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회 연제 아르미 아카데미 큰 별 최태성 선생님 강연후기
부자가 되고 싶다.
여유로운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부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그렇게 태어나느냐, 만들어 나가느냐.
이 난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갖고 싶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부자의 길.
특별한 강의가 있는 그곳으로 떠난다.
오랜만에 나들이다.
평소와 같이 움직였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출발시간은 가는 동안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금요일 저녁의 도로는 차들로 가득하다.
거북이보다도 느리게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시계만 바라볼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롯이 강의를 보기 위해 휴일의 날로 정했음에도, 약속시간을 맞추지 못한 스스로의 멍청함에 갑갑함을 느낄 뿐이다.
몇 번이나 포기할까 하는 마음이 솟구쳤지만, 그래도 계획한 일은 해보자.
시간이 늦어서 강의실에 못 들어간다면 문 앞에서라도 이야기를 듣는 성의라도 보이자.
연제구청 구민홀에 도착한 시간은 7시 15분.
다행히 문을 열어주셨고, 정해진 나의 자리는 맨 끝자리.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역사 선생님이 들려주는 부자의 마음, 부자의 세계를 듣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모였다.
열성적인 뒤통수들에 놀랐다가, 최태성 강사님의 유튜브채널 소개가 끝나가는 것을 보며 안도했다.
중도포기하지 않길 잘했어. 그렇게 나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안도감과 허탈감이 동시에 피어오른다.
감정의 수렁에 빠지기 전에 곧 강의가 시작된다.
열정적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되어야지.
숨을 고르면서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조선에서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지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살았던 부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 부분을 장식한 그 이름은 김갑순. 처음 듣는 이름이다.
관노에서 시작해 종 2품의 품계까지 오른 정치가이자 대부호로 명성을 떨쳤던 사람이다.
어릴 적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가 국밥장사로 가족들을 보필할 때 맏이였던 갑순은 관노로서 요강을 관리하면서 원님 엉덩이 시릴까 품에 안고 시간에 맞춰 내놓는 등의 열의로 이미 윗분들의 마음을 사놓았다.
자신이 가야 할 길과 처세술에 대해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은 기민하게 움직여 남들보다 빠르게 성공을 쟁취한다.
하급관료에서 공주군수, 한일병합 직전에는 종 2품의 자리까지 오른 후 관직에서 물러난다.
관직 생활 중 땅 투기와 탈세로 대전 땅의 40%가 김갑순의 소유였을 만큼 강한 부를 축적한다.
악덕해 보이지만, 근면 성실함과 자신의 가치를 높인 김갑순의 행적이 탐난다.
악인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면 기꺼이 수긍하면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 취한다.
옛말에 부자는 3대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김갑순은 그 부를 자손들에게 물려주기도 전에 스스로 자멸하고 만다.
해방과 임시정부의 정책, 토지와 화폐개혁으로 인해 많은 재산을 잃었다.
과도한 욕심이 그의 앞길을 막았고 온몸으로 다 잡을 수 없었던 부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영민함과 부지런함으로 부자의 기회를 얻었지만, 영원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의 기억에조차 잊힌 공주부자 김갑순.
혼자만 잘 살기 위해 나라의 존위를 외면했던 한 사람의 말로가 씁쓸하게 와닿는다.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자를 유지해 온 집안. 경주 최부자댁 이야기.
대문에 걸려있는 현판에 적힌 [대우헌]. 대단한 바보가 사는 집.
최부자댁에 사는 사람들이 늘 볼 수 있는 자리에서 바보로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글이다.
왜 바보여야 하는가.
관직과 부를 축적하는 데에 욕심을 부리지 말며, 주변의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주변 100리는 지금 말하면 40km 근방에 굶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관용의 마음이다.
경주를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집과 밥을 조건 없이 제공할 것.
그로 인해 전국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최부자 댁에는 손님들을 위한 소반이 500개가 늘 준비되어 있었다고 한다.
여유롭게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마음이 궁금하다.
덜 가지는 것보다 나눔의 가치를 알고 실천하는 바보의 삶을 지향하는 것.
자신이 얼마나 가졌는지, 얼마나 똑똑한지 티 낼 필요가 없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부족한 사람들의 마음과 배를 채워주라는 마음이 최부자댁이 말하는 바보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최부자댁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겸손과 절제, 나눔이 담겨있다.
이 중 하나만이라도 실천한다면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다.
욕심부리는 사람에게 절제와 나눔이 없고, 가진 사람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겸손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 내가 실천하고 있는 것은 절제 밖에 없지만, 나눔과 겸손을 가져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는다.
12대에 이를 정도로 오래도록 부를 유지해 왔던 최부자댁은 최준에 이르러서 부자의 위치에서 내려오게 된다.
하지만 최부자댁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대기근에 이르러 민초들이 농민봉기를 일으켜 가진 자,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집으로 약탈을 하러 갈 때조차도 최부자댁 담을 에워싸 보호하고, 일제경찰이 찾아와도 최부자댁에 관해서는 증언을 거부할 정도로 마음 깊이 감사함을 표현한다.
진짜 부자는 부를 쌓는 능력이 아니라, 대하는 태도에서 결정되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부를 축적한 방법,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이 달랐던 부자 두 사람이다.
최태성 선생님은 왜 이 두 사람을 선택했을까.
관노부터 시작해 종 2품까지 관직에 오른 사람.
세상의 이치를 빨리 터득해 오롯이 앞만 보고 달렸던 사람에게 미래는 없었다.
위태로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계인사들과 사돈인척관계를 맺어 부인을 10명이나 두었던 김갑순.
오롯이 권력과 부만 쫓았던 그의 말로는 모두가 알고 있다.
그의 존재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
반대로 부자에서 시작했지만 하나도 남김없이 떠나간 한 사람.
독립자금을 구하러 온 이에게 기꺼이 기부하면서 후원금 내역을 쫓아가지 않았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보다 큰 마음이 지금까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런 그에게 걱정이란 존재했을까.
나라 잃는데 부자가 무슨 소용이랴.
경건한 마음이지만, 주위에서 지지해주지 않았다면 힘들 일들이다.
오래도록 겸손하고, 자제심을 가지고 나눌 수 있는 여유를 알려주었던 최부자 선조들의 가르침과 실행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모두 부자가 되고 싶다.
안 유명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고 싶다.
하지만 정말 부자가 된다면 상상하던 대로 여유롭게 살 수 있을까.
더 가지고 싶지 않을까. 나보다 더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지는 않을까.
돈에 휘둘리는 사람이 될까, 돈을 정복하는 사람이 될까.
그래도 지금보다 돈 걱정을 덜하면서 확고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상상만 해본다.
나는 어떤 부자가 되고 싶은가.
가격에 연연하지 않는, 이리저리 재지 않고 마음껏 소비하고 싶다.
가뜩이나 걱정할 거리가 많은 세상에서 돈걱정만은 안 하고 싶다.
가진 것을 뽐내기보다 소유한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고 싶다.
받는 것에 감동하고 주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이고 싶다.
혼자 만족하기보다 함께 즐기는 사람이고 싶다.
걱정보다 여유를 누리는 사람이고 싶다.
조건 없이 나를 쏟아내고 개운하게 잠들고 싶다.
걱정부자보다 바보소리 듣는 부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