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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Aug 11. 2024

혼자라서 더 좋았던 어느 하루

부산에서 특별하게 생일을 보내는 방법

열대야로 밤에 푹 잠을 자 본 적이 언제였을까.

요즘 들어 매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무더위와의 전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위를 잘 견디는 편이다.

여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는 방학에 있는 내 생일이 좋지 않았지만,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늘 휴가철이 내 생일이 되었다.

그때는 싫었던 것이 지금은 좋아진 경우.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친구들과 생일을 보내곤 했다.

늘 외롭지 않은 시간들이었는데, 다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그래도 좋다.

나 혼자만의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떠나기로 했다.

동심의 세계로.

인생은 스폰지밥처럼. 그럼 너무 열심히 사는 건데.

입구부터 스펀지밥의 명량한 기운이 흘러넘쳤다.

여유로운 스펀지밥과 뚱이의 모습이 참 귀여웠다.

동심을 잃지 않은 어른들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그곳에 슬며시 스며든 나는 생각보다 잘 만들어진 스펀지밥의 모습에 약간 감동했다.

덕후의 세상은 아름답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바라보는 덕후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징징이 집이 진짜 멋있었어요.

스펀지밥이 살고 있는 동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리 신청을 해야 했다.

대기등록 태블릿에서 신청해야 하지만,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 금세 포기해 버렸다.

그냥 찾아간 사람은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징징이의 뚱한 저 모습까지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

귀찮아하면서도 스펀지밥과 뚱이의 충실한 이웃이며, 직장동료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징징이.

그래도 나는 제멋대로인 뚱이가 제일 좋더라.

혼자인 나는 팝업을 관리 중인 직원분께 요청해서 뚱이와 사진을 찍었다.

역시 한국인은 사진 찍기에 열정적이다.

열심히 여러 장 찍어주셔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선물 받을 수 있었다.

나를 위한 첫 번째 선물.

그렇게 아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바로 환승을 했다.

도시에 사는 묘미는 버스나 지하철로 환승하면서 이곳저곳 누비는 것이다.

오늘 나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부산역이다.

휴가철 부산역은 너무 덥다.

다들 어디로들 가시는 건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자신이 탈 기차를 기다리는 모습.

눈가에 어려있는 설렘이라는 감정.

그리고 길게 늘어져있는 화장실 줄.

마음이 급했지만 줄은 서야지.

오랜만에 찾은 부산역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고, 정말 더웠다.

부산역사에서 놀기는 힘들 것 같다.

일단 식사부터 하자.

이미 점심시간은 시작되었고, 웬만한 맛집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부산역 앞에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럼 나는 부산역의 뒤편.

그러니까 국제여객항과 부산역 사이의 식당들을 엿보기로 했다.

부산역 뒤편에는 관공서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고로 공무원들의 맛집이 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

가볍게 한식을 먹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직장인들 틈바구니에서 혼자 먹기에는 항마력이 딸렸다.

그렇다.

오늘의 식사는 가벼운 경양식 돈가스.

양분식을 가기로 한다.

부산역 스완양분식

어렸을 때 양분식집에 가는 걸 좋아했다.

얇게 펴서 튀겨진 돈가스와 함께 먹는 마카로니 샐러드가 좋았다.

샐러드 양이 작아서 늘 감질맛이 났다.

소심했던 어린 나는 더 달라는 말을 잘 못하는 아이였다.

지금은 리필 요청을 당당히 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양분식당을 보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래서 매우 오랜만에 양분식 집에 들렀다.

대기줄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1인 손님은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자리가 굉장히 협소했다. 딱 1인 자리.

그래도 점심시간에 내 자리가 있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

스완 양분식은 선불.

태블릿으로 주문과 동시에 결제.

자리가 협소해서 여기가 맞나 싶었는데, 결제하고 나니 바로 내 앞으로 수프와 양배추샐러드, 깍두기와 식기가 배달되었다.

수프는 그냥 밍밍한 오뚜기 수프였다.

조금만 더 가면 이승학 돈가스의 수프가 진짜 맛있었는데.

조금의 아쉬움이 남지만 괜찮다.

이 시간에 가면 거기도 줄을 한참 서야 한다.

나는 수프를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돈가스를 먹으러 온 것이다.

그리고 금방 돈가스가 나왔다.

그렇지.

동그랗게 눌러져 있는 밥, 그리고 돈가스, 제일 중요한 마카로니 샐러드까지.

양분식 돈가스의 정석이다.

그렇게 나에게로 온 돈가스를 하나하나 자른다.

돈가스 써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일을 후딱 해치우고 맛있게 먹는 것이 즐거움이다.

고등학교 가정실습시간에 만들었던 그 돈가스의 맛.

추억의 맛.

물론 아주 맛있는 맛은 분명 아니다.

어린 시절 맛본, 그리움의 맛이다.

병원 가기 전, 아이를 꼬시기 위해 으레 나오는 음식 메뉴의 첫 번째를 차지했던 돈가스.

급식에 돈가스라는 단어만 있어도 설레던 그 시절.

얇게 두드려서 튀김가루 묻혀 바삭하게 튀긴 돼지고기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았다.

위에 소스를 눅진하게 부어도 튀김의 바삭한 맛이 살아있고, 느끼하면서도 짭조름한 경양식 돈가스 소스.

특별한 맛이 아닌데 불현듯 당기는 순간이 있다.

한 입 먹으면서 안심이 되는 맛.

변하지 않는구나, 양분식 돈가스.

점심 도장 깨기 하는 직원분들이 여럿 보였다.

혼자인 손님이 많아서 혼자도 꽤 괜찮은 식당이었다.

특별함은 없지만, 익숙함은 있는 처음 방문한 스완 양분식이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웠으면 본래의 목적을 찾아가는 것이다.

다시 더웠던 부산역을 지나, 진짜 목적지는 바로 북두칠성 도서관이다.

부산역 10번출구로 나와서 찾아가는 북두칠성 도서관.

부산역 10번 출구로 나와 하늘정원을 지나서 협성마리나 건물 1층으로 가면 바로 북두칠성 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북두칠성도서관은 특별한 도서관이다.

아무나 가서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누구나 대출은 불가하다.

바로 유료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북두칠성 멤버십 안내문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추가와 함께 가입신청서를 작성하여 가입비 결제를 하면 가입이 완료된다.

가입비는 6개월에 55,000원.

1회에 2권, 6개월 동안 최대 50권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웰컴선물로 북두칠성 도서관의 마음이 담긴 굿즈를 선물 받고, 생일에는 책에서 선정한 좋은 글이 담긴 생일 카드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유료 도서관이라 그런지 건물이 더 깨끗하고, 책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 것 같다.

북두칠성 도서관 내부 모습

나는 이 공간 자체를 좋아한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곡선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무엇보다 책을 예쁘게 전시를 해 놓아서 좋다.

특히나 이 도서관에는 만화책이 참 많다.

드라마로 나와 인기몰이를 했었던 미생 전권과 추억의 만화들.

군침이 도는 도서목록이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자리가 없어서 도서관 안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예쁜 공간이 많은 도서관은 행복이다.

책이 네모나니까 동그란 곡선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공간이다.

아이들이랑 재밌게 독서를 즐기기에 이만큼 좋은 곳이 있을까.

나도 저 텐트 안에 들어가서 책을 읽고 싶었지만, 이미 누군가 자리를 잡아놓고 있었다.

이리저리 도서관을 다니다 보니 자리가 하나 났다.

준비된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

책은 이미 골랐기에 바로 자리에 착석할 수 있었다.

스탠드에 불을 켜고 내가 보고 싶었던 책을 읽는 기분.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읽는 기분은 정말 좋다.

일탈을 대놓고 하는 나는 순수한 어른이다.

내 옆자리에는 주식창을 띄어놓고 하루종일 노트북 모니터만 보는 백발의 노인, 그리고 대학 과제를 열심히 수행 중인 민폐사람있었다.

흥미로운 두 사람 사이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도서관에 앉아 금융소득을 올리는 백발의 노인은 오늘의 경제흐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일어난 전기차 전소사건과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한 코로나 환자 급증 소식으로 인해 본인이 산 주식의 흐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장이 마감되는 3시까지 모니터만 보다가 3시 정각이 되자마자 가방을 싸서 떠났다.

굉장히 냉철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옆자리의 짐이 많은 여성.

부족한 자리임에도 자기의 가방을 옆 의자에 두어서 다른 사람까지 못 쓰게 만드는.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타자소리를 내다가 그녀가 떠난 자리에 금세 두 명의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켜보고 있다가 그녀가 일어나니 바로 나타나는 사람들.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책에 집중을 했다.

여러 종류의 책들 중에서 만화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결말이 행복해서다.

주인공이 누군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고, 하던 일에 좌절하고,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도, 꿋꿋하게 일어서서 자신의 일을 해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고 그렇게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아서.

오늘은 내가 나에게 해주는 긍정적인 말보다 다른 사람의 따뜻한 말이 듣고 싶어서.

여기까지 오는 길은 험난했지만, 결국 나는 내가 원했던 결말을 맛보아서 나에게 좋은 하루였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한창 사람들이 북적일 시간을 피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난 자리에는 또다시 다른 사람이 자리를 잡겠지.

그리고 자신만의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겠지.


매일매일이 특별하다면 그 삶은 행복할까.

특별함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이다.

오늘도 그저 그런 하루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나를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애초에 가려던 곳은 버스시간을 착각해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었지만, 이것 또한 좋다.

덕분에 스펀지밥을 만나고, 오랜만에 양분식 돈가스를 먹고, 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설렘을 눈으로 확인했다.

북두칠성 도서관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을 만나 책이 다시 좋아졌고, 행복한 결말의 책을 읽고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것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월요일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스펀지밥처럼.

그렇게 하루를 축하하고, 내일을 기대하면서 살아야지.

당신은 특별하고 소중해.

그러니 오늘도, 내일도 설레는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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