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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Aug 18. 2024

시간이 멈춘 그곳 매축지마을

시간의 안녕을 묻는 매축지마을.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아주 오랜만에 다큐 3일 영상을 보았다.

부산의 한 마을을 찍은 영상이었다.

매축지마을.

1920년대 해안을 매립해서 만든 매축지마을.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병영기지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에는 6.25 피란민들의 판자촌 마을로 존재하다가, 남은 사람끼리 정 붙이고 사는 매립지 마을이 되었다.

주변 일대가 재개발지역으로 분류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무엇보다 재개발지역으로 묶이게 되면 집을 보수하거나 수리하지 않는다. 이미 허물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젊은이들은 떠나고 갈 곳 없는 노인들만이 지키고 있는 마을.

방송이 송출되었던 2010년대까지는 그래도 사람 냄새나는 곳이었다.

매축지마을 중앙에 위치한 약국 앞에서 새벽 장이 서면, 사람들이 나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물건을 구매했었다.

오늘날에는 이미 이 매축지마을도 재개발이 확정되어 곧 모두 허물어지고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내가 본 매축지마을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매축지 마을 입구의 모습

고무대야가 집 앞에 즐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통에 물을 길어와서 사용했을 것이다.

그 흔적이 고스란히 지금도 남아 있었다.

높다란 아파트를 배경으로 허물어져가는 골목을 보고 있는 기분이 묘했다.

곧 사라질 것들.

종종 더위에 지친 어르신들이 집 앞에 나와 앉아계셨다.

이렇게 더운 여름에 어떻게 더위를 이겨내고 계신 건가요.

빨랫줄에 걸려 햇볕소독을 하고 있는 빨랫감들이 정겹고, 그들이 뱉어내는 이야기들에 마음이 소란했다.

매축지 마을 안에 있는 마을 박물관. 통영칠기사.

골동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벽에 찰싹 붙은 실내화가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 똑같은 실내화라도 신어보면 내 것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촉감, 그 온도.

옛 시절의 그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였다.

마을의 역사를 담은 마을 박물관.

통영칠기사 공장이 있는 곳이다.

마을의 이야기가 담긴 곳이었는데, 오늘은 참 조용했다.

곧 사라질 것이라는 허무함 때문일까.

뒤에 보이는 아파트가 더없이 높게만 보였다.

문은 열려있었지만,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주변 폐가가 보여주는 날이 선 느낌에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서면으로 향하는 자성로 지하도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은 오늘을 살기에 충분하다.

옛 정취를 그대로 남겨 한국의 근현대사를 걸으면서 볼 수 있었다.

1954년 송유관 석유 유출사고로 큰 화재가 난 후에도 3차례 대화제로 큰 피해를 보았지만, 그래도 사람은 계속 살았다.

부산의 어제와 오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낸 사람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멈춰버린 시계처럼, 그 자리에서 오늘을 살았던 사람들.

예전엔 기차가 다니던 그 길을 이제는 사람들이 걸어서 오가고 있었다.

바로 앞에 화장실과 쉼터가 있어서 쉬어가기에도 좋다.

매축지 마을에서 좌천으로 가는 육교

철길 위를 지나는 기분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다.

여기는 도심지일까.

허물어져가는 마을을 지나 육교 위에 서니 높다란 빌딩과 가구거리가 눈앞에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사람들은 지난하고 억센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육교 위의 다리마저도 세월의 인고를 겪은 모습이었다.

다소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 이 다리도 언제까지 존재할까.

안부와 안녕을 물을 것들이 참 많다.

매축지 마을 육교에서 바라본 부산의 모습

매축지마을을 다녀온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산 역사라고 하고 싶다.

다들 살면서 한 번씩 자신의 고향을 떠올린다.

내가 태어난 곳일 수도 있고, 애착이 가는 곳, 혹은 고생을 했던 곳.

잊을 수 없는 곳.

피란 중에 모여 판자로 얼추 집모양을 만들어 밤이슬을 피했던 곳.

태어날 자식들을 위해 더 안락하게 만들고, 악착같이 삶을 살아냈던 곳.

시끄러운 철길 주변이어도 좋다. 편히 뉘일 방 한 구석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마련한 집이 내 집으로 인정된 순간,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누군가는 공장에서, 또 누군가는 장사를 해서 끼니를 때우고, 또 더러는 큰돈을 벌어 집을 넓히고.

소란한 삶들은 계속해서 이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 있는 곳.

갈 사람은 다 떠나고, 이미 사라질 것을 앎에도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다큐 3일에서 마을을 애정하는 마음에서 집을 보수하고 어르신들을 보살폈던 한 건축가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재개발이 확정된다고 해서 여기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새로 짓는 아파트에 들어가서 사실 분들이 얼마나 될 것 같냐는 물음과 함께 그의 답은 95%라고 했다.

자기 집을 가지신 분들 대부분이 5평, 넓은 평수라고 해봐야 12평.

토지보상금으로 받은 돈과 자신이 평생 모은 돈을 합쳐도 재개발로 지어지는 아파트에 들어가실 분은 극히 소수입니다.

지금 남아계신 분들은 이곳이 사라지면 갈 곳이 없습니다.

그분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겁니까.


요즘 날씨가 계속 덥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무덥다.

그동안 8월이면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태풍소식이 전혀 없는 걸 보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진다.

매일매일 버티는 삶이 계속된다.

이제는 익숙해져야 하는 걸까.

서늘한 계절이 그리워진다.

다시 한번 선인의 지혜를 깨닫는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교과과정에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봄 소풍과 가을 소풍,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

봄과 가을에 여행을 떠나고, 여름과 겨울에는 쉬도록.

이렇게 무더운 여름에는 무얼 해야 좋을까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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