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화명생태공원에 가야 합니다
가을이다.
올해의 더위가 다가올 여름 중에 가장 시원하다고 하지만, 내가 덥다면 더운 것이다.
선선하고 마른 잎의 향을 가득 머금은 가을바람을 채 느끼기도 전에 추위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냉기는 창을 열기 두렵게 만들 만큼 서늘한 온도를 가지고 있다.
움직이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 맑다가도 금방 흐려지는 가을하늘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나가야 한다.
가을이 오면 자신의 수줍음을 한껏 뽐내는 홍댑싸리를 보러 화명생태공원으로 향한다.
가만히 있으면 춥고 움직이면 더운 날씨. 변덕스러운 가을날씨는 꼭 내 마음과 같다.
언제나 평정심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왜 이리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경우가 많은지.
후회보다 온전한 나 자신을 하루에 심어놓고 싶다.
이렇게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사람들은 부지런히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고, 그 속에 내가 있다.
지독한 길치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다.
대충 카카오맵을 확인하고 걸었지만, 내가 바라던 도로가 쉬이 나오지 않는다.
가는 도중에 자동차운전학원이 나와서 당황했지만, 막힌 길이 아닌 것을 보고 다시 앞으로 전진하니 철제다리가 보였다.
그래도 좋아. 기찻길 위를 걷는 다리를 만났으니까.
나는 어릴 적부터 기차를 좋아했다.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기차였으니까. 철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차여행을 상상할 수 있어서 지금도 좋아한다. 다리를 건너는 순간에는 기차가 다니지 않았지만, 곧 지나갈 테니까. 조금은 더 선선한 방향으로 가던지, 혹은 바다와 가까워지기 위해 아래로 향하던지.
조만간 혼자 하는 기차여행을 기획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가기 전이 가장 설레니까.
다리의 끝에 다다르니 기찻길 옆으로 하꼬방이 보인다.
피란민의 역사를 담은 하꼬방이 지금도 있다니. 하꼬방은 판자로 만든 작은 집, 혹은 방을 이르는 말이다. 집도 땅도 없는 사람들이 밤에 후다닥 만들어 겨우 비바람을 피해 살아가던 곳.
슬레트 지붕 위에 다시 남는 철판과 보로코(건축자재)가 올라가 있다.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는 그들만의 노하우가 담겨있다. 얼마나 오래 이곳에 머무를지는 모르지만, 그동안은 평안하기를.
혹은 누군가 도피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이 샘솟는 것을 가만히 두면 나는 이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더 반가웠어 하꼬방.
길을 잃은 사람이 다시 카카오맵을 켜고 도착장소를 확인하니 도보로 54분 걸린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망설임 없이 버스를 타고 수정역으로 향한다. 시민들의 든든한 다리가 되어주는 버스가 최고.
한 번 와본 길이라고 이제는 길을 찾지 않고도 바로 화명생태공원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화명동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 발도장을 찍는 곳. 그곳에 나도 오늘은 한 발자국 더 보태본다.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기에 더더욱 좋다. 우리 강아지도 이런 곳에 오면 더없이 행복할 텐데. 언젠가 운전솜씨를 뽐내며 함께 오기를 다음으로 살짝 미루어본다.
화명생태공원 연결보도를 지나면 곧장 차도가 나오고, 그 앞이 넓게 조성된 인라인스케이트장이다. 이렇게 선선한 날 스케이트를 타면 얼마나 재밌을까. 엄마와 함께 마실 나온 어린이들이 앞다투어 스피드를 즐기고 있었다.
인라인스케이트는 재밌지만 보호장비를 잘 갖추고 타야 한다. 잘 모르고 도전을 했던 나는 발목 성장판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푸르름을 가득 안고 있었던 댑싸리가 어느덧 가을의 색을 입고 있다. 참 수줍은 친구다.
누군가 진분홍가루를 뿌려놓은 듯. 골고루 퍼지지 않은 느낌조차 아름답게 보인다. 괜히 포토존 앞을 서성거리게 된다.
가을은 하늘이 맑고 다른 계절보다 높게 느껴지곤 한다.
광활한 하늘과 나뭇잎이 땅을 향해 흐드러지게 자라는 느티나무와 대조되는 홍댑싸리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안에서 내 눈길을 이끈 것은 댑싸리가 아닌 의외의 존재였다.
이상한 구조물은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홍댑싸리가 이리보고 저리보고, 요리 보면서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밤에 보면 무섭겠는데.
그렇게 시선을 따라가다가 진짜로 살아있는 존재의 눈빛을 느꼈다.
너도 놀랬니? 나도 놀랐어.
미용을 멋지게 한 강아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부츠를 신은 듯, 풍성한 다리와 시원한 몸통을 소유한 강아지가 마치 나를 알아봤다는 듯이 가만히 눈을 맞춘다.
보호자는 홍댑싸리를 찍느라 바쁜 듯이 보였다.
나를 아니? 혹은 나에게서 풍기는 다른 강아지의 체취를 맡은 거니?
오면서 우리 집 강아지를 생각했는데, 너와 만나면 대단한 결투가 벌어질 것 같지만, 아직 만나지 않았으니 그저 좋은 친구가 될 거라는 희망이 담긴 생각을 해본다.
아니면 사진을 예쁘게 찍히기 위해 나를 본 건가. 하는 깨달음이 퍼뜩 들었다. 영민한 아이들이 여기저기 포진해 있다. 어리석은 인간보다 나은 존재들을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똘똘한 녀석은 어디서든 이쁨 받을 것이다.
보호자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너는 인생의 진리를 잘 아는 강아지다.
인내, 그리고 맑게 웃는 법을 아는 사랑스러운 존재.
진분홍의 홍댑싸리보다 진하게 눈 맞춤을 나눈 강아지의 눈망울이 기억에 남는다.
강아지도 예쁘고, 홍댑싸리는 더 아름다운 계절이다.
각자가 바라본 세상의 기억을 저장하는 방법을 나도 따라 하게 된다. 사진 찍는 사람을 찍는 것.
천천히 보아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마음에 담아낸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님에도 한 번도 짖지 않았던 부츠 신은 강아지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
바라만 보아도 그저 좋은 것을 여유롭게 즐기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좋은 외출이었다.
요즘엔 공원 입구에 먼지떨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한 할머니가 옷과 신발이 뭍은 먼지를 시원하게 털어내고 함께 온 강아지에게도 같은 행동을 하려고 한다.
강아지는 완강히 거부를 했지만, 할머니는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강렬히 하고 싶어 했다.
뜨악한 눈길로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본인이 하는 행동이 옳지 못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의 행동이다.
바로 머신건의 손잡이를 내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다른 곳으로 향한다.
사랑하는 존재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배려고 참사랑일 텐데.
본인이 하는 행동이 옳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행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바로 눈앞에서 만나니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물론 풀밭을 거닐다가 진드기나 먼지를 털어내는 것은 좋지만, 싫어할 때는 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서로를 살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쉬이 추웠다가 더워지는 계절. 변덕스러운 마음을 닮은 가을이 나는 좋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쉽게 조절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 마음이다.
산책을 좋아하는 강아지와 함께 아름드리 자라고 있는 홍댑싸리를 보는 사람들. 함께 한 순간을 기억하는 것, 지금을 즐기는 것, 서로를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장면이 아름답게 와닿았다.
때로는 서툰 마음도 있다. 누군가의 선의가 받는 이에게 폭력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누구에게 달려있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제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더 좋아질 것을 확신한다. 자신의 잘못을 금방 수긍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니까.
수줍음이 꼭 필요한 이 시기에 마음을 충분히 데워보기를. 그래서 다가오는 겨울을 조금은 의연하게 보내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