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포 가는 길의 종착지는 임시 수도 기념관
굳이 안 해도 되는데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질문에 잠식되었다.
이제껏 내가 안 했던 행동들, 혹은 해야 하지만 미뤄왔던 것들에 대한 것들을 차근히 나열하다 한 가지 생각에 머리가 멈춰버렸다.
부산에 살고 있지만 잘 가지 않았던 곳.
바다.
여기도 바다, 저기도 바다이지만, 각자의 바다가 존재한다.
나에게는 언제나 멀게만 느껴졌던 바다.
서해, 동해, 남해바다보다 가깝지만 먼 곳.
바로 다대포다.
한국의 유우니 사막이라고도 불리는 다대포는 부산의 끝에 위치하고 있다.
고로 아주 멀다는 뜻이다.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많고, 생태계 공원이 조성되어 자연을 만끽하기에 제격인 장소다.
재작년에 다녀오고 2년 만에 찾게 되는 다대포다.
2년이란 꽤 긴 시간이다.
예전에 갔던 길 그대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지만, 모든 것은 내 예상을 빗나가고 말았다.
버스 노선이 개편되었던 것이다.
서면에서 다대포로 가는 직행버스가 사라졌다.
쉽게 기대하고 쉬이 당황해 버렸다.
다행히도 부산 버스는 환승시스템이 잘 되어있고, 버스를 두 번만 더 갈아타면 다대포로 갈 수 있다.
섣부르게 판단한 내 잘못이지. 버스는 죄가 없다.
덕분에 부산을 야무지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서면역에서 부산버스 81번을 타고 서부교회에 내린 후 다시 96번 버스로 환승하면 끝.
난생처음 타본 81번을 타고 야무지게 드라이브를 즐긴다.
내가 사는 곳이지만 낯선 모습들, 혹은 스쳐 지나갔던 기억만 존재하는 곳들을 눈으로 확인해 본다.
서부교회 정류장에 하차.
오래된 건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건물이든. 그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에 지대한 호기심을 갖고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이곳 내 마음에 꼭 든다.
다대포로 가겠다는 목표는 어느샌가 사라져 버리고 생각의 늪에 푹 빠져버렸다.
좁은 출입문과 계단, 기단과 기석으로 이루어진 옛 건물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지어졌을까.
튼튼하게도 지어졌다. 그 안이 궁금해 미치겠다. 하지만 호기심이 짐짓 범죄로 이어지는 것 또한 순식간의 일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주변을 돌아본 순간, 나의 눈길을 이끈 이정표.
임시 수도 기념관.
좋아. 오늘은 임시 수도 기념관을 가보겠어.
애초의 목적과는 달라졌지만, 오히려 좋아.
언젠간 가야지, 가겠지. 했던 곳을 이제야 찾아가게 되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800m만 가면 만날 수 있다.
좁은 도로에도 집 앞 주차를 기어이 해내는 사람들.
피란민들이 살기 위해 밤에 후다닥 만들어버린 판잣집이 이제는 시멘트로 튼튼히 지어져 있다.
길보다 집이 먼저 만들어진 특이한 구조는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주거풍경이다.
이 좁은 길에서 공사차량, 이사차량이 부지런히 오고 갔을 것이다.
이웃집의 수저 부딪히는 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른하게 들려주는 듯하다.
주택가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중심가에서 적당히 떨어진 굉장한 요지다.
전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부산, 피란의 이야기를 다시 만난 가족의 동상으로 풀어낸 상징적인 계단을 더디게 오르면 만날 수 있는 곳.
1928년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로 이용되었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대통령 임시 관저로 쓰였던 장소다.
빨간 벽돌과 기와지붕이 옛것 그대로 남아있다.
건물 주변에는 피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안내판이 우리를 반긴다.
전쟁은 누가, 무엇을 위해 발생시키는가.
언제나 피해는 민초들. 힘없는 사람들이다.
그저 살아가기 위해 아래로, 가족들의 손을 꼭 잡고 철길을 따라, 물길을 따라 기약 없이 내려왔을 사람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사람의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책임져야 하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살기 위한 실용적인 일들 뿐이다.
호화스럽게 살았던 위정자들 또한 전쟁시기에는 그동안 누렸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때.
약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여기, 이 자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의 현안을 보고 받고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대통령 관저인 당호의 이름을 딴 사빈당에 아무런 제약 없이 당당히 들어선다.
문화관광 해설사가 상시 있다는 안내표가 있었지만, 내가 입장했을 때는 없었다.
오히려 좋아. 그들이 준비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찬찬히 둘러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니까.
남의 집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준비된 슬리퍼를 신는 것을 좋아한다.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맨발이 편한 것은 오로지 내 집뿐이다.
슬리퍼를 신고 문을 열자마자 만나는 응접실.
그 시절에 오고 갔던 사람들의 사진과 사용했을 법한 가구들이 퍽 예스럽다.
호화스럽지도, 단출하지도 않은. 정도와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모습이다.
굳이 편안한 의자일 필요도 없다.
서로의 이익을 위한 대화에 긴 시간은 필요가 없다.
호의는 보이지만 겉치레인지, 진심인지는 그다음 행보로 결정할 뿐이다.
이는 지금도 같은 모습으로 되풀이된다.
분명 한미 자동차 관세 15%로 협의를 보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럴 수밖에 없다는 미국 대통령의 약속과는 다른 행보가 놀랍지도 않다.
언쟁보다는 긴장감과 눈치싸움이 벌어졌을 장소가 지금은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다.
진짜 서재의 모습일까.
책상과 마주한 모습이 자신의 초상화라면.
엄청난 자애심일까, 혹은 그를 향한 누군가의 충성심일까.
기묘한 서재보다 눈길을 이끈 것은 바로 화장실이다.
완전한 푸세식.
대통령 내외는 신경 쓸 것이 없다. 일하는 사람들이 늘 옆에서 보필하고 있었을 테니.
자기로 한껏 꾸며진 변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내용물은 일하는 사람들이 펌프로 끌어올리고 부지런히 닦아내었을 것이다.
아름다워 보이지만 아름답지만은 않은 공간이 조금은 서글프게 보였다.
바깥서방보다 안사람의 취향이 물씬 풍기는 곳이 바로 안방이다.
이승만 대통령보다 25살이 어린 오스트리아에서 온 프란체스카 여사의 취향일까.
왜 프란체스카 여사인가 찾아보았더니 진짜 외국사람이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첫 영부인은 외국인이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길 때마다 도미하였던 이승만의 정치적 원천을 이렇게 만나는구나.
험한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최후의 보루는 다름 아닌 시대를 읽는 명석한 두뇌와 이기심을 생각하게 되었다.
경비실로 사용하던 공간을 한국전쟁 특공대원 이정숙 할머니의 증언이 담긴 장소로 탈바꿈되었다.
함경북도 성진시에 입성한 백골부대의 단원이 되었던 19세의 성진여고 졸업생 이정숙.
오로지 목표는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는 것.
수많은 교전에 참여하면서 눈앞에 벌어진 살상행위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기억 속에 무고한 민간인들의 피해가 울분처럼 남아있다. 전쟁의 상처는 고스란히 약자들이 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
작은 공간에서의 울림이 돌아서자마자 다른 분위기로 전환된다.
다이닝 룸. 우리말로 식당.
식탁과 의자만 보면 유럽의 옛 모습 같지만, 그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지극히 한국스럽다.
지금도 어느 부잣집의 식당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세련된 인테리어 덕분일까.
이곳에 와서 제일 마음에 드는 공간이다.
역시 모든 근심을 날리는 것은 편안한 자리와 맛있는 음식.
부엌의 모습까지 현대식으로 잘 만들어져 있다. 외국인 부인의 취향이 담겨 있어서였을까.
지금 누가 들어와서 살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을 부엌에서 살고 싶어졌다.
부엌의 주인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아닌 조리사들이었다.
조리사들이 쓰던 방을 생각의 방으로 바뀌었다.
나름의 서재를 이곳으로 꾸미고 싶었던 것일까.
기획자의 의도는 잘 모르겠으나,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은 전혀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왜 이렇게 공간을 허비했을까 하는 의문만이 남을 뿐.
조리사실 옆에는 커다란 욕실.
아마 원래 쓰던 것을 부수고 새로 만들지 않았을까.
고급스럽기보다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욕실의 모습이 그저 가만히 존재하고 있다.
쇠로 만든 세숫대야와 빨래판과 방망이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서민적이었다는 의도를 내포하는 걸까.
생각의 방과 욕실은 생각보다 의문이 드는 공간이다.
이제 겨우 한 층만 돌아보았다.
경상남도 도지사의 관저로 쓰였던 공간을 임시 대통령 관저로.
그리고 부산경찰청 검사장의 관사로 쓰였던 공간이 임시 수도 기념관의 전시관으로 바뀐 것은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지금을 만든 것이다.
단지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그때 그 시간의 이야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축약된 이야기들이 넘실거린다.
얕게 지나갈 수 있는 역사가 아니다.
임시 대통령 관저의 2층과 임시 수도 기념관 전시관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오래도록 아껴왔던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의 속도는 언제나 느리게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