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생정, 전남교반, 오미자 쭈, 고모산성, 토끼비리, 박열의사 기념관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와 이제 기상을 시작한 닭들의 울음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역시 이것이 완연한 시골의 아침인 것이다.
어젯밤에 먹고 남은 치킨과 크레놀라, 그리고 우유. 완벽한 아침 식사다.
부랴부랴 일기를 쓰고, 일지를 쓰면서 어제 하루를 회상한다.
정신없는 하루, 하지만 오늘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트레킹 투어가 예정되어 있으므로 가벼운 복장, 발목 붕대, 넉넉한 물병과 선크림, 그리고 큼지막한 부채를 준비한다. 완벽한 트레킹 복장이다.
신현 1리 마을회관에서 시작되는 트레킹 코스다.
출발하고 5분 만에 하늘이 흐려졌다.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마치 변덕스러운 나의 마음같이 느껴진다.
좁고 조금은 긴 굴다리를 지나 만나는 조령천이 반갑다.
소야벚꽃길에 벚꽃은 가고 여름의 푸르름이 장악했다. 계절의 색을 입은 식물들의 내일 색깔이 궁금해진다.
드넓은 논과 밭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정도로 풍요롭다.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크고 높은 산들이 안정감을 더해준다.
고요하고 느긋한 도시 문경, 그 정취에 서서히 물들어가는 중이다.
자전거길이 생각보다 잘 만들어져 있다. 평탄한 길을 걷다 보니 봉생정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문경에는 산과 물이 굽이쳐 흐르는 곳이 많다. 이곳 봉생정 또한 가은천과 조령천이 만나는 용연에 위치해 바라보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봉생정으로 오르는 계단이 꽤나 가파르다. 문경에서 걷기 위해서는 발목 보호대와 무릎 보호대를 하고 움직이는 편이 다리에 좋다.
봉생정은 류승룡이 한양을 오갈 때 쉬어갔던 장소인 장리지소를 기리기 위해 그의 문인들이 선조시대에 지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와 복원 끝에 지금 이 자리에 위풍도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문경의 산들은 대체적으로 가파르고 나무로 빽빽하게 우거진 모습을 띤다.
이 험준한 산길을 오고 갔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몇 날며칠을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의 모습, 그를 뒤쫓는 노비이자 길동무가 수발을 들며 열심히 걷는 모습.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문경의 지리적 특성을 한 번에 느끼는 중이다.
날마다 듣는 문경에 대한 이야기가 새롭고 재미있다.
진남교반은 고모산성과 맞닿아 물길이 흐르는 역사적으로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경북 8경 중에 으뜸으로 꼽히기도 한다.
전남교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다리 위에는 한옥 지붕 모양의 철제물이 줄지어 서 있다.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는 다리를 보기 위해 밤에도 한번 더 만나고 싶다.
오미자테마터널 앞 매점에서 오미자가 들어간 쮸쮸바를 판매한다. 오미자 쮸.
적당한 산미에 알맞게 달다. 짧은 트레킹 길이었지만, 조금은 피로했나 보다. 한입에 쭈욱 들이키니 눈이 말똥해진다. 오미자 쮸 한입에 체력 충전.
문경에 와서 알게 된 사실. 문경은 광업으로 부흥한 도시이고, 그로 인해 부유해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
지금은 광산이 폐광하여 광부로 일하던 사람들은 다시 외지로 떠나고, 남아있는 유산들을 유지, 보수하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돋보인다.
열일하던 기찻길 위에서 인증샷도 남겨본다. 철길 위는 걷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다.
고모산성을 스쳐지나 토끼비리로 걷는 길이 어렵다. 옛사람들은 짚신으로 이 산을 올라갔을 텐데, 발목 붕대와 테이핑까지 했음에도 엄청난 피로감이 오는 길이다.
비리는 벼랑의 사투리로,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할 때, 갈 수 있는 길이 없어 당황할 때, 토끼가 나타나 안내해 준 길이라 토끼비리라 불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관갑의 사다리길이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조선시대 주요 도로로 사용되었으며, 영남대로 옛길 중 가장 험난한 길이라고 알려져 있다. 걸으면서, 읽으면서 그대로 느껴지는 험난함에 옛사람들이 더욱 위대하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짚신으로 이 험한 길을 걸었기 때문이 이 길에 있는 바위들이 반들반들해졌을 테니까.
그렇게 보는 정상이 귀하지만, 불면을 밤을 보낸 사람에게는 급격한 피로도가 몰려올 뿐이다.
예정되었던 트레킹 코스가 짧게 변경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지쳤을 땐 먹어야 제맛이다. 집에서 직접 만든 묵, 희영이네에서 먹는 도토리묵조밥이 충분한 영양을 보충해 준다. 찰기 있는 묵과 알맞게 익은 물김치 맛이 나는 육수가 조화롭다. 이제야 살 것 같다.
반찬으로 나온 호박무침, 경상도에서만 먹는 고추장아찌무침, 과일 사라다 모두가 맛있다.
특히 맛있다고 소문난 문경의 사과가 들어간 사라다가 맛있어서 묵밥보다 더 맛있게 먹었다.
곁들임 메뉴로 시킨 수수부꾸미 맛이 일품이다. 여기서 꼭 먹어야 하는 메뉴로 추천한다.
든든한 식사 후에는 당연히 수마가 달콤하게 밀려오지만, 그것조차 이겨내게 만드는 것은 느낌 좋은 카페와 좋은 사람들이다.
최근에 생긴 문경에서 예쁘다고 소문난 카페 서들이다.
이미 인별그램에도 많이 소개되었기에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가는 길이 이상스럽다. 일방통행길에 옆으로는 강이 흐르고 바로 앞은 협곡이 절경인 곳이다.
내비를 쫓아가면 고개를 갸웃하다가 불신감이 생길 즈음에 카페 서들에 도착한다.
전면 창으로 이루어진 카페는 부지도 광활하여 캠핑장으로 쓰여도 손색이 없다. 워낙 넓기 때문에 외부에는 반려견을 데려와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내부 인테리어 또한 푸르름과 자연의 조화가 좋다.
문경의 특산품인 도기로 벽면을 디자인한 것 또한 인상적이다.
커피 맛이 꽤 좋다는 다른 참가자들의 평도 있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는 달달한 블루베리 젤라토를 주문했다.
보라보라함이 마침 테이블 위에 놓인 꽃과 같은 색감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젤라토는 언제나 쫀득하고 달달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맛과 분위기에 취하는 아름다운 카페 서들이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박열의사 기념관이다. 지금 지내고 있는 숙소와 가까워 걸어가려고 했지만, 담당자님의 배려로 차로 편하게 기념관에 가게 되었다. 세상에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소란했던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일제 강점기시절, 셀 수없이 많은 독립열사들이 있었지만, 영화를 보고 알게 된 인물이 있다. 바로 ‘박열’이다.
1900년대에 태어나 뛰어난 수재였고, 10살의 나이에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정할 만큼 뚜렷하고 강직한 신념을 가진 박열의 서사가 그대로 담겨있다. 일제강점기에 살면서 많은 조선민들, 대한제국민들의 독립운동의지과 열망이 대단했다.
박열은 글로써 독립을 염원하며 동지들과 독립을 위한 의지를 계속해서 피력했다. 일본에서 자신의 조국과 가족에게 버림받아 아나키스트가 된 주체적 여성 가네코 후미코를 만나 함께 대한독립운동을 하던 중, 관동대지진 사건으로 일본의 법정에 피의자 신분으로 서게 된다. 억울한 상황에도 일본 법정을 투쟁의 장소로 만들 만큼 담대한 박열은 사형판결을 예상하고 후사를 보살펴줄 가족이 없는 가네코 후미코를 위해 일본 법정 안에서 결혼을 한다. 그래서 지금 박열의사 기념관에 가네코 후미코의 묘가 있다. 운이 좋게도 박물관 내에 문화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더 자세하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그리고 우리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
트레킹 코스라고 하여 무작정 걷는 것만 상상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오산이다.
걸으면서 보이는 풍경들은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
조령천이 흘러 산복천과 영상이 만나는 물길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경관이며, 옛사람들에게도 눈으로 휴식을 주는 휴양소였다.
전남교반은 경북 8경 중에 투표로 1위를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자 수로로 이루어진 군사적 요충지다. 그를 둘러싼 고모산성과 토끼비리길은 지금도 걷기에 상그럽고 길이 험준하지만,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주요 통로로 많은 이들의 발자국이 만들어낸 맨들한 바위만이 자신의 역사, 한반도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천천히 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트레킹 투어는, 몸은 지치지만 마음만은 열정을 샘솟게 만든다.
지금 내가 고요하게 보내는 오늘을 간절하게 희망했을 사람들의 몫을 잊지 않고 오늘을 살아간다면 더 좋고 평안한 내일을 기꺼이 맞이하게 될 테니까.
아마 오늘 밤은 깊은 잠을 자게 될 것 같다. 꿈속에서도 오늘의 이야기에 푹 빠져야 하니까.
9시부터 시작되는 내일 일정을 위해 이른 밤, 깊은 꿈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