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둥벌거숭숭이 Dec 25. 2024

E와 I 대결의 승자는 행복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청춘어람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이브 이야기

밖에만 나오면 완벽한 인간 알람이 된다.

번쩍 눈이 뜨여 시간을 확인하면 어김없이 새벽 4시.

깊은 밤. 깜깜한 새벽이다.

전날, 바쁜 하루를 보낸 덕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고민할 새 없이 전날의 일기를 쓰고 감상을 남긴다.

3층 공유주방으로 가서 평소에는 먹지 않는 토스트를 구워 먹으며 완전히 깨지 않은 잠친구들을 물리친다.

상쾌한 아침이다.


8층 옥상으로 가서 일몰을 바라보던 중에 지훈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의성역에 데려다줄 수 있냐는.

지훈이 덕분에 두 번이나 오게 된 청춘어람.

이렇게 나에게 보은의 기회를 주는구나. 기꺼이 데려다 드리지요.

확실히 의성은 부산보다 춥다.

차가 완전히 얼어 있었다.

히터를 켜서 10분간은 밤새 얼은 차를 녹여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차가 문제가 아니다.

나도 집에 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차 앞유리로 시야를 확보할 즈음이 되어서야 길을 나 설 수 있었다.

운전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는 초행길에서 긴장감이 매우 넘친다.

그래도 다행히 별일 없이 지훈이를 의성역까지 데려다주었다.

아직도 얼어있는 차와 의성역. 길치는 네비를 봐도 길을 헤메지만 어쨌든 잘 돌아왔다.

의성역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신호등이 있지만, 황색 점멸등이었고, 교통 안내를 하는 분들이 10분은 넘게 계셨다.

역시 기계보다는 사람이 믿을만하지.

아침부터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역시 운전을 하다가 딴생각을 하면 안 된다.

분명 길을 잘 보면서 왔는데, 올 때는 보지 못했던 건널목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가야 하는 길이 배로 늘어났다.

다행히 사람이 없는 길이라 재빨리 유턴을 하고 잠시 정차.

의성에서 바라만 보았던 건널목이 바로 앞에 있었다.

실수로 왔지만, 애초에 건널목을 보고 싶었던 사람처럼 한동안 바라보았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건널목이다.

사건사고가 무수히 발생하여 안전상 많이 사라진 건널목이 이곳에서는 왠지 흔하게 느껴졌다.

빠른 기차를 보내기 위해 차와 사람이 기다린다.

안전바 하나로 위험을 경고할 뿐이다.

서로의 약속이 지켜져야 나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어릴 적, 건널목에서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손을 흔들었던 기억이 있다.

기차 하면 여행이 생각났고, 부러운 마음에 인사를 건넨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기차는 지나가지 않았지만, 그때의 마음을 다시 되새겨본다.

오전 9시 필라테스의 시작

10분 전에 도착했지만 사람들이 없다.

역시 제시간에 맞춰서 와야 한다.

나는 이곳에서 벌써 두 번째 필라테스 수업이다.

선생님이 알아봐 주셔서 왠지 좋았다.

감기기운이 짙은 선생님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오늘의 수업을 진행하셨다.

기운이 없어도 제 할 일을 끝까지 해내는 프로페셔널한 모습.

본받아야 하는 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아침의 필라테스는 오후의 필라테스보다 가벼운 느낌이다.

전보다 쉽게 느껴졌다.

그래도 뻣뻣한 내 몸이 우습게 느껴진 순간이 종종 있었다.

필라테스를 하고 나면 내 몸이 1cm는 커진 느낌이다.

덕분에 개운한 오전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필라테스를 마치니 점심메뉴 선택의 시간이 돌아왔다.

갈치찌개과 한치무침.

한치가 먹고 싶다고 며칠 전에 이야기했는데, 한치라니.

망설임 없이 바로 go.

의성맛집 홍춘식당, 갈치찌개와 한치무침

확실히 지역음식점이다.

아주 오랜만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식당에 아빠다리하고 앉았다.

맛깔스러운 한치무침에 구운 김을 싸 먹으면 간이 딱 맞다.

깔끔하게 나오는 밑반찬의 간이 좋다.

함께 먹는 갈치찌개의 맛이 깊다.

간이 잘 배어있는 무를 먹기 위해 집었는데, 먹고 보니 감자였다는.

오히려 좋아.

같이 먹는 식사가 좋은 이유는 평소에 먹지 않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풍요로운 식사가 되었다.

후식으로 먹는 식혜까지.

마무리까지 완벽한 의성맛집이다.

카페아니스에 가시면 플레인 요거트 스무디 꼭 드셔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크리스마스를 챙겨본 일이 없다.

12월 전체가 크리스마스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연말. 그리고 새해가 나의 불문율이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E와 I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식사자리에서 중간중간 들려오는 마니또이야기에 애써 못 들은 척했었는데,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마니또를 뽑아 다이소에 가서 5천 원 상당의 선물을 준비해 나누어 줄 것.

나에게 급격한 시련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니또를 뽑기 전부터 굉장한 고민에 휩싸였다.

나는 감정이 얼굴에 바로 드러나는 사람이라 사색의 표정이 금방 티가나 버렸다.

약간의 오해가 생겼지만, 애써 부인하지는 않았다.

색다른 결과는 사람들에게 큰 재미를 줄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기치 않았던 파티가 결정된 순간, E들의 목소리가 카페 안을 가득 매웠고, 우리는 다 같이 혼이 났다.

입을 꾹 닫고 있었지만, 함께여서 일어날 수 있는 일.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혼나도 그렇게 싫지 않은 순간이다.

그리고 정해진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해 카페를 나섰다.

의성 붕어빵 맛집. 열려 있으면 무조건 가서 맛봐야 합니다

밥을 배불리 먹고, 카페에 가서 플레인 요거트 스무디까지 먹으니 더 이상 배 안의 공간이 없다.

하지만 흔히 열려있지 않은 붕어빵 맛집이라며 우리를 이끄는 소란님과 나도 모르게 붕어빵 집 앞에 섰다.

아주 당황스럽게도 나의 마니또인 봉규 님께서 붕어빵을 사주셨다.

내가 마니또인데, 선물을 받는구나.

감사히 받은 붕어빵이 따스하다.

꼬리까지 팥앙금이 가득한 달지 않은 붕어빵이다.

신기하게 배가 불렀음에도 술술 잘 먹었다.

아마도 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맛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금성산 그리기. 모든 것은 꿈보다 해몽이다.

아주 오랜만에 붓을 잡아본다.

온전히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려본 것이 얼마만인가.

일단 작가님의 금성산 설명에 대해서 듣는다.

금성산에는 예전부터 전해 내려 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금성산에 무덤을 지으면 3대가 흥한다는 전설.

대신에 금성산 주위의 마을에는 가뭄이 들어 농사에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가뭄에 농사가 어려워질 때면 마을사람들이 모여 금성산을 뒤지고 엎어서 그 무덤을 파헤쳐버린다고.

이야기로 들으면 아주 살벌하지만, 실제 있었던 이야기이고, 1970년대까지 증거사진까지 완벽한 사실이다.

마을의 흥미로운 관습 같이 느껴졌다.

실제로 마을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았다는 작가님의 첨언까지 더해지니 더 실감이 났다.


그리고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금성산에 대해 그리기 시작했다.

푸르기만 한 의성의 하늘.

청춘어람에서 바라본 금성산이 모태가 된다.

청춘어람 주변에는 벽화가 참 많이 그려져 있다.

인상적인 문구들도 많다. 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좋은 말들이다.

고민 없이 바로 붓을 잡고 물감으로 색칠해 나간다.

늘 그랬듯이 채색이 어렵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다.

사람들의 다양한 상상력과 표현력에 감탄해 가며 나도 내 그림을 완성한다.


금성산을 오르면서 만났던 금성산성의 모습.

웅장하고 거대한 용문바위.

금성산 정상에서 처음 보았던 눈과 쌓인 눈을 밟았던 흔치 않은 경험.

그리고 하산하는 길에 만났던 신묘한 사슴까지.

꽤나 그럴싸한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역시 꿈보다 해몽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그림 해석하는 데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했다.

그리고 마니또를 위한 선물까지 사야 한다.

아웃도어와 커피를 좋아하는 진로고민 중이신 분에게 다이소에서 무엇을 살 수 있을까.

내가 마니또에게 준 선물과 받은 선물의 결이 같다

내가 마니또에게 준비한 선물은 나의 취향을 담은 짱구 캐릭터의 수첩과 볼펜이다.

아웃도어에 필요할 법한 탄력테이프와 진로고민 할 때 꼭 필요한 자존감 지키기.

참 잘했어요 표와 스티커를 준비했다.

그리고 아주 약소하지만 마음을 담은 편지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근래 들어 가장 긴 고민이 담긴 선물이다.

부디 기분 좋게 받아주시길.

나 또한 열심히 생각하고 글을 쓰라는 의미의 필기구와 책갈피까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선물을 한 아름 받았다.

주어라 받을 것이다.

용주밥상 닭갈비가 맛이 좋습니다

저녁으로 예고되었던 메뉴는 닭발이었다.

조금 당황했지만, 닭발을 먹지 않는 사람은 닭목살 메뉴가 있으니 걱정 말라는 대표님의 말씀에 위안을 받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모든 닭발집이 일찍 문을 닫았다.

그래서 가게 된 용주밥상.

마늘통닭에 지치신 대표님이 닭갈비를 추천하시기에 바로 응했다.

닭갈비를 시키니 식탁이 풍성하다.

치즈까지 주셔서 야무지게 맛볼 수 있었다.

모든 밑반찬의 간이 좋고 맛이 풍요롭다.

특히나 닭갈비의 맛이 훌륭하다.

또 먹고 싶은 감칠맛이다.

마늘통닭을 시키면 반찬이 없다.

혹여나 용주밥상에서 식사를 하시는 분들은 밥메뉴를 기본으로 시키고 마늘 통닭 시키기를 추천한다.

모든 메뉴의 식사가 맛이 좋고 손님을 대하는 사장님의 마인드에 친절이 묻어있다.

입구에 비치된 물티슈와 머리끈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도 아직 오늘의 일정이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쉴 시간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파티는 풍성하고 즐겁다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실감이 나는 분위기다.

풍선을 불고 반짝이는 트리를 보고, 테이블에 먹을 것이 풍요롭고, 캐럴이 잔잔하게 들리며 한 공간을 가득 메우는 사람들까지.

커플분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듣고, 의성 막걸리를 나누어 마신다.

다소 쓸쓸할 수 있었던 크리스마스가 사람들의 이야기로 소란스러워지고 맑아지는 서로의 눈동자를 확인하게 된다.

특히나 재미있었던 것은 마니또에게 나누어 주는 선물에 있다.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귀여운 커플 다정님의 마니또는 다정님을 위해 귀여운 남자친구를 만들어주는 선물을 준비했다.

감동받아하시는 산타 님의 표정이 압권이었다.

내가 선물을 받은 것도 아닌데 다 같이 즐거워졌다.

좋은 마음은 전해진다.

다정님의 마니또는 나였고, 나 또한 좋은 마음을 선물 받았다.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나의 마니또는 대표님이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오해를 하게 해 드렸지만, 반전의 분위기는 완성되었다.

일단 마니또분께 선물을 전해드리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산타 님이 전해주시는 선물이 풍성했다.

다양한 맥주와 봉숭아 물들이기, 니플밴드까지.

모두에게 웃음을 주는 그분은 진짜 산타였다.

대표님의 마니또는 스텝 종화 님.

청춘어람 복지는 매우 훌륭하다.

극 I이신 분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어 주셨다.

재미있는 마니또 선물 증정시간이 지나고, 최고의 E와 I를 뽑는 투표시간까지 가졌다.

선정되신 분께는 특별히 모두의 박수와 축하인사를 선물로 받을 수 있었고, 모두들 기쁘게 축하해 주었다.

그래, 다들 행복하면 된 거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벌써 11시가 가까워져 가는 시간이다.

오랜만에 생각을 길게 한 하루는 쉬이 지쳤다.

대표님께 먼저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사람들은 더 즐겁고 깊은 밤을 보낼 것이다.

새벽 4시부터 하루종일 밖을 돌아다녔던 사람의 하루는 여기까지다.


E와 I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된 된 것은 점심식사 시간 앉은 자리에서 부터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모두가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함께 결과를 만들어낸다.

I에게는 조금 힘든 시간이었지만, 함께하는 즐거움을 I도 잘 알고 있다.

함께여서 알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춥고 시린 연말이 밝고 화사해질 수도 있고, 옆사람이 좋아하는 것만 보아도 같이 미소 짓게 되는 아름다운 경험은 오직 함께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1등 2등이 따로 있으랴.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같이 행복한 것이다.

소란했던 크리스마스이브가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당신에게도 함께 좋아해 줄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따뜻한 오늘이 되기를 바라본다.


#청춘어람 #크리스마스파티 #마니또 #다이소선물 #요거트스무디 #의성맛집 #의성숙소 #워케이션 #청년지원 #크리스마스선물 #금성산그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