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촌과 문희경서. 그리고 첫 문경

경상도의 첫 관문, 개방적인 도시 문경과의 첫 만남

by 천둥벌거숭숭이

더위가 서서히 그치는 중이다.

밤에는 제법 선선해졌지만, 낮은 아직 완연한 여름이다.

혼자 이른 가을을 맞이한다.

2주간의 가을소풍. 2주 문경살이. 문경과의 첫 만남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타 지역 살이 도전에 제법 용기가 생겼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지역에서 나를 알고 나의 세상을 넓혀가는 것.

일주일은 짧고, 한 달은 길다.

2주. 14일 동안 문경을 알아보고자 한다.

점촌가는 버스와 점촌터미널

뚜벅이에게 문경의 첫 관문은 점촌이다.

점촌 터미널. 부산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3시간 10분이 소요된다고 했지만 7분 일찍 도착했다.

밀양까지 가는 길에 차가 막혀서 걱정했으나, 그것은 혼자만의 기우였다. 구미, 상주 터미널까지 경유했음에도 7분이나 시간을 단축한 것은 오롯이 버스기사님의 숙련된 운전실력 덕분이리라.

점촌터미널을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으니, 곧 담당자분들이 도착하여 환영해 주셨다.

이번 2주 문경살이의 호스트는 [두다리 여행사]다.

일찍 온 연유로 웰컴티로 환영받았다.

점촌 느좋카페 인투더우즈

점심을 안 먹었다고 하니, 카페에 가서 차 한잔하자고 권해주셨다.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귀한 사람이다.

나는 말차라테와 에그타르트를 선물로 받았다. 문경과의 첫 만남이 좋다.

먼저 온 특권으로 달콤한 디저트를 선물 받고, 문경의 선배님들께 문경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듣는 호사를 누렸다.


점촌은 예로부터 가게(상점)들이 즐비했던 곳이어서 이름 붙여진 곳이다. 점촌시와 문경군이 통합되면서 이름을 정할 때, 상점이 많은 것보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경사스러운 조짐이 있다는 뜻의 문희경서, 즉 희망을 담은 문경이 채택되어 문경시가 되었다는 담당자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혼자서 먼저 들으니 더 재미있다.

곧 다른 참여자들이 도착할 시간이 되어 다시 점촌터미널로 향했다. 서울에서 오신 분들이었다. 여유로운 분위기가 기대되는 중이다. 총 4명의 참여자로 이루어진 이번 문경살이는 왠지 느긋하게 흘러갈 것만 같다.

풍성한 웰컴키트와 2주간 지낼 숙소
아담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숙소

2주간 생활 거점이 될 곳, 바로 신현 1리 새원마을이다.
신현 1리 마을회관에서 공들여 만든 게스트하우스에 이상하게 되었다.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아늑한 공간이다.

사랑채에 모여 간단한 OT가 진행된다.


이곳에서 주어지는 웰컴키트가 풍성하다. 두다리 여행사에서 준비한 키트에는 귀여운 필기구와 세면도구와 환영하는 마음에 담겨 있었다. 새원마을에서 주신 웰컴키트에는 샴푸, 비누가 들어있어 세면도구가 풍부해졌다. 위생이 최고다.

도착하자마자 선물을 한 아름 받고 마을 이장님과 함께하는 즐거운 마을투어가 시작되었다.

새원마을 성당과 샘
새원마을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특히 산의 나무가 우거지다

마을회관에서 곧장 직진하면 성당이 있다. 새원마을에는 천주교, 불교, 기독교. 3대 종교시설이 입점해 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혹은 호기심에 옆 종교시설에 금세 닿을 수 있는 재미있는 곳이다. 오래되어 보이는 종은 실제로 동네 어르신들의 생일에 나이 수만큼 종이 쳐지기도 한다고 말해주셨다.

새원마을이란 이름의 유래가 재밌다. 토정비결을 지었다고 알려진 이지함의 손자가 이 지역에 원님으로 오게 되었다. 그동안 원님이 없었던 마을에 새로운 원님이 와서 이름 지어졌다는 새원마을. 어렸을 적부터 이곳에서 나고 자란 마을 이장님의 옛날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지금의 마을 초입에 민가가 있다. 이 자리는 예전의 지서였다고 한다. 지서는 경찰서가 없는 읍, 면 지역에 두어 경찰서장의 업무를 나누어 알아보는 기관으로 지금의 지구대와 비슷하다. 이장님이 어릴 적 자주 놀러 왔다는 지서에는 구금실과 독방이 있었다고 한다. 바닥이 단단한 철판으로 굉장히 두꺼웠다고 말해주시는 이장님의 말에 머릿속에서 그 시절, 그 공간을 상상해 본다. 독방에서 노는 어린아이들, 근데 바닥이 두껍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땅파기를 해서 독방의 바닥까지 가보았나?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문산, 이름의 유래를 듣지 못했지만, 이장님의 이야기에 답이 있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이 유독 나무들로 우거진 마을 산에 고려장이 흔히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고려장은 일제강점기 때 등장하기 시작한 말인데, 진위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렇게 어르신들의 입으로 들으니 진짜 있었던 일 같이 느껴진다.
먹고살기 위해 가족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배고팠던 시절의 진짜 이야기일까. 한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전략적 거짓말이 진짜처럼 남아있는 것일까.

한 곳에 오래 산 사람이 해주는 옛날이야기가 참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역사와 사는 사람의 시간들과 함께하는 지금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5분 완성 비누만들기

이야기가 샘처럼 솟았던 마을투어를 끝내고, 마을회관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비누 만들기가 일정에 있었지만, 어르신들의 완강한 반대로 지역살이 참가자들만 비누를 만들었다. 이미 동네 어르신들께 동의를 받았지만, 저번주에 비누 만들기를 했기 때문에 바로 또 체험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나 보다. 귀여운 할머니들.

비누베이스에 천연가루로 색을 입혀 조물조물, em이 들아간 향료를 넣고 조물조물하면 비누 완성이다.

단 5분 만에 끝내는 비누 만들기는 향긋한 레몬향으로 금세 끝났다.

괜찮은데? 짧고 재밌다.

다음 일정은 마을식탁을 차리기 위한 장보기.

조식 식량비축과 첫식사는 노랑통닭과 떡만둣국이다

시골에 오면 반드시 존재하는 하나로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아침에 먹을 계란과 시리얼, 우유는 필수다.

시골식탁을 위한 요리준비까지, 첫날이니 간단하게 떡만둣국이 선정되었다.

뭐든지 간단하고 빠른 것이 최고다.

햇반과 라면, 그리고 입이 심심할 때 먹을 과자까지 야무지게 사서 새원마을로 입장.

식료품들을 있어야 할 자리에 놓고, 냄비에 물부터 올린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뚝딱뚝딱 떡만둣국 완성.

미리 주문한 노랑통닭과 함께하는 첫 식사.

따뜻하고, 바삭하고, 고소함이 우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장을 보고, 함께 식사를 하는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식구가 된다.


따뜻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정비 시간이 도래한다.

침대가 없는 숙소인 만큼 청소기를 한 번 돌리고 이불을 깔고, 덮는 이불을 올린다.

이장님 말에 의하면 침구류에 큰 돈을 쓰셨다고, 덕분에 이불이 푹신하다.

까는 이불이 조금은 얇아 바닥의 딱딱함이 그대로 느껴져 밤이 걱정되긴 한다.

그래도 첫날밤이라 설레고 괜히 붕뜬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과의 동침, 그리고 또 다른 낯선 내가 모르는 곳에 누워있다.

내일은 또 어떤 낯선 설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오늘 밤은 문경의 기쁜 소식과 경사스러운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