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교차로 알라딘 중고서점은 핫하다
지난했던 더위를 오래도록 견뎌내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가을이 왔건만, 서늘한 계절을 만끽하기 아쉬웠던 장마가 뒤늦게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연일 흐린 하늘은 가을소풍을 미루게 만든다.
그래도 나가고 싶다. 그럴 때 찾는 곳이 있다.
도서관보다 더 개인의 취향이 담긴 장소.
게다가 위치선점이 탁월한, 덕천교차로 바로 앞에 위치한 알라딘 중고서점이 바로 그곳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주변 상점 구경이나 하면서 잠깐 들러봐야지, 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날씨가 변덕스럽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그치고, 또 대기에 물조리개로 물을 뿌리듯이 금방 젖는다.
도망치듯 도착한 알라딘 중고서점이 오랜만이다.
읽고 싶은 책이 도서관에 없을 때, 서점에 자주 찾는다. 이곳에 오면 사람들이 얼마나 책을 많이 읽는지 실제적으로 체감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아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들어오는 추리소설 코너는 언제나 베스트셀러다.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매력은 바로 다음장을 궁금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과 작가의 필력이다.
속도감 있는 추리소설은 독서에 회의감이 들 때 즐겨 찾는 장르이기도 하다.
비교적 근래에 읽었던 셜록홈스 시리즈와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이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재미있는 글은 많은 사람들에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할인에 할인을 더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삼성카드와 알라딘의 콜라보 프로모션. 기존 15% 할인받고 15% 추가 할인이 올해 말까지 이어진다.
나는 유류세 할인을 위해 현대카드를 쓰고 있지만, 카드 혜택은 언제나 탐나는 일이다.
내년에도 좋은 혜택 많이 만들어주세요. 이사 갈게요. 꿀을 찾아가는 꿀벌이 되겠습니다.
서점에서는 보고 싶은 책이 없어도 전체를 둘러보면서 보고 싶고, 갖고 싶은 책을 찾아보는 것이 내 일이다.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어린이 코너까지 찾게 되었다. 많은 부모님들의 파산을 끌어내는 하츄핑이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이 서점 영업 잘하는구먼. 분홍분홍한 너의 이름은 무엇일까.
귀엽기만 한 하츄핑을 지나, 돌고 돌아 결국 고전문학 앞에 선다.
갖고 싶은 책들은 꼭 1권이 없다. 안나 카레니나, 콜레라시대의 사랑. 다른 시대, 장소를 살았으면서 왜 나는 그들에게 공감되고 빠져버리는가. 대문호들의 엄청난 필력을 꼭 닮고 싶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이미 책장은 포화상태지만 갖고 싶은 책은 언제나 한가득이다.
가지고 있지만, 또 갖고 싶은 책들도 많다. 왜냐고? 출판사가 다르고 번역하는 이가 다르면 글의 맛이 달라진다. 원서로 읽으면 좋지만, 한글로 읽는 것에도 만족한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들려주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팔리는 책과 파는 책.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있는 책들이 이곳에 가득하다.
오늘 내가 읽을 책은, 도서관에서는 항상 자리를 비우고 있었던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
박정민 배우가 넷플릭스보다 재밌다고 극찬한 소설이다. 혼모노는 일본어로 진짜, 진실, 진심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다. 니세모노. 가짜와 정반대는 단어의 제목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코로나 시절을 지나 좌석이 축소된 서점의 테이블은 하나로 줄어 있었고, 좌석이 6자리 준비되어 있다.
간간히 책을 살펴보는 사람, 앉아서 짐정리를 하는 사람들이 얕게 앉았다가 되돌아가는 자리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6개의 좌석 중에 하나를 차지한다.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눈으로 글을 좇으며 이곳의 분위기를 읽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카운터 바로 옆자리에서 들리는 소리가 정겹고, 또 반가웠다.
서점의 직원들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문받은 책들을 찾고 포장하는 일, 책을 팔러 오는 사람, 사는 사람. 앨범을 사는 어린 친구들, 아이가 가지고 놀 장난감을 구매하는 어머니와 보채는 아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것보다 느긋하게 사서 읽는 사람들이 많구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서점 안에 알차게 전시되어 있는 상품들은 각자의 사랑을 받고 떠나는 중이다.
책에서 주는 이야기보다, 이 장소에서 얻는 에너지가 더 커다랗게 와닿았다.
그리고 나는 혼모노를 다 읽었다. 진실을 증명하는 것은 각자의 진심과 상대방의 그릇에 달려있다.
새책은 아니지만, 새책같이 빳빳한 책을 하나 구매한다.
이미 읽은 책이어도, 또 읽어보면서 글을 이해해보고 싶다.
붕 뜬 시간을 충실히 잡아내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하루를 알차게 보낸 기분.
다행히 귀갓길에 만난 수줍은 해가 반갑다.
비구름은 하늘 위를 유영하고 있지만, 그래도 햇볕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한 순간이다.
하늘을 보며 횡단하기 위한 신호를 기다리던 순간에 만난 스마트 횡단보도가 신기하다.
6차선 도로에 펜스가 쳐져 있는 것은 무단횡단하는 사람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곳임을 인증한다.
지하철역 바로 앞에 위치한 횡단보도는 과연 안전할까.
얼마나 위반하는 사람이 많길래, 이 앞에 자리 잡았을까. 혹은 시범적으로 놓여있는 스마트 횡단보도일까.
교통법규는 우리의 안전을 위해 필수조건이 되지만, 자신의 편의를 위해 질서와 법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하지만 이곳에는 스마트 횡단보도가 있지.
법규를 어긴 사람에게 광선빔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가 주어진다면, 그는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진심으로 사는 사람들은 물론 질서를 지키겠지만, 틀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모두가 가짜인 것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진실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스마트 횡단보도가 필요하지 않겠지. 혹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튼튼한 울타리라고 생각하면 외려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신호를 지키며 걷는 순간만큼은 진짜가 되어 순순히, 그리고 별일 없이 이곳을 지나친다.
별일 없이 고요하게, 오늘만은 거짓을 행하지 않은 진짜의 하루를 보냈다.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그래도 '찐'에게 기울었다고 말하고 싶은 촉촉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