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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Jul 31. 2024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못 가는 곳 오초량

한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등록문화제 349호 오초량

무덥다.

무덥다는 말이 무섭게 덥다는 말인가.

실외에 있으면 정신이 혼미할만큼, 딱 그만큼 덥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날이 더워서 몸이 내 맘같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그래도 늦지 않게 출발했다고 생각하는데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아 결국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 환승했다.

지하철만큼 정시에 도착하는 교통수단은 없다.

뚜벅이에게 정말 좋은 운송수단이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

오초량

오초량의 입구와 입구

드디어 입성하는 날이다. 오초량.

초량온당을 갈 때마다 늘 닫혀있었던 오초량이 오늘은 나를 위해서 열려있다.

한 달 전부터 예약해 드디어 오늘이 되었다.

오초량 방문 예약링크 - https://linktr.ee/ochoryang

인스타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오초량이라는 존재.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지만, 신청자가 많으면 내가 선택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발 빠른 나는 다른 이보다 먼저 선정되고 말았다.

그렇게 잊은 듯 시간이 지나 드디어 나에게 방문 기회가 왔다.

지하철에서 나오자마자 숨 막히는 더위에 잠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을 한 모금하고 바로 오초량을 찾았다.

약속시간보다 20분 먼저 도착했지만, 담당자분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환영받는 기분에 시작부터 좋았다.

오초량의 주차장은 넉넉합니다.

계단을 올라가니 널찍한 주차장이 보였다.

아직 사람들이 다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여유롭게 도착한 덕분에 좀 쉬면서 오초량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일맥문화재단에서 보유하고 관리 중인 오초량.

오초량은 근처 문화공간 수정과 결이 같은 적산가옥이지만, 열린 공간인 수정과는 달리 소수의 사람만이 관람할 수 있었다.

어떠한 신비로움이 있을까. 마냥 설렜다.

11시 정각. 신청자가 모두 도착했다.

신청팀이 10팀이었지만, 오초량에 방문한 사람은 단 세 사람.

날이 더워서인지, 다 무책임한 사람들인지.

연락도 없이 불참한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이 관계자에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에게는 오히려 다행인 걸까.

여유롭게 오초량을 돌아보고 설명을 더 가깝게 들을 수 있으니까.

참고로 나를 뺀 2명의 관람객은 지인이었고, 나는 낙동강 오리알처럼 혼자 부유하며 자유롭게 누비고 다녔다.

오초량의 대문이 있던 곳. 세월의 흐름을 정통으로 맞은 사연 있는 장소.

무더운 날씨에도 일맥문화재단 관계자분께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초량에 대한 연혁, 일맥문화재단과의 관계. 이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 주셨다.

1925년 다나카라는 일본인이 평생을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튼튼하게 지어서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는 오초량.

실제로 1990년대까지 사람이 거주하면서 더 잘 관리가 된 것 같다는 말을 해주셨다.

1971년 태창기업의 창업주 황래성 일맥문화재단 설립자가 오초량부지를 매입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부산은 한국전쟁의 마지막 보루지역으로 많은 피난민들이 내려와 옹기종기 모여 천막집, 판자촌을 만들고, 마을을 이루어 한 때는 부산 인구가 500만을 넘은 적도 있었다.

해방 후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떠나고, 갈 곳이 없는 사람은 그대로 부산에 남아 정착했다.

1970년대 시작된 새마을 운동으로 마을 정비사업이 진행되었다.

볏짚 지붕을 슬레이트 또는 함석(안팎에 아연을 입힌 얇은 철판)으로 교체, 도시환경정비, 담장 바로잡기 사업 등 전쟁 후 혼란했던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해서 진행했다.

그래서 부산에서는 보다 밀집된 거주 형태를 자주 볼 수 있다.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오초량.

주변지역 일대가 재개발지로 선정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빨리빨리의 민족은 공사도 빠르게 시행하려고 했다.

오초량의 지대 밑으로 흐르던 지하수를 건드려버린 것이다.

그렇게 급작스레 빠진 지하수로 인해 지하수가 있었던 공간은 비게 되었고, 그 빈 공간은 여지없이 허물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오초량의 양옥이 있던 부분은 지반파괴로 인해 무너지고 지금은 흰 기둥 2개로 양옥이 존재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지하수가 있던 공간을 급하게 메우기 위해 사용된 시멘트 포대가 약 1,700포대 내외라고 설명해 주셨다.

지금 남아있는 오초량은 일식가옥이기 때문에 해체가 가능했다.

재개발 공사로 흐트러진 지반으로 인해 해체된 오초량의 복원 비용이 10억 정도라고 한다.

재개발 공사를 진행한 회사들도 자신들의 실수에 진땀 꽤나 뺐을 것 같다.

무너진 지반 위에 다시 창조된 정원의 모습과 오초량

퍼석퍼석 자갈 밟는 기분이 좋다.

우뚝 선 아파트 사이로 고즈넉한 정원을 홀로 걸으니 저절로 여유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곳곳에 의자가 있어서 사색하기에 좋은 곳이다.

어디 나가지 않아도 갑갑하지 않은 기분이 들지 않을 것 같다.

영화 모리의 정원이 생각났다.

하루종일 집을 정리하고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운 집.

집을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고, 그 애정 어린 공간을 모두가 힘을 합쳐 이렇게 지켜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신진 작가들의 전시장소로, 차를 내어주는 모임의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해체 가능한 일식가옥의 특징은 벽이 없다. 차를 만들 수 있는 공간과 마주하고 있다.

고즈넉함이 여실히 느껴지는 공간이다.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막힌 공간 없이 뻥 뚫어놓은 창과 마주한 아름다운 정원에 그만 넋을 놓았다.

여유과 기품이 느껴지는 인테리어에 마치 내가 잡지 속에서만 보고 있던 장소에 덩그러니 놓인 느낌이었다.

전시기간에는 작품으로 채워지는 이 공간이 더 아름다워 보일 것 같다.

물론 지금의 빈 공간이 주는 미학도 참 좋다.

오초량의 서재는 자연스런 토론장소로 손색이 없다.

다양한 의자들이 자연스럽게 놓여있었다.

원목이 주는 편안함과 단단함이 느껴졌다.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곳에 차를 한잔 하러 오고 싶다.

이 공간을 즐기기에 30분은 정말 적은 시간이다.

태창기업 창업주님의 사진이 서재에 있다. 오초량 2층 공간은 특별하다.

서재에서 태창기업 창업주님과 당시 태창기업을 이끌었던 직원분들의 사진이 있었다.

섬유산업으로 사업을 부흥시켜 한때는 부산에서 세금을 많이 내는 걸로 이름이 알려진 태창기업은 그렇게 얻은 수익을 좋은 일에 베풀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일맥문화재단을 만들어 장학사업을 해서 한때는 장학금 누적금액이 80억이 넘는다고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가진 것을 베푸는 사람의 마음은 바로 감사함을 안다는 사실이다.

2층에 올라가면 커다란 스피커가 2개나 있는 다다미가 깔린 방이 있다.

그 방을 감싼 창에는 유리에 음각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워낙 특수한 기법이라 파손될 경우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 손재주 좋은 사람들이 많다.

조심히 관리해야겠다. 바로 창 옆으로 떨어졌다.(유리공포증)

2층 다다미방 옆에는 오초량을 설명하는 책자가 있다. 아름다운 창은 덤이다.

조용히 돌아보던 중 좋은 공간을 찾았다.

귀여운 의자와 함께 마련된 자리에는 오초량의 연표와 역사, 오초량을 소유했던 사람들. 복원사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와있었다.

오초량은 진짜 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관리하고 지켜온 덕분에 지금의 모습으로 온전히 잘 남아 있는 것 같다.

한 공간, 한 공간을 지나칠 때마다 만나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창도 예뻤다.

빛의 굴절로 인해 다채롭게 보이는 오초량의 모습이 좋았다.

비록 열린 공간, 습한 정원으로 인해 달려드는 모기로 팔과 다리가 고생을 꽤나 했지만, 간지럼을 이길 만큼의 강렬한 인상이 남는 곳이다.

더운 여름에 만난 가을 예고는 마음을 시원하게 만든다.

오초량을 나올 때, 실외보다 더 더운 실내에 땀은 범벅이고 모기에 여기저기 물려 손과 발로 온몸을 긁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분만은 최고였다.

여러 가지 사연이 있고 많은 이들의 애정이 담긴 장소에 내가 다녀왔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리고 마지막 배웅을 하는 관계자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달했다.

이렇게 더운데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빛이 난다.

그리고 나는 곧 살기 위해 중앙도서관 수정분관으로 가서 더위를 한 김 식히고 바로 앞에 있는 문학 자판기 앞에 섰다.

문학 자판기.

음 이번 뽑기는 조금 이상하니까 다시 한번.

뽑기는 나 듣기 좋은 말이 나올 때까지 하는 것이다.

나의 운은 내가 결정하는 거니까.

이렇게 더운 여름에는 곧 다가올 가을과 겨울의 시원함을 땡겨쓰는 것이다.

이제껏 부산의 많은 곳을 돌아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다.

모르는 곳이 많고, 그 말의 뜻은 아직 갈 곳이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좋다.

늘 나에게 신선한 자극점을 주는 것 같다.

지칠만하면 단비를 내려주고, 쓰러질 것 같을 때 손을 내어준다.

더위에 지친 당신에게 시원한 팥빙수를 권하고 싶은 오늘.

나의 하루는 더웠지만, 즐거움으로 가득했어요.

당신도 그런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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