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이수 콘서트 부산편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나는 내가 하던 일을 하고 있었고, 아주 운이 좋게도 공모에 당첨되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서 만나는 '낯선 나'를 선호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았던 고려제강 기념관에서 진행 중인 관람이벤트를 보았다.
관람후기를 SNS에 작성하고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르면 참여신청 완료.
'전화받기 싫어' 인간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 일단 번호를 검색하니 고려제강 기념관?!
콜백 해서 문의를 드리니 관람후기 이벤트에 당첨되었다고. 코스트코 지류 상품권 10만 원을 보내기 위해 주소를 불러 달라는 전화였다.
그렇게 해서 얻은 코스트코 상품권은 써야 제맛이지.
엄마와 함께 코스트코로 향하는 길은 지난하다. 버스를 갈아타며 부산을 횡단한다.
드라이브를 굉장히 좋아하는 나는 이 시간을 참 애정하지만, 철저한 계획성이 빛나는 어머니는 차 타고 다니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그랬던 그녀의 눈에 보인 현수막의 문구는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겨울나기 이수 콘서트].
쫓아다닐 정도의 엄청난 팬은 아니지만, 부산에서 진행되는 이수 콘서트에는 가고 싶었던 60대의 여성.
코스트코 가는 길에, 코스트코보다 더 보고 싶은 존재가 생겼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말없이 콘서트 표를 예매하는 일뿐이다.
그리고 아주 다행히 예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라 S석의 표들이 남아있었다.
사실 나보다 운이 좋은 사람은 엄마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이날 코스트코를 가지 않았더라면, 고려제강 기념관에 다녀와 관람후기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이수 콘서트를 가는 날이다.
모든 것은 나의 예상을 빗나가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눈앞에 닥쳐도 기꺼이 수용하는 태도가 나의 오늘을 만든다.
그동안 벡스코를 부지런히 다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취업, 창업 박람회, 커피 박람회, 북 앤 콘텐츠 페어 등등.
요즘 사업 동향과 사람들의 소비패턴을 이해하기에 참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아 자주 찾던 곳이다.
하지만 벡스코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은 처음 보았다.
이수의 인기가 이렇게 많았던 것일까.
처음 하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내가 알았던 세상이 파괴되는 즐거움이 크다.
콘서트 티켓을 현장수령하는 사람들의 줄을 보면서, 4천 원의 행복. 미리 집에서 챙겨 온 콘서트표를 고이 만져본다. 표만 가지고도 배가 부르다는 말은 지금을 말하는 것이겠죠.
부지런함과 조금의 귀찮음을 감내하면 나중이 편해진답니다. 표를 잊지 않기 위해 며칠 전부터 가방에 넣고 매일매일 잘 있나 확인한 것은 절대 비밀이 아닙니다.
공연은 오후 6시 시작.
식사시간에 걸쳐 있으므로, 점심을 과식했다.
당당히 말합니다. 요즘 입이 트여서 계속 먹고 싶습니다.
오늘은 저녁을 거른다는 이유로 점심을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후식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제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는 건강한 어른이므로, 미리 챙겨간 약밥을 로비에서 천천히 먹고 콘서트를 즐기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마치 모든 것이 처음인 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신분증까지 야무지게 챙겨갔지만, 콘서트 표만 보여주었는데 입장이 가능했다.
꽤 수월하게 지나갔군. 어둠의 경로로 티켓을 사는 사람이 적기 때문일까. 서로에 대한 믿음일까.
내 속에서 피어오르는 음모론을 잠재우고 우리에게 배당된 객석으로 향한다.
이제껏 보았던 벡스코 제1 전시장이 달라졌다.
무대와 화려한 조명, 그리고 뒷자리에는 좌석이 생기면서 마치 경기장의 관중석이 생각나게 만들었다.
역시 사람이 위대하다. 만들고자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만들어낸다.
그리고 스치는 잠깐의 후회.
계단식 자리에 앉는다면 지금처럼 앞자리 남성의 머리 때문에 보이지 않는 시야가 줄어들 텐데.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뒷자리를 예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예매하면서 확인한 사항도 있다. 나만 확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표를 구매한 사람들의 연령대와 성비를 확인해 보는 일.
남성 65%, 여성 35%. 30대의 집중적 선택을 받는 이수의 콘서트.
그래서 그런지 자리에 앉자마자 수컷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 나에게는 낯선 경험이었다.
자리가 조금은 느슨했으면 하는 바람. 구취 때문에 조금, 아주 조금 많이 힘들었다.
플라스틱 의자를 대비해 가져간 방석이 요긴하다.
탄탄한 지방으로 유지 중인 나는 안녕하지만, 연약한 엄마의 엉덩이를 지켜줄 방석이 큰 몫을 했다.
앞자리 복불복 실패와 구취 이슈로 조금씩 쌓여가던 불만은 한 사람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로 콘서트의 주인공, 엠씨 더맥스의 이수 등장이다.
멘트 없이 시작된 그의 노래.
A Boy From The Moon. 달에게 들려주는 소년의 이야기.
사랑은 아프려고 하는 거죠.
좋아하는 노래를 열창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일지도.
목이 터져라 부르는 그의 노래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부산에 오면 유독 익숙하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는 이수의 멘트에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부산이라서 그래요. 윗지방보다 따뜻하니까요.
저녁 식사는 하셨냐는 물음에 노라고 외치는 사람이 많았다. 이수는 콘서트를 위해 두 끼를 몰아 먹었다고.
그래서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구나. 역시 노래는 뱃심이지.
절정의 고음을 자랑하는 [사랑의 시]와 [one love]를 라이브로 듣다니.
콘서트 표가 아깝지 않은 순간이다. 15만 원의 가치가 있는 콘서트.
비록 실물보다 전광판을 보며 콘서트를 즐겼지만, 이 또한 어떠하리. 그저 생생한 가수의 노래를 듣고 싶었을 뿐.
사실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까지 나름의 고민을 했다.
좌석이 가득 차지 않으면 어떡하지. 앞자리 취소표가 생긴다면 앞으로 전진할 수도 있을 텐데.
매일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차츰 줄어가는 공석의 표에 대신 뿌듯해하면서도 취소표를 바라는 이중적인 모습.
그런 걱정에 반비례해서 벡스코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이 걱정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데, 진심으로 노래 부르는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한다.
지금 이렇게 그의 진심이 느껴지고, 나 또한 감상에 젖게 된다.
물론 엄마가 좋아하니까, 그 사실로도 나에게는 충분하다.
한곡 한곡. 모두 정성이 담겨있다.
그에 대한 기대를 알고 있다는 듯, 모든 곡의 키를 원키로 부르는 자신감은 그만이 가진 능력이다.
2시간을 혼자서 채워나가는 26년 차 가수에게 다시금 푹 빠지게 된다.
후회하지 않는 삶, 좋아하는 것을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일, 저일. 진득하게 한 가지 일을 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알려주는 우직함이 마음에 와닿는다.
물론 잠시 목을 쉬어주고 옷을 갈아입는 시간을 채워주는 영상이 있었다.
[파문]이라는 이름의 영상조차 눈을 뗄 수 없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겨울나기라는 테마를 채우는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싶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게 지금의 최선이고, 부족함 마저도 나의 모습이니까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저 이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모든 노래를 알지 못한다. 처음 듣는 곡도 많았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진짜 노래를 좋아해서 공연을 하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반복되는 구절은 저절로 따라 하게 되고, 곡이 끝날 때마다 저절로 박수가 쳐지는 신비한 힘.
처음 듣게 되었지만, 곧 평생 들을 노래들이 정해졌다.
많은 이들의 함성을 받았던 [어김없이]와 [백야].
엠씨 더맥스 특유의 애절함과 처절함이 담긴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낯설면서 익숙하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들과는 전혀 다른 음악.
오로지 한글로만 전하는 진심이 느껴져서 유독 좋다.
관객들이 함께 부르는 [어디에서]가 특히 좋았다.
이수는 좋겠다. 이렇게 자신의 노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아서.
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참 부럽다.
나도 이렇게 행복하고 싶다. 충만함을 느끼고 싶다.
마지막 앵콜곡. [잠시만 안녕].
주옥같은 명곡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
언젠가는 돌아갈게, 사랑할 자격 갖춘 나 되어.
늦지 않게 돌아갈게. 행복을 줄 수 있을 때.
지금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자, 가수가 관객에게 꼭 약속하고 싶은 말이지 않을까.
계절은 계속 흘러가고 저마다의 속도로 사람들은 살아간다.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설렘을 주는 사람은 오롯한 자신이다.
낯선 곳을 향하고, 후기를 남기고, 선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여유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다가올 봄을 기대하는 것보다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을 좋아해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춤추는 이수를 보기를 기대하면서.
겨울나기 이수 부산편은 설렘과 따뜻함으로 차분히 막을 내렸다.
나의 겨울도 나의 이상과 닮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