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여행 이야기
지금와서 사진첩을 다시 보면 프라하에서의 순간이 가장 여유러움을 선사해준다.
여행에 대한 로망은 아무래도 자유 여행이 아닌가 싶다. 20대 때 좋은 기회로 부모님과 패키지 여행을 여러 번 다녀올 수 있었다. 덕분에 그리스, 터키, 볼리비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등... 약 11개국을 다녀온 거 같다.
그런데 부모님 연배도 있으셔 항상 패키지 여행으로 다녔다. 패키지 여행의 장점은 내가 몰랐던 수많은 명소를 알아서 가는 거지만 그만큼 선택하는 재미가 떨어진다. 특히 빠듯한 일정에 맞춰 매일 이동시간만 4시간이 넘을 때 내가 버스 타러 온 건지 여행하러 온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많은 국가를 다녀온 경험이 있어 더이상 여행에 미련이 없었다. 그러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갑작스레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고, 언제 또 일을 시작할 지 몰라 비행기 티켓을 끊게 됐다. 때는 2017년, 9월로 넘어가던 시점! 아무리 봐도 지금만큼 한국인이 적고 날씨 좋을 시즌이 없을 거 같았다.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출발 3일 전 비행기 티켓, 2일 전 숙소를 잡아 정신없이 동유럽으로 날아갔다. 덕분에 몸이 고단하고 신경이 날카로웠지만 무계획 여행 덕에 세 가지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됐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부다페스트로 날아가며 급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이 몰려왔다. 12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고 도착한 날, 잠도 두 시간 밖에 못 자 첫날부터 피곤한 채 숙소를 나섰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그 날이 10박 11일 중 가장 추억에 남는 하루가 됐다.
아침부터 가까운 박물관을 구경했는데 어느 외국인이 영어 해설을 신청하는게 보였다. 나도 기왕이면 듣는게 좋겠다 싶어 신청했고 그 사람과 나, 둘만 해설을 들었다. 헝가리 해설가가 하는 영어는 60%를 못알아 듣겠더라..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 친구가 나에게 '헝가리안 영어 못알아듣겠어'하며 소곤댔다. 마지막 코스까지 듣고나서 용기를 내 그 친구와 대화를 이어갔다. 브라질에서 왔다는 R(가명)은 산타클로스 같은 푸근함을 지닌 친구였다.
같이 전시장을 돌며 서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페인의 어느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다는 R은 언어학 박사였다. 헝가리는 일주일동안 놀러왔다고 한다. 나도 마침 석사 과정 중이어서 각자의 전공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논문 쓰는 얘기가 공통의 관심사가 될 수 있었다. 곧이어 R은 한국에 대해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를 나라', '북한', 'K-POP' 등의 키워드로 말했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외국인 친구들만 만나왔던 터라 일반적인 외국인의 생각은 처음 듣게 됐다. 한국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많지만 위험한 나라로 인식하는게 가장 흥미로웠다.
아무튼 R과 점심을 함께 먹고 가보고 싶었던 부다성도 가며 종일 같이 돌아다녔다. 그렇게 한참 다니다 문득 R의 검은 티셔츠가 하얀 먼지로 덮여있는 걸 보았다. 뭐지?하고 넘겼는데 R이 턱이 간지러워 긁을 때마다 눈꽃처럼 각질이 떨어지고 있었다....따흑....
턱 비듬(?)은 처음 봐서 충격이었다. R에게 말도 못하고 저녁에 한국 사람들과 투어 약속을 잡았기에 황급히 헤어지려 했다. 그래도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R과 마지막까지 잘 얘기했다. R 역시 이런 추억은 처음이라며 아쉬워했고 악수하려했는데 난 바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동양 스타일). 그리고 트램에 올라타 창 밖으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R의 손에 묻은 각질이 두려워 악수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편견을 갖고 R을 보았다. 씻지 않아서 그런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우리나라보다 건조한 곳에 지내서 그 정도 각질은 생길 수 있었다. R은 착하고 순수한 친구였는데 좋은 시간 끝에 내가 더 아름다운 마무리를 짓진 못한 거 같았다. 아쉬움이 남은 끝인사 후, 남은 날동안 또다시 그런 착하고 순한 친구를 만날 수 없었고 R은 지금까지 가장 즐겁게 동행했던 친구로 남아있다. 언젠가 R을 만나게 되면 그땐 꼭 악수를 해야지..ㅠ
오스트리아에서의 숙소는 따로 찾아보지 않고 친한 언니가 추천한 곳으로 갔다. 빈에 가는 것보다 그 숙소를 가기 위해 다시 빈을 방문하고 싶다던 말을 듣고 바로 예약했다. 그곳이 바로 여기!
시내 관광지에서 트램으로 20분 떨어진 이 숙소는 예술가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My 2nd home이라는 이름 그대로 내 두 번째 집 같은 분위기였다. 도착하자마자 부부의 귀여운 아이들이 나를 반겼고, 사랑스러운 오스트리아 가족의 모습을 여감없이 보여줬다. 남편은 벽에 걸린 지도를 보여주면서 가볼만한 곳도 추천해주었다. 시간이 부족해 모두 가보진 못했지만 그의 친절한 설명 덕에 빈 시내를 잘 돌아다닐 수 있었다.
주로 미술관과 박물관 위주로 다녔던 빈에서 숙소는 내게 충전소 같은 곳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NRG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노래 첫 가사처럼 우윳빛 커튼이 나풀거렸다. 창 밖을 보면 오스트리아인들이 아침을 준비하고 등교, 출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밤에는 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이 집은 유일하게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방음이 잘 되지 않는 것이었고, 덕분에 주인 가족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정확하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부는 아이들을 밤 9시쯤 재우는 듯했다. 아이들이 떠들고 버릇없이 굴더라도 혼내지 않고 시종일관 웃으며 대화했다. 우리네 같으면 격앙된 목소리로 또는 언성을 높일 만한 상황이었는데도 부부는 why? 하며 아이들의 생각을 묻고 이야기했다. 더 신기한 건 엄마 아빠의 사랑이 담긴 목소리에 아이들이 곧 조용해지고 착한 어린이가 되는 것이었다. 숙소에서 지내는 내내 부부의 천사같은 화법에 깜짝 놀랐다.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들 때, 벽 너머로 들리는 그들의 이야기가 나도 마치 가족 구성원이 된 것처럼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훌륭한 가정교육의 예까지 볼 수 있었던 오스트리아에서 에어비앤비의 진정한 묘미를 느끼고 왔다.
아름다운 곳을 여유있는 마음으로 보면 풍경이 더할나위 없이 눈부시단 걸 알게 됐다. 마지막 국가인 체코, 프라하에서는 유럽이 가진 특유의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숙소에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노을을 보았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에서 살다보니 이렇게 너른 대지 너머 빠알간 노을을 본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비도 와서 노을빛과 어두컴컴한 구름의 조합이 놀라운 풍경을 펼쳤다. 아마 이런 풍경이 시시각각 유럽 대지에 펼쳐졌기에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생겼지 않았을까? 싶었다.
프라하성을 보러 블타바 강 옆을 거니는데 이런 놀이기구가 있었다. 어른이들이 거대한 풍선 속에서 앞뒤로 엎어지며 즐겁게 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국내에도 이런 기구가 많은데 당시에는 난생 처음 보는 놀이기구였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와 틈날 때마다 이곳에 와서 사람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했다.
여유가 가득한 프라하는 다른 도시 대비 압도적인 장소가 눈에 띄지 않았다. 한국인들도 워낙 많았기에 외국에 온 기분도 줄어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눈앞에 평화로운 모습이 나타났고 다시 사진첩을 볼 때마다 프라하에서의 시간이 가장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닌 탓에 한국에 도착하니 발목 인대가 늘어나있었다.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며 고생했지만 아무 계획없이 하루하루를 보낸게 큰 추억으로 남았다. 사실 와이파이도 워낙 잘 터졌고, 네이버랑 구글지도를 보며 돌아다녔기에 한국에서 맛집, 카페 찾듯 해외에서도 좋은 곳은 바로바로 갈 수 있었다. 그래도 계획없이 다니니 설령 맛집이 문닫아도 그 옆 식당에 미련없이 들어가 먹는 재미도 느꼈다.
언젠가 또 기회가 되면 훌쩍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말한마디도 못 걸 거 같은 외국인과 하루종일 동행하고, 소소한 가족의 일상에 감격하고, 스스로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도 가졌지만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해 뜻깊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