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둥벌거숭숭이 Mar 26. 2024

나는 내 주근깨를 좋아했다

갑자기 주근깨와 안녕하게 된 사연은

나는 태생이 밝은 아이였다.

마치 신이 나를 만들 때 스스로를 외롭게 하지 않기 위한 용기를 한 움큼 부어준 것처럼.

외동의 시간이 채 2년이 되기도 전에 동생이 태어났을 때도 나는 외롭지 않았다.

아기인 동생을 챙기느라 내가 소외된 느낌이 들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나는 질투라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엄마만 돌아서면 동생을 꼬집고 깨물고, 끝없이 질투를 표현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엄마는 동생을 보호해야 했고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침을 먹고 나면 장난감 총을 메고 당당히 밖으로 나가 친구를 부지런히 사귀고, 그렇게 사귄 친구의 집에서 밥을 야무지게 챙겨 먹고, 날이 저물 즈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밖을 돌아다닌 나는 지저분한 몰골로 집어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 집 앞에 목욕탕집 사장님께서 목욕탕에 데려다 씻겨주곤 하셨다.

낯가림도 없고 밝은 아이였던 나는 가정에서의 부족한 사랑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채우고 다녔다.

집이 우울한 곳이라면 밖으로 나가면 되는 것이다.

안주하지 않는 법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학교란 곳은 더 즐거운 곳이었다.

대화가 통하는 친구들이 있고,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곳이고, 정해진 규율만 지킨다면 나의 자리를 온전하게 보장받는 곳이었다.

그래서 새벽같이 일어나 일찍 밥을 먹고 7시만 조금 넘으면 바로 학교로 가곤 했다.

재밌는 것이 천지였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았고 함께하는 즐거움을 배웠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하교하는 시간이었다.

3시면 해가 중천에 뜰 시간이었다.

멍하니 운동장 가쪽에 앉아서 멍하니 해를 바라보곤 했다.

해는 그 당시 나의 친구였고, 부모였고, 형제였다.

해를 바라보는 것만이 오롯이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의 나에겐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런 습관으로 인해 나에겐 어릴 때부터 얼굴에 자리 잡고 있는 주근깨가 있었다.

나는 이 주근깨가 좋았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달랐다.

주근깨만 없다면 깨끗한 피부일 텐데, 같이 병원에 가자.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었다.

내가 좋다는데 왜 자꾸 나를 바꾸려고 하는 걸까.

기회만 되면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했고 나는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그러다 결국 이날이 온 것이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하루였다.

혼자 살고 계시는 이모님이 한 분 계시다.

평생을 홀로 사셨기 때문에 가끔 필요한 것이 있을 때나, 도움을 필요로 할 땐 바로 나에게 연락이 온다.

환갑을 넘으신 나이시지만 배움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도전하는 자는 용감한 사람이다.

이번에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강의 듣기에 불편함이 있어서 도움을 요청하신 거였다.

그런 거라면 시간을 지체할 것 없이 바로 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자 아침만 먹고 부지런히 차를 몰아 울산으로 떠났다.

태블릿 pc를 구매할 예정이었으나, 휴대폰과 smartTV를 연결하는 법을 알려드리니, 문제는 금방 해결되었다.(smart view기능은 축복이다.)

특히 나갈 돈이 굳었다며 좋아하셨다.

뿌듯한 마음이 들 찰나, 다시 주근깨 공격이 갑자기 들어왔다.

피해 가기에는 문제해결에 시간이 너무 빨리 끝나버려서 시간이 남는 것이 문제였다.

서로 고집에 대해 언쟁을 하다가 이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려버렸다.

그렇게 병원 앞에 당도하게 된 것이다.

접수를 하니 바로 수건을 한 장 주신다.

접수하자마자 받은 수건 한 장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어떠한 설명이 별로 없다.

그냥 주근깨를 제거하러 왔고, 병원은 처음 방문이라는 사실만 듣고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라는 말 밖에 없었다.

의지 없이 병원에 앉아 있으니 병원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친 의사들, 바삐 움직이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생각보다 피부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모가 데려온 이 병원은 점 빼는 맛집 병원이라는 사실을.

점심시간이 다되어 도착을 했음에도 사람들이 많았고 나 또한 대기시간이 30분가량 되었다.

얼굴 전체에 크림을 도포하고 레이저를 얼굴 전체에 다 쏘아대었다.

얼굴뼈를 타고 올라오는 레이저에 저절로 얼굴이 움직였다.

내 살타는 냄새를 내가 맡다니, 정말 오묘한 경험이다.

주근깨를 제거하는 시간은 2분 정도 소요됐다.

얼굴 전체에 존재했던 주근깨를 지진 느낌은 한 마디로 말하면 얼굴이 찢어지는 느낌이다.

하루종일 얼굴이 화~했다.

결국 이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나는 오늘 이모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여기 왔을 뿐인데 갑자기 주근깨를 제거해 버렸네.

한 달 후에 다시 병원 방문을 하라는 말을 듣고서야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과연 내가 다시 올까?

다음의 나에게 결정을 미룬다.

일단 너무 아파서 오늘은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치과 갈 때 돈가스 먹으러 가자고 꼬시는 학부형처럼, 이모는 맛있는 식사를 하자고 했다.

나는 평생 내가 가지고 있었던 주근깨를 잃은 날이었기 때문에 맛있는 식사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전에 한 번 먹었던 냉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없던 식욕에 비해 맛있게 먹었던 회냉면과 고기만두

메뉴선택이 탁월했던 것 같다.

회냉면의 회는 쫄깃하고 감칠맛이 좋았다.

시원하고 매콤 달콤한 양념 맛에 꿀떡꿀떡 잘 넘어갔다.

입 안에 매운맛이 감돌 때 안정을 주는 고기만두의 포슬포슬한 식감은 금상첨화였다.

뜻밖의 감동적인 맛이었다.

차분했던 마음의 기운이 서서히 차올랐다.

3월의 냉면집은 손님들이 적었지만, 그 맛은 전성기와 똑같았다.

맛집에 왔구나.

울산 언양의 서울칡냉면 흥하세요

마음이 우울할 때 회냉면과 고기만두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하다.

우울하다가 또 금방 미소 짓는다.

다행히 오늘은 날이 흐려서, 해를 안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얼굴피부가 레이저로 화상을 입어서 아플 수도 있었는데 날씨마저 도와주는 듯했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아서 금방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삶은 늘 예측불가하다.

지금 당장도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확언할 수 없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야 하는구나.

언쟁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니 모든 것이 물 흘러가듯 유영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드럽게 세수하고 보습에 신경 쓰는 것.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겠지.

빼앗긴 나의 주근깨는 옅어지겠지만, 어린 날의 나는 해를 사랑했고, 지금도 해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오늘도 하늘에서 비는 내리지만, 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내일은 또 날이 맑겠지.

작가의 이전글 용의 해에 용두산에 가는 것은 옳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