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중구 문화시설 방문 인증샷 이벤트 도장 깨기
도장 찍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평소에 도장 찍을 일은 드물다.
어릴 적 받고 싶었던 '참 잘했어요.' 도장을 제외하고 내 힘으로 찍은 도장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직장 생활하면서 체계가 있거나 은행이 아니면 평소에 도장 찍을 일은 계약하는 일뿐이다.
법적 소유와 책임을 제외한, 합법적인 도장 찍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소식에 눈이 번쩍 뜨인 것은 어쩌면 본능과도 같다.
서사가 길었다. 이제는 부산의 중구를 야무지게 누빌 시간이다.
부산디지털고 버스 정류장에 하차하면 영주동 오름길 모노레일을 만날 수 있다.
계단으로 가득한 동네가 생활권일 때 중요한 것은 때론 튼튼한 다리보다 복지시설이다.
최대 6인까지 탈 수 있는 모노레일에는 언제나 다리가 약한 어르신들로 가득하다.
물론 건장한 체격의 청년은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면서 박기종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서 만날 수 있었다.
부산 최초로 근대화 학교를 세우고 철도를 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 한 사람의 일생이 그곳에 있다.
무더위 쉼터로도 이용되는 박기종 기념관은 주택가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무료로 프린트기와 팩스를 이용할 수 있고, 관공서에 필요한 서류를 중구청 지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
입구에서 나를 맞이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여권처럼 생긴 스탬프 전용 수첩.
수집할 나의 조각이 또 하나 생긴 것 같아 설렌다.
무언가를 증명해 내고 인증받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옛날 사람일까.
부산 중구에서 기획한 찍고 보는 문화시설.
#금수현의음악살롱 #보수동책방골목문화회관 #광복로문화다락 #박기종기념관 #40계단기념관 #백산기념관
총 6개의 미션장소와 스탬프 찍는 공란, 그리고 준비된 한 줄 감상 공간.
이곳을 둘러보았을 때 나는 어떤 문장을 가지고 가게 될까.
기대감을 안고 이 공간, 박기종이란 사람을 천천히 알아보고자 한다.
하급 통역관을 시작으로 정부에서 파견한 수신사에 속하게 되었고, 조선보다 빠르게 근대화를 받아들인 일본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잡은 사람, 그가 바로 박기종이다.
부산에서 최초로 학교를 지어 교육에 힘썼고, 당시 세워진 개성학교는 지금의 봉래초등학교, 개성중학교, 개성고등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항과 하단포를 잇는 부하철도를 개설하려 했지만, 일제의 핍박과 방해에 실패하였고, 민족이 중심이 된 철도를 건설하고자 노력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게 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시도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생전에 그는 민족이 주축이 된 근대화 시설을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그의 사위였던 윤상은이 [구포저축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그의 못다 한 꿈을 이루어준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정세가 급변하던 시기. 철저한 신분제 사회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워 남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계기. 시대의 흐름을 읽던 혜안은 그의 행보를 선구자처럼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길은 일제의 수마에 놓이게 되었다.
그가 한반도에 놓으려던 철도는 일제의 소유가 되어 노동력과 농산품, 기성품 등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수탈당하는 대상이 되었다.
또한 그가 조선에서 3번째, 부산에서 첫 번째로 세운 근대화 학교는 일본어로만 교육하는 기관이 되었고, 그 시절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체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교육은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한글로만 교육을 하는 것이 금기된 시기에 그는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닐까.
진짜를 알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추측(주장)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할만한 그럴듯한 설득력이 진실에 보다 가까울 뿐이다.
박기종 기념관을 한층 한층 올라가다 보면 부산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산을 깎아 만든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형태, 그 속엔 시련과 아픔이 가득할지라도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살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밤에 몰래 집을 지었던 곳.
선박에서 나온 판자를 얼기설기 세워 만들었던 집터가 어느새 그럴듯한 주택가로 변모한 것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인간의 모습을 닮아있다.
아랫집 지붕이 내 집 앞마당이 되는 주거형태는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함께 만들어 온 지금의 모습이 새삼 대견하다.
그저 아름다운 것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듣는 일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라지게 만든다.
아담하지만 꽉 찬 이야기가 있었던 박기종 기념관을 나와 다음 스탬프 찍으러 가는 길이 꽤 험난하다.
밤새 내린 비는 온 땅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즐비하게 늘어선 계단을 보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땀이 유전처럼 샘솟는다.
단지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진땀이 나는 이 길을 많은 이들이 오고 갔을 것이다.
살아있는 길을 잠시 빌려 쓰는 인간은 그저 다녀간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골목이 주는 분위기와 오래된 종이에서 나는 세월의 진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보수동 책방골목문화관. 자주 지나던 길목에서 간판만 보았던 곳을 스탬프를 찍기 위해 입성한다.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기는 때론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그 계기로 인해 자신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을 참 좋아한다. 오늘 도전하기 참 잘했어.
작은 건물이지만 7층의 건물이 알차게 운영되고 있다.
1층은 관광안내소, 2층은 생활관, 3층은 역사관. 4층은 이벤트홀, 5층은 사무실. 6층과 7층은 작은 도서관으로 이용 중이다.
모든 곳을 다 보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동선이동이 중요하다. 가장 높은 층에 내려서 하나씩 맛보며 내려가기를 선택한다.
작은 도서관. 크기가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도서관.
책이음 서비스를 통해 이곳에서 대출한 도서를 부산의 다른 도서관에 반납해도 좋다.
이용객이 적어 비교적 조용하고 편하게 이용하기 좋다. 남포동에도 나만의 놀이터가 수집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나는 이런 고요하고 아지트 같은 공간을 참 좋아한다.
도서관 내의 계단을 올라가면 어린이 도서들이 즐비해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천천히 책표지를 보다가 금연을 주제로 한 책에 멈춰 섰다.
애초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지만, 거리에는 애연인들이 많으므로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펴본다.
어떤 계기로 담배를 피우게 되는지, 담배를 피우는 이유가 비교적 상세하게 나와있다.
연초와 전자담배. 담배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애연인과 접촉하는 것만으로 벌어지는 작용에 대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책은 역시 꽤 볼만하다. 아마 전국의 학교에 배포되어 있을 법한 내용들이지만 그림체를 더 사랑스럽게 한다면 많은 아이들, 어른들이 함께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을 나올 때 책 한 권 다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보기에 수월한 책이다.
한 권의 책을 독파할 때마다 배부름이 차오른다.
든든하게 계단 하나하나를 내려올 때마다 당황스러움이 피어난다.
5층 사무실은 당연히 패스, 4층 이벤트홀은 특별한 이벤트 없음으로 잠김.
3층 역사관은 굳게 잠김. 사무실에 여쭤보니 특별전시가 끝나 잠가놓았다는 전언.
2층 생활관에 당도해서야 보수동 책방 골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헛걸음을 해봐야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코스일까.
2층 생활관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그 덕분에 나는 조용히 보수동 책방골목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보수동의 역사가 흥미롭다.
해방을 준비하지 못한 일본인들이 가져가지 못한 짐 속의 책들, 갑자기 시작된 전쟁과 살기 위해 부랴부랴 피란길에 오른 사람들. 그들이 가져온 책들과 전쟁 속에서도 교육과 배움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의 노력.
미군들의 구조품에 섞여있던 책들은 귀한 교재가 되기도 했다.
휴전. 정치적 격변과 규제, 검열받는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1970년대는 보수동의 황금기. 교과서를 찾기 위해 많이도 보수동을 찾았다. 헌책이라도 구해야 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던 시절.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그때는 최선이었던 역사를 아직도 간직한 채 있다.
지금은 패드로 글을 읽고 쓸 수 있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보는 책이 더 맛있다.
까슬까슬한 질감, 누군가 읽었던 흔적이 보이는 펜으로 남긴 생각의 조각을 보는 재미. 헌책에서 느낄 수 있는 색다른 묘미는 읽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특권이다.
야무지게 둘러보고 스탬프를 찍으려 했지만, 2층에는 스탬프의 '스'도 없다.
1층 관광안내소에 가서 여쭈어보니 5층 사무실에 가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이라 다행이다. 당황과 짜증이 잠시 밀려왔지만 감정은 휘발될 뿐.
5층 사무실에는 직원 한 명이 전화를 받느라 응대가 늦었다. 감정은 휘발될 뿐이다.
굿즈를 구경하다가 겨우 전화응대를 마친 직원의 안내로 스탬프를 찍을 수 있었다.
꽤 쉽지 않은 스탬프 찍기였지만, 성공하였기에 만족이다.
스탬프를 찍기 위해 찾은 장소들이 하나 같이 지나쳐 다녔으면서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렇게 시야가 좁은 사람이다.
세모의 집. 이 특별한 집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나를 반길까.
백산 안희제. 그는 특별한 사람이다.
한학으로 시작한 학문이 양정의숙, 보성전문학교 졸업으로 교육의 필요성을 깨달아 직접 동래지역과 본인이 태어난 의령에 학교를 지어 민족 교육에 힘썼다. 계속되는 일제의 강압에 숙이기보다 본인이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을 일찍 정했던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백산상회를 열어 상업활동에 주를 이루는 듯했지만, 실제로 독립자금들을 모아 상해임시정부로 안전하게 보내는 일을 맡았다.
당시 최대부자로 알려진 최부자, 최준이 백산 선생에게 보낸 독립자금들이 온전하게 상해임시정부로 보내졌다는 사실에 감탄을 보냈을 정도다.
운영난에 시달리던 중외일보를 사들여 중앙일보로 바꾼 후, 독립을 향한 대중의 염원들을 담아내었다.
일제의 폭압은 계속되었고,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뒤에서 지지하는 역할을 맡기로 한다.
1930년대에는 만주로 넘어가 친교 하던 윤세복이 3대 주교로 있던 대종교에 입교한다.
종교가 창설된 시기가 일제시기였기에 종교활동이 어느새 독립운동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수상한 시절의 이야기다.
내가 믿고 의지하던 나라님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의해 폐위되었으며, 나라의 이름이 바뀌고 자유를 잃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희생해 나라를 위한 길을 걸었다.
평범하지 않은 길을 멋지게 해낸 사람의 발자취를 가만히 읽고만 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어두운 세상에서 종교는 때론 커다란 힘이 되어주기도 하는구나.
이렇게 알차게 삶을 살 수도 있구나.
자신의 재능을 역사에 길이 새길 수 있는 방법. 나를 알고 남을 위하는 삶을 산 사람.
백산 안희제는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다.
하루에 도장 4개를 찍는 일은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이곳을 오늘의 마지막 장소로 정한다.
40 계단문화관. 부산을 상징하는 40개의 계단.
1900년대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40 계단은 피란민들의 거주지와 해양 매립지를 잇는 산비탈에 조성되어 있다. 당시의 모습은 언제나 부산하고 사람들로 가득했다.
만남의 장소로 쉽게 정했던 40 계단. 보고 싶으면 찾아갔던 그곳. 물을 기르기 위해 몇 번이나 오르내렸던 그 계단. 선박에서 나온 나무판자 등을 가져와 얼기설기 지은 거주환경은 화재가 나기 일쑤였다.
한번 불이 치솟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큰 피해를 가져왔던 화재에도 사람들은 이곳에서 살아왔다.
시절의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한 계단은 여전히 말이 없다. 그저 상징처럼 제자리를 지킬 뿐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
목이 마르면 생수를 먹고, 찝찝하면 바로 샤워를 할 수도 있다. 배가 불러도 먹고 싶어서 더 먹는 시절을 살고 있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중구 문화시설을 돌아다니면서 부산의 역사를 한층 더 깊게 이해함과 더불어 개개인의 삶을 바라볼 수 있었다.
영웅의 역사만이 살아남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영웅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 것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며 안주하기보다, 나를 알고 나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더 좋다.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자신의 놀이터로 만드는 법이다.
하루에 다 돌아보기 위해 날림으로 짧게 보았지만, 다시 한번 더 방문하여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을 다짐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들려주는 가르침이 참 귀하다.
언제나 부족한 나이지만, 오늘만은 나의 하루를 인증하는 도장이 보다 선명해졌다.
야무지게 하루를 보낸 나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