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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Jun 07. 2024

나도 나에게 다른 이름을 주고 싶다

문가영 산문집 [파타]

도서관에 빌린 책이 쌓였다.

도서관 투어를 하다 보면 읽고 싶은 책이 쌓인다.

괜히 책 욕심만 부렸다.

겨우겨우 읽고 한꺼번에 반납하면 무거우니까, 이번에 2권을 따로 반납하기로 했다.

날이 흐렸다가 맑았다가 한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한 대비는 무장뿐이다.

한 여름에도 긴팔, 긴바지 입는 나는 별로 신경 쓸 것이 없다.

늘 그렇듯이 오늘도 검정 후드에 검정 운동복 바지를 입고 검정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책을 반납만 하려고 했지만, 도서관에 오면 책을 봐야 한다.

그냥 이유가 없다.

신작도서 코너에서 기웃거리다가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배우 문가영 씨가 쓴 [파타]라는 책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 생활을 하면서 책을 많이 읽었다는 인터뷰를 종종 보곤 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의 글은 늘 흥미롭다.

설렘을 갖고 책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파타]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이다.

용기가 없는 날, 불현듯 나타난다.

파타는 어린 시절부터 존재했다.

언니인 카리의 지시에 부모님 앞에서 연기를 하기도 하고 축하받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인종들 사이에서는 흔히 차별받기 쉽다.

건강한 마음을 가진 부모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스스로 방법을 찾고 바른길로 가기를 소망한다.

이 사람의 다부짐이 가족으로 인한 든든함, 비빌언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이었다.

아버지에게는 다정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어머니에게는 경쟁심과 책임감, 언니에게는 존재의 이유를 찾았다는 작가의 말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고요를 찾는 방법을 가르쳐준 언니는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알려줬다.

밀란쿤데라를 모르면 대화를 하기 싫다는 파타.

나는 밀란쿤데라를 알고 있을까?

내 책장에서 발견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다행히 내 책장에 존재한 밀란쿤데라의 책을 보았다.

재밌게 읽었지만, 작가에 대해 금방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 이번에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다 읽고 보는 내 첫 번째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에 눈멀어 나를 챙기지 못하고, 나의 최선이 최선이 아니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는, 아주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런 순간들이 종종 있다.

그래도 작가와 밀란쿤데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내가 가진 지식이 얕다.

읽으면서 다시 반성하게 됐다.

좋은 독서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계속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일기는 매일 쓰지만, 독서일지는 작성하지 않았다.

새로운 노트를 사야겠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좋은 습관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산문집은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상상인지, 현실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내가 쓰는 글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오로지 나만 아는 것이다.

보는 사람에 대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작가의 힘이다.

갑자기 외로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때, 친구에게 전화해서 "짝사랑하고 싶다!"

40분의 지루한 시간이 4분처럼 느껴지는 순간.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다.

같이 있어도 혼자인 것만 같은 기분.

갑자기 누군가를 이유 없이 사랑하고 싶은 기분.

내 전부를 쏟아붓고 미련 없이 돌아서고 싶은 기분.

입밖에 내뱉는 것만으로도 이미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도 즐겁게 나눌 수 있는 게 친구와의 대화, 혹은 글이 주는 힘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이 아니지만 한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 재밌는 산문집이었다.

좋아하는 밀크티도 먹으면 사라진다

맞는 말이다.

좋아하는 감정은 익숙함에 속아 잊히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은 먹어 없어진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애정을 쏟으면 받아주는 사람이 있고, 부담스러워 멀어지는 사람도 있다.

오래오래 내 곁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지는 문장이다.

시절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적당한 거리감과 서로를 향한 신뢰감이 아닐까.

짧은 문장 하나하나가 긴 여운을 주었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학교 다닐 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전학 가고, 이사 가고, 직장을 그만두는 때.

나는 사람을 함부로 싫어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결이 맞지 않을 뿐이지,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싫어하기보다는 무관심하자로 결론을 지은 적이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데, 그 생각도 맞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더 흥미롭고 재밌다.


오늘은 성공한 날이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대여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왔다.

그냥 한 권을 순조롭게 읽고 왔을 뿐이다.

파타.

나에게도 용기가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다른 이름을 붙여 또 다른 내가 되어 소심한 나를 대변하는 대담한 내가 되어 나를 지켜줘야겠다.

내 존재의 이유를 타인에게서 찾지 말고 나에게서 찾자.

내가 그 사람과 다르다고 해서 부럽다,에서 끝나지 말고 더 멋진 사람이 되도록 나를 만들어야지.

그래서 또 다른 내 이름은 뭐로 할까.

좋아하는 배우 이름을 붙여도 좋겠다.

알리시아 비칸데르? 캐서린 제타 존스? 케이트 블란쳇?

그래 정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

그래서 당신에게도 자신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있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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