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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춘식 May 25. 2020

젊어 고생은 젊어서 하자

인생 여행 이야기


여행은 여행자의 시야와 생각을 넓혀줍니다. 새로운 세상에 자신을 던져보세요


여행책을 보면 흔히 하는 말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을 겪으니 대처 능력도 키워지고 일상에서 벗어나니 힐링도 된다. 휴식을 취한다면 에너지도 재충전할 수 있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면서 시야도 넓어지고 평소 하고 싶었던 바를 성취하기에 만족감도 높아진다. 이상 여행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 "어떻게 여행을 할 건데?"라는 질문이다.


이전에 무전여행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굳이 돈을 안 쓰며 무전여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제의 글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 글을 보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맞는 말이라는 사람도 있는 한편, 무전여행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다. 모두 공감한다. 나 역시 무전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으로 글 쓴 건 아니니까. 하나 확실한 건 부족한 여행은 그만큼 힘들다. 고생을 사서 하는 게 여행인데 거기에 고생을 또 더하는 셈이다.


여행 내내 함께 했던 가방 / 이하 촬영 포카텔로


소위 '개고생'을 했던 6년 전 여행 얘기를 꺼내려한다. 확실한 건 고생이 될수록 여행의 여정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었던 기억은 각색돼 좋은 기억만 남게 된다. 2014년 2월 마지막 날에 시작된 여정은 꽤 순조로웠다. 원래 계획은 더블린에서 비행기를 타고 세비야로 넘어가 그라나다, 코르도바, 세비야를 둘러보고 배를 통해 모로코 탕헤르로 가는 여정이었다. 사막을 투어한 후 모로코 수도 라바트로 올 예정이었다. 물론 중간에 마라케시도 들렀다가 가고 싶었다. 하지만 4월 세비야에서 하는 행사 때문에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 여행을 안 가려고 했는데 룸메가 나를 말리며 버스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권했다. 그 선택이 고행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주간 7개 국가 8개 도시를 둘러볼 계획을 잡고 15일 티켓을 끊었다. 사실 유로 버스 티켓을 끊는 거부터 고난이었다. 티켓을 런던 출발로 예매해서 더블린 출발로 고치는데만 10일이 넘게 걸렸던 터라 여행에서 고생을 안 하려고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웠다. 대부분 걸으려고 했기에 목적지 A에서 B까지 어떤 길을 통해 가는지 로드뷰로 미리 다 봐 뒀다. 걱정도 됐지만 기대가 더 컸다. 완벽하게 계획을 세웠고 60L짜리 가방을 들고 행군할만한 체력도 갖췄는 데다가 동선까지 섭렵했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일정은 나를 배반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최소한 4일째 일정인 체코 프라하까지는 그랬다. 


판테온 앞에서


프라하에서 로마까지 가는 시간이 단일 버스 탑승시간 중에 가장 길었다. 22시간을 버스에서만 보내야 하는 일정이었다. 다행히도 중간에 버릇을 갈아타면 되기에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그 버스가 매진이 돼버렸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회사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하루라도 일정이 어긋나면 뒤의 일정도 망가지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때 돈이 넉넉하게 없었다면 아마 프라하에서 더블린으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후에도 돌발상황은 계속 생겼다. 실제 여행은 내 완벽한 계획보다 스펙터클했지만 그 빈자리를 여유 있는 시간과 돈이 메워줬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됐잖아?"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맞다. 좋은 경험이었다. 다만 다시는 그런 고생을 하며 여행을 다니고 싶진 않다. 가끔 여행을 등산과 비교하는 사람들은 "고생 끝에 도착한 목적지에서 환희를 느낄 수 있다"라고 말하지만 여행은 등산과 다르다. 몸을 힘들게 만들면서 하는 여행도 나름의 묘미는 있겠지만 국토순례나 성지순례 같은 것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는다. 


피곤하면 생각보다 보고 싶은 것을 봐도 감흥이 적다. 여행의 중반 프랑스 파리 외곽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평소 보고 싶었던 곳을 보면서 파리 도심을 가로질렀다. 날씨까지 맑아 기분까지 좋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걷다 보니 힘에 부쳤다. 결국 샹젤리제의 점등시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임시숙소를 찾았다. 반면 다음날 루브르 투어는 힘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 전날 침대서 쉬기도 했고 20kg에 육박하던 짐을 박물관 카운터에 맡기고 구경해서 더 많이, 재밌게 관람할 수 있었다.


가방이 없었다면 더 편한 여행을 했을 것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고 하지만 굳이 고생을 살 필요가 있을까 싶다. 굳이 구매하지 않아도 여행에서는 항상 고난이 자리하고 있다. 자신의 영어 실력이 일천하다면 입국심사부터 숨이 턱 하고 막힐 때니까. 무전여행도, 금전적으로 부족한 여행도 다 좋다. 그걸 고생으로 여기면서 폐를 끼치는 일을 하진 않았으면 한다. 가끔 고생을 내가 한다고 착각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돈 없이 여행을 떠나 일하면서 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낯선 이에게 일을 시켜주는 사람도 적을뿐더러 일을 구한다고 하더라도 돈을 제대로 받기 힘들다. 


시청역이나 서울역을 보면 외국인 여행자들이 사진을 파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세상 꼴불견이다. 자신들은 낭만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전혀 상관없는 사진을 파며 연명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공정여행'이라는 화두가 여행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돈 한 푼 안 쓰고 해당 국가의 문화와 생활을 즐기겠다는 생각은 지극히 이기적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빡센 여행이 몸에 맞지 않는다. 참고로 유럽여행을 하고 한국에 온 후 일자목 진단을 받았다. 과도하게 무거운 가방을 메고 무리하게 돌아다닌 탓에 몸이 상하고 말았다. 적당히 쉬어야만 더 많은 걸 즐기고 받아들일 수 있다. 여행은 쉼이자 환기 차원에서 가는 거지 노동이 되면 곤란하다. 젊어서 고생은 젊어서 하는 걸로 끝냈으면 한다. 나이가 들면 나이 든 대로 고생할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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