.

다들 어딜 그리 바삐 가시는 건지.

나는 오늘 박물관을 즐기러 왔답니다.

박물관은 열지 않았지만, 박물관 별관을 구경하러 왔거든요.

푸른 지붕과 세로로 긴 유리창들은 마치 중세 유럽의 건물을 보는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맑은 하늘과 푸른 잔디의 조화로운 전경이 마치 동화 속으로 들어온 기분.

얼른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나래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있는 곳

가온나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먼저, 오른쪽 나래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문을 열자마자 나타나는 내부모습이 깔끔하고 편안하다.

높은 천장과 많은 의자들에도 각자의 개성과 공간이 나뉘어 있었다.

콘센트와 전등이 있는 자리는 이미 학생들로 만석이었다.

과제나 리포트 작업을 하는지 한창 바쁜 모습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좋았다.

나무로 된 천장이 마치 산장에 들어온 기분이다.

고요하고 조용했다.

나래 서재에 있는 도서는 나눔도서이지만 가득하지.

서재만 보면 설렌다.

책들이 대부분 한자로 되어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박물관에 있을법한 전문적인 서적이 한가득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나전칠기와 가야의 미를 골라 자리에 앉았다.

나전칠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문양이다.

오래된 장롱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었던 나전칠기.

보관함으로, 농으로, 도기로 다양하게 만들어진 나전칠기를 볼 수 있었다.

고려시대 작품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이 일본박물관, 개인소장이었고, 한국에 남아있는 오래된 나전칠기는 그 존재가 희귀했다.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느 시기에나 장인은 존재하고, 아름다움은 영원하다.

한 권을 끝까지 온전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나눔 도서는 누구나 가져갈 수 있지만, 혼자보기에 아까운 소중한 자산이라 다른 사람도 널리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좋은 책들 많으니까 살펴보세요.

가온은 근현대 관련 서적들이 많은 더욱 신기한 장소다.

나래를 충분히 즐기고 바로 옆 가온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꿈의 공간에 들어온 듯했다.

일단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데서 놀라움.

누군가의 서재에 몰래 들어온 기분.

창가에 비치된 테이블과 의자가 마치 나를 유혹하는 기분.

나는 나래보다 가온이 더 좋았다.

풍요로운 서재로의 여행은 즐겁다.

마치 남포동에 위치한 근현대 역사관의 책장을 가져온 느낌.

각 지역에 대한 이야기, 일제강점기 시대의 이야기,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역사서적, 근현대 이야기를 담은 웹툰까지.

꽤 볼만한 책들이 다양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었다.

중간에 자리한 넓은 협탁은 좋은 회의장소로 보였다.

열심히 회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렇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은 바로 나만의 장소다.

나만의 자리에서 편하게 즐기는 대학생활

창가자리에 자리 잡고 앉으니 역시 좋다.

푸른 잔디와 바삐 걸어가는 학생들이 좋은 배경이 되었다.

나도 마치 학생인 나로 돌아간 것처럼.

나의 서재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편하게 보는 기분.

풍요롭구먼.

다른 책장을 돌아보니 아이들이 볼만한 책도 꽤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간으로는 나래보다는 가온이 적격이었다.

관리하는 직원이 입구에 있기 때문에 조금만 소음이 일어도 금방 나타나 제재를 가한다.

깔끔하고 조용하게 관리되는 가온나래.

흠뻑 취할 수밖에 없었다.

박물관 전시를 구경하지 못해 아쉽지만, 다시 오면 되는 거니까.

부산대 박물관 옆과 앞의 모습

돌바닥과 돌벽의 느낌이 이색적이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 생각을 했을까.

바로 앞은 잔디고, 잘 관리되어 있었다.

들어갈 수 없게 해 놓은 것이 이 잔디의 장점이다.

그리고 오 층 석탑과 다양한 석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까이서 볼 수는 없었지만, 이것 또한 특별한 관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유물은 묘하고 호기심이 동한다.


오랜만에 부산대를 왔기에 바로 귀가할 수 없었다.

나의 청춘을 함께했던 부산대.

부산대 대학생은 아니지만, 열심히 부산대 어귀를 돌아다녔던 시민으로서.

다시 한번 그 추억을 되새기고자 열심히 걸어 다녔다.

나의 단골집들, 원조토스트와 이흥룡과자점, 지성문구

부산대 앞에서 파는 토스트는 유명하다.

바로 삼단토스트. 식빵이 3장 겹쳐져있기 때문에 한 끼 식사로 이만한 것이 없다.

그동안 물가가 꾸준히 올라서 가장 기본이 3500원, 맛있게 먹으려면 5000원이 넘게 오른 토스트.

한 입 할까 생각하다가, 쨍쨍한 햇볕에 다음으로 미루고 이흥용 과자점을 보았다.

명란바게트가 맛있는 곳.

나는 엄마를 위한 롤케이크를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사갔던 곳.

그러나 오늘은 당기지 않는다.

지성문구는 살 것이 없어도 가는 곳이었다.

그 시절 다이소 같은 존재.

아직도 내 책상과 가방 안을 메우고 있는 샤프와 볼펜들의 지분은 다 지성문구가 차지하고 있다.

다양한 필기구와 예쁜 노트는 항상 나를 유혹했다.

그래 밥보다 필기구지.

오늘도 볼펜 3자루를 산건 꼭 필요해서 산 것이다.


어디서 밥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부산대 박물관 가온나래에서 즐긴다고 2시가 넘어서 나오니, 웬만한 식당은 대부분이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아 나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 것인가.

역시 대학가의 맛집은 햄버거

오래 고민한 끝에 나의 선택은 바로 대학가의 맛집.

맥도널드 햄버거.

더운 날 수고로웠으니, 더블불고기 햄버거 세트.

너무나도 얇아진 감자튀김은 너도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구나.

얇아진 감자에 소금을 뿌리니 굉장히 짰다.

다음에 감자튀김에는 소금을 빼달라고 해야겠다.

더블불고기는 참 기름진 맛이 났다.

더운 9월에 진땀 빼고 먹으니 보양식이다.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bgm을 먹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들의 생동감이 대학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근래에 뉴스에서 자주 만난 부산대 대학가의 모습이었다.

사람들로 붐비는 대학가였던 부산대는 중심가 건물이 임대라고 크게 붙여져 있는 만큼 많은 상점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보세 옷가게들이 사라지고, 유행하던 음식점들이 사라지고, 요즘은 그 흔한 탕후루 가게와 마라탕 가게마저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게 쇠락하고 있었다.

나의 청춘을 함께했던 거리가 이렇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소비패턴과 문화향유의 방법이 조금 달라졌을 뿐, 우리는 지금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회사생활이 아니면 자영업이다.

나는 무얼 하면서 돈벌이를 해야 할까.

사회는 내가 적응할 새가 없이 어느새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응하고 살아간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코로나의 기세가 줄어들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좁혀졌고, 마스크 없는 삶이 편해질 무렵. 또다시 코로나와 비슷한 질병이 유행한다고들 한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적응할 새가 없이 다시 새로운 일이 닥친다.

그래도 시간은 누구나에게 공정히 흘러가고, 다른 가치로 변환된다.

모두의 삶이 다양하고 각자의 이야기로 소란한 세상이 완성된다.

오늘 방문한 부산대 박물관은 오늘날의 이상한 세상과 잘 맞는 장소였다.

박물관이지만, 박물관 전시를 볼 수 없고, 박물관 별관이 예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책을 읽으러 오는 곳.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그저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좋은 경험을 하고 기억해 준다면 이것 또한 좋은 것 아닌가.

평소 박물관 가기 싫어하는 엄마도, 사진으로는 참 좋다며 좋아하는 곳.

어쩌면 당신은 좋아할 수도 있는 장소.

9월 개장 예정이면, 언젠가는 문을 열겠지.

다른 걸 보러 왔다가 더 좋은 걸 본다면 결과는 좋은 거다.

그게 삶이고 나다운 거라는 생각.

아름답다는 바로 나답다는 우리말이다.

오늘 내가 나다웠듯이, 오늘 당신의 하루도 당신 다운 하루를 보내기를.

그리고 어제보다 시원한 하루 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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