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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제강 기념관과 F1963

치열했던 산업현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는 것은 혁신

by 천둥벌거숭숭이

나와의 약속은 언제나 중요하다.

이제껏 가보지 못한 곳들을 부지런히 찾던 와중에 만난 곳이다. 바로 고려제강 기념관.

예약을 하고 관람하여야 하는 곳.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밑받침이 되는 철강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곳에 방문하기로 한다.

오전 10시. 비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하루의 시작을 일찍 해야 하루를 길게 보낼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10시를 선택하지만, 언제나 나의 예측은 빗나가고 폭우 속으로 떠나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분명 약속시간 1시간 40분 전에 출발했지만, 엄청난 폭우로 인해 버스의 운행이 느렸고, 지독한 길치는 조금 헤매다가 우여곡절 끝에 고려제강 기념관 입구를 만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번화가에 위치해 있지만, 기대보다 구석에 위치해 있는 신기한 장소다.

고려제강 기념관과 광안대교의 와이어
다이아몬드브리지의 와이어 크기에 압도

고려제강 기념관은 고려제강 본사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곳에서 일하는지, 다른 이들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심지어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이야기해 주기도 좋다.

입구는 꽤 심플하다. 그 안이 더욱 궁금해지도록.

문을 열자마자 마주하는 것은, 부산의 명물인 광안대교의 사진과 광안대교를 지탱하는 와이어의 한 부분이다.

무겁고 큰 차들이 오고 가도 끄떡없는 것은 오래도록 연구하고 발전시켜 온 기술의 집합체다.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촘촘히 모은 와이어를 다시 와이어에 감싼 형태의 케이블이, 하나만 보아도 튼튼하다.

이 많은 케이블이 우리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입구를 차지할 만큼의 성과물이다.

고려제강 설립자 홍종열 약력과 그의 소지품 내지 소장품
고려제강의 역사는 사람과 함께 한다

역사는 모두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알려지는 것은 소수의 사람뿐이다.

남다른 관찰력과 시대의 흐름을 읽는 기치를 가진 사람의 사업은 무언가 다르다.

와이어로프에 대한 관심을 사업에 접목시켜 국산화 공정을 거친 후 다시 세계화로.

지금에까지 안전한 대한민국, 한국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전파하기까지 백 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Kiswire가 일구어낸 결과물들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동차, 건축물, 엘리베이터, 타이어 등등 전 산업분야의 소재가 되는 Kiswire 제품들의 설명이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다. 해설자가 따로 있지 않아도 바코드만 찍으면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

고무 타이어 안에도 수많은 케이블이 존재하고, 그래서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다. 늘 타는 엘리베이터를 고정하는 것은 수십 년을 거쳐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낸 기술의 집약체다. 전시를 보는 것만으로도 연구자들의 열띤 토론장면과 시끌벅적한 기계음이 쉼 없이 부딪히는 공장 안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다음 생에 다른 직업을 가져본다면 이쪽으로 생각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태생이 문과인의 괴변.

와이어 로프 제품과 스프링 와이어
와이어 제품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현장을 재현한 모형품

저 굵어 보이는 와이어는 촘촘하게 꼬여 남다른 튼튼함을 자랑한다. 우리가 심심치 않게 사용하는 전자기기 안에도, 나아가 다리를 고정하는 다리에게로 활동영역을 펼친다.

스프링 모양으로 꼬은 와이어는 푹신함과 안락함을 선사한다. 실생활과 정말 밀접해 있다.

심지어 낚싯줄보다 얇은 와이어는 때론 날카로운 절단용품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전시의 끝자락에 만나는 모형제품이 장난감같이 느껴진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중장비들을 작게 보는 것만으로도 귀엽다. 언제나 안전을 중시하면서 제품을 만들겠지만, 더더욱 발전하다 보면 재해 없는 공사현장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계화 세대로 변모하는 중에도 그 기계를 만들고 향상하는 것은 오롯이 인간이다.

고려제강 기념관을 지탱하는 와이어와 타이어 전시품
와이어 뮤지엄은 와이어 제품으로 가득하다

상징에 상징을 더한다. 와이어로 건물을 서게 만드는 기술을 마음껏 보여준다.

와이어줄을 이용한 피아노, 와이어를 이용해 만든 전시품과 타이어 등등. 넓은 공간에서 와이어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경험할 수 있다. 벽면에는 와이어의 역사와 제작 과정, 산업별 쓰임새 등에 대한 이야기가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든 작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직접 손으로 두들겨 만든 철사선을 뽑아내던 고대의 기술에서 신선판, 신선 그네, 자동연기선기계의 발전까지. 보다 튼튼한 와이어를 만들어내기 위한 제조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모해오고 있다.

커다란 공간을 가르는 철제다리를 건너면 기념관의 관람이 드디어 끝이 난다.

짧지만 강렬하고 공허하지만 가득 찬 역사를 배운 느낌이다.

1963년 세워진 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적극 활용하는 모습
F1963 안에 위치한 알라딘 중고서점 안의 창

공장의 부지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지금은 쓰지 않는 공장을 복합문화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 과거와 현재의 융합이 돋보이는 건물에서 주는 힘과 알찬 내용에 금세 흠뻑 빠지게 된다.

고려제강 기념관에서 나오자마자 만나는 대나무 숲길을 잔잔히 걸으면 문화 전시의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전시공간을 지나면 바로 식당가 등장.

보고 느끼고 먹고 마시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가고 싶었던 서점에 도착한다.

F1963 내에 위치한 알라딘 중고서점은 크기도 크지만 특별한 서점이기도 하다. 주말에는 디저트 팝업행사가 서점 내 공간에서 진행된다.

즉 서점 안에서 취식이 가능하다. 물론 F1963 내에서 판매하는 음식을 권장한다.

하겐다즈와 생수, 어린이 음료와 층고가 높은 알라딘 중고서점
탁 트인 정원을 바라보며 편하게 책 읽기

책 읽으면서 아이스크림까지 야무지게 맛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간단한 생수와 전 연령대를 고려한 음료가 작지만 알차게 준비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천국 같은 곳일까. 책 읽는 공간이 좋아지게 만들면 덩달아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책을 골라 원하는 자리에서 편하게 읽어볼 수 있다.

신발 벗고 올라가 넓은 창에 기대어 책을 보면, 글의 맛이 달라진다. 공간이 주는 힘과 글이 주는 힘의 시너지가 힘껏 나에게로 쏟아진다. 아침에 세차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맑은 하늘이 되어 푸르름을 선물한다.

분위기에 취해, 글에 취해 서서히 잠식된다.


이번에 읽은 책은 청소년 문학도서 [스파클]. 불의의 사고로 한쪽 눈을 잃을 위기에 있었지만, 누군가의 기증으로 시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같은 사고의 현장에서 본인은 살아나고, 동생은 여태껏 누워있다. 그로 인해 가정이 붕괴되고 무사히 살아내었다는 안도감은 어느새 동생의 삶까지 살아내야 한다는 커다란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자기가 얻은 삶에 대해 찾고 싶었던 유리는 자신의 기증자의 발자취를 쫓기 시작한다. 그러다 만난 소년이 자신의 기증자에게 쓰는 편지를 읽게 되고,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를 찾으면 기증자의 삶에 더 가까워질 것만 같다. 열심히 공부해서 동생을 일으킬 수 있는 의사가 되길 바라는 아빠, 허술해 보여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여자인 자신보다 남자인 동생을 좋아했던 할머니는 사건 현장에서 동생을 먼저 데리고 나갔다. 절치절명의 순간에 선택을 눈으로 보았던 유리는 할머니가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대신 살아났다는 죄책감과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소년을 만나 제대로 자신을 마주하려고 하는 유리의 앞날은 눈부시게 찬란하다.


학창 시절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고, 각자의 존재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지만, 언제나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은 온전한 자신이다. 완벽해 보이는 엄마와 아빠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고, 그들은 언제나 자식들의 울타리가 되어준다. 흔들려도 괜찮아. 유리에게 주어진 삶은 새하얀 눈에 뒤덮여도 피어나는 목련꽃망울을 닮았다. 견딜 수 없는 추위를 이겨내고 기꺼이 피어내는 찬란함을 담고 있다.

누구나가 가진 각자의 기준과 평가가 있는 것이고, 모두가 자기의 슬픔과 아픔이 가장 큰 것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인생은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여정이고, 자기 스스로를 잘 알 때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도 작가님이 하고 싶은 진심이 그대로 전해진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특히나 청소년 문학은 읽는 이를 위한 배려가 느껴진다. 어려운 단어 하나 없이 편하게 쓱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책 한 권을 읽으면 하루가 알차게 느껴진다. 특히나 좋은 글을 읽고 남는 여운이 길다면, 그 하나라도 충분하다. 스스로의 약속을 지켰고, 고려제강 기념관을 홀로 돌아보았다. 혼자서 돌아보는데 미리 예약해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졌지만, 사람이 몰리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니 안내에 따르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는 것을 수긍한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임에도 이만큼 우리 경제가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손재주와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있었다. 온전히 기술 하나만으로 많은 사업을 따내고, 지금도 다른 나라에 가서 안전하고 튼튼하면서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어야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공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소유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나누는 마음 덕분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소중한 공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은 이용객의 의무다. 달빛정원을 걷고, f1963 내에 위치한 카페 화수목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즐긴다. 문화를 즐기면서 힐링하는 것. 바로 이 것이 공간을 제공한 사람들의 목표가 아니었을까.


새로운 공간을 찾아보고 직접 가보는 것. 나의 활동영역을 넓히는 것은 나를 확장시키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기계가 움직이고 사람들이 소리치던 곳이 고요하게, 하지만 진한 이야기를 풍기고 있는 고려제강기념관과 f1963에 다녀왔다. 그것과 더불어 도보로 2분도 안 걸리는 곳에 코스트코까지 있다. 코스트코 생수는 200원.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하고 강을 마주하고 걷다 보면 어느새 센텀시티가 눈앞에 나타난다.

걷기에 좋고, 배움이 있는 도보여행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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