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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Aug 07. 2024

한여름의 부산이 좋은 이유

다정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하루

이렇게 더운 날엔 집에만 있고 싶다.

작열하는 태양에 굴복하고만 싶어 진다.

하지만 오랜만에 연락이 된 그녀로 인해 오래만의 외출에 마음이 즐거워진다.

나의 정신적 지주.

나에게 첫 피자를 사준 사람.

놀이공원이 어떤 곳인지 알려 준 사람.

처음 뷔페에 데려가서 어떻게 음식을 담고 어떤 음식들을 맛보아야 하는지 알려 준 사람.

고3 졸업과 동시에 나에게 휴대폰을 사준 사람.

집과 학교 밖에 몰랐던 나의 세상을 더 넓혀준 사람.

늘 받기만 해서 고마운 사람.

오늘은 바로 그녀를 만나는 날이다.

초행길에 혹여 길을 헤매지 않을까 싶어 버스 정류장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시원한 도서관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다가 그녀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섰다.

그늘에 숨어있다가 그녀가 버스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바로 달려 나갔다.

저 멀리 100m 뒤에서 뒷모습만 봐도 알아볼 수 있는 내 사람.

바로 나의 사촌언니다.


한 번도 초량온당엘 가본 적이 없다고 해서 특별히 오늘의 만남 장소로 정했다.

미리 초량에 도착해서 가게 앞에 있는 태블릿으로 예약을 하고 도서관에서 기다린 참이었다.

미리 예약을 했기에 언니가 도착하고 바로 초량온당엘 갈 수 있었다.

휴가철의 초량온당은 평소보다 더 사람이 많았다.

인파를 뚫고 당당히 입성한다.

역시 초량온당은 냉장고 앞에 사람들이 늘 붐빈다.

이미 4번째 방문인 나는 빵을 신중히 고르는 사람들보다 앞서 냉장고 문을 열고 빵을 기세 좋게 담기 시작했다.

맛 보여주고 싶은 빵이 많다.

정신없이 담다 보니 순식간에 쟁반이 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초량온당에서 최고 맛있는 빵만 엄선했는데 그것도 많다.

맘모스와 버터바는 내가 고르고, 단호박 크럼블과 흑임자 크럼블은 언니가 선택했다.

확실한 입맛 차이다.

바로 돼지런한 사람의 기호와 건강한 맛을 추구하는 음식 취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선택.

역시 늘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다 언니한테 맛 보여 주고 싶었는데, 언니는 다 나 먹으라고 한다.

보냉백에 가득 넣은 빵을 하루종일 안고 있었지만, 언니가 전해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전혀 무겁지 않았다.

일단 빵은 빵이고 허기부터 채워야 한다.

빵은 간식이지 나에게 식사가 아니다.

초량에서 만났기에 버스를 타기도, 지하철을 타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언니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조금만 걸어서 차이나 타운으로 가자고 했다.

내가 파란 리본으로 인정받은 중화요릿집을 소개해줄게.

준비해 온 냉수를 건네고 바로 출발했다.

평소라면 5분 정도 걸렸을 길이지만, 이미 35°를 넘은 부산시내를 걷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해낸다.

언제나 인간이 승리한다.

작열하는 태양에게 오늘도 도전장을 내민다.

그렇게 도착한 이곳.

일품향

부산역 앞. 차이나 타운에 위치한 일품향. 만두가 일품이다.

매주 월요일 휴무. 영업시간 점심 오전 11시 ~ 오후 3시 저녁 오후 5시 ~ 오후 8시

중간에 오면서 만난 신발원(만두의 성지)이 문을 닫아서 놀랐다.

다시 확인해 보니 일품향은 월요일에 문을 닫고, 신발원은 화요일이 휴일이었다.

입구에 붙어있는 파란 리본 스티커는 바로 합리적인 가격과 보증된 맛이라는 인증이다.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지만, 다행히 우리의 자리는 있었다.

일품향의 메뉴 사진과 최고였던 군만두

중화요리에 자부심이 있는 메뉴판이다.

중국집 하면 생각나는 메뉴. 짜장면, 짬뽕이 없는 집이다.

메뉴에는 요리류와 식사류로 나뉘어있고, 나는 미리 예습을 해왔기에 이 집에서 가장 유명한 물만두와 군만두, 그리고 새우볶음밥을 시켰다.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중국어로 이야기를 했다.

차이나타운은 화교들이 이룩한 마을이다.

중국어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메뉴를 주문하고 앉아있으니 여기가 중국 현지에 있는 식당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주문한 음식은 차례차례 테이블로 도착했다.

일품향의 만두는 찐이다. 그리고 새우 볶음밥 꼭 드셔보세요.

기본으로 나오는 단무지와 오이무침을 필두로 군만두와 새우볶음밥, 마지막으로 물만두가 나왔다.

깔끔한 맛의 단무지, 새콤달콤한 오이무침.

기름에 샤워하고 나온 군만두는 담백하고 고소했다.

새우볶음밥은 밥 한 알 한 알이 고루 볶아져 나와 풍미가 좋고, 특히 새우의 탱글함이 일품이었다.

물만두. 이것이 진짜 찐이다.

육향 가득한 고기만두와 쫄깃한 만두피가 정말 찐이었다.

오늘 먹었는데도 내일 먹고 싶은 맛이다.

시원한 실내에서 먹는 따끈한 음식들이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심지어 같이 있을 때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라니.

식사시간 내내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군만두와 새우볶음밥과 물만두는 최고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선물하고픈 맛이지만, 이 맛은 이 집에서 바로 먹어야 즐길 수 있다.

다음에 또 와서 먹어야지.

먹으면서도 다음에는 뷔페를 가자. 좋은 곳을 알고 있다는 충분히 돼지력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행복한 식사를 마치고, 다음 일정은 없었다.

소화를 시켜야 하는데 근처 남포동에 갈지, 서면에 갈지 고민이 섰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 신세계 센텀시티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센텀시티에 가자고 말했다.

언니는 놀란 눈치였지만, 날이 매우 더웠으므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고를 외쳤다.

역시 내 사람이야, 잘 맞아.

부산역에서 바로 오는 직행버스를 타고 센텀시티로 향했다.

버스 안은 시원해서 뜨겁게 익었던 몸을 금방 식혀줬다.

언니의 충실한 가이드인 나는 버스에서 내린 후 바로 지하도로 시원하게 길을 안내했다.

센텀시티역은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이 동시에 입점해 있기 때문에 입구부터가 시원하다.

일단 빵을 맛보기 위해 신세계 푸드코트로 향했다.

백화점 내에 위치한 마트에서 우유와 이온음료, 양심 없는 내가 고른 제로음료를 골라 푸드코트에 자리를 잡았다.

언니가 초량온당에서 고른 단호박 크럼블의 맛이 정말 건강했다.

빵이라는 느낌보다는 단호박의 퍽퍽한 맛은 지우고 부드럽고 진한 풍미로 맛을 끌어올린 한 차원 위의 음식 같았다.

역시 내가 늘 하던 선택보다 다른 사람의 호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더 큰 세상에 와닿을 수 있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기분이다.

흑임자 크럼블도 부담 없이 담백하고 맛이 좋았다.

이제 내 배는 더 이상 나올 수 없을 만큼 가득 차 있었다.

소화를 시켜야 한다.

여기가 어디인가. 바로 백화점. 이제부터는 쇼핑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운동을 열심히 하기 위해 언니는 운동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저기 언니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찾아보고, 디자인이 맘에 들었으면 신어보고, 착화감을 확인하고.

역시 쇼핑은 운동이다. 나는 금세 지쳤다.

이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나니 금방 소화가 다 되는 것 같다.

나의 몸 안에는 돼지력이 숨 쉬고 있다.

결국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찾지 못했지만, 더 좋은 곳을 가면 된다.

그곳은 바로 영화의 전당에 위치한 영화 라이브러리.

영화의 전당 라이브러리는 4층. 천장이 굉장히 높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횡단보도를 지나 바로 영화의 전당으로 향했다.

라이브러리는 7시까지 운영하므로 도착한 시간이 5시가 넘었기에 영화 보기에는 애매했다.

다음에 와서 영화를 보기로 하고 오늘은 라이브러리 공간을 안내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려주는 일을 참 좋아한다.

가장 먼저는 화장실 앞에 있는 포토존이다.

사람의 기억력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으로 기억을 박제해 놓는다.

오늘의 기록을 그렇게 남기고, 영화제 출품작들을 볼 수 있는 스트리밍실을 보여주고, 3층 영화 포스터 전시실로 향했다.

영화도서관 3층 영화 포스터 전시실.

예쁜 포스터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그동안 영화의 전당에서 상영되었던 영화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기록해 뒀다가 4층 영화감상실에서 신청하면 바로 볼 수 있다.

신분증이 필요하고, 신분증이 없다면 영화의 전당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회원가입을 하면 모바일 신분증으로 인증을 해서 바로 영화를 볼 수 있다.

다만 오늘은 늦었기에 아쉽지만 또 다른 오늘을 만들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라이브러리를 구경하고 에어컨 앞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소파도 편하고 바람도 시원했다.

이렇게 더운 날 부산을 누비고 다녀서 지칠 법도 한데 상대편에 앉은 언니의 얼굴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언제나 맑은 사람이다.

요즘은 자랑을 하고 싶어도 주저하게 되는 세상이다.

질투와 시기만큼 무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맑고 밝기만 한 언니에게는 마음껏 자랑을 하고 싶다.

정말 순수하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니까.

다정함이 몸에 배어있다.

모든 생각과 행동에서 곧은 성정이 나타난다.

오늘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순간이 다정했다.

만나면 반갑다고 포옹부터, 내가 소개한 식당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어주고, 무더위 속에서 마냥 걸어도 웃어주고,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다.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내 곁에 있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다.

그리고 곧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의 충실한 가이드는 언니가 타는 버스정류장 앞까지 안내했다.

나의 다정한 사람은 행복을 불러온다.

언니를 보내고 나니, 바로 내가 탈 버스가 도착했다.

역시 행운의 여신이다.

언니와의 만남에는 늘 따뜻함이 있다.

어렸던 나에게 늘 무한의 사랑과 관심을 주고, 다 자란 나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자주 보지 않아도 늘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다정한 사람. 순수한 사람.

포근한 보름달처럼 미소가 환한 사람.


이렇게 더운 날 함께 하루를 보내줘서 참 고마워.

언니는 다정하고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야.

며칠 전 다른 조카를 만났을 때 살이 쪄서 못 알아봤다는 말을 듣고 나도 좀 속상했어.

나는 언니를 저 멀리 100m 뒤에서도, 뒷모습만 봐도 알아볼 수 있어.

언니는 어디서든 빛나는 사람이거든.

좋은 사람들이 언니 곁에 있어서 다행이야.

나의 언니라서 더 고마워.

오래도록 보지 못한 친척들의 안부도 궁금하다.

늘 언니덕에 대신 안녕을 부탁하지.

다들 건강하길.

그리고 당신의 곁에도 다정한 사람이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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