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맞선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 2
지난번 '사랑에 빠져야 한다면 사랑할 수 있을까' 글을 통해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는 이들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전 글에서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동정 어린 시선으로 봤다면 오늘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점과 연애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한번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보려고 한다.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는 목적이 결혼이든, 유명세든, 홍보든 간에 그들은 악플과 역풍을 감수하고 나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최선이 긍정적 결과를 나타낼지, 부정적인 영향을 줄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 몰입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수 박원 씨의 노래 '노력'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할 수도 있고, 다른 이의 환심을 사려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랑 자체를 위해 노력한다? 사랑을 노력한다? 하는 건 조금 이상하다. 그런데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는 이들은 말 그대로 '사랑을 노력한다'. 주어가 생략되어 있어 문장이 이상한 걸 수도 있지만 실제 저렇게 하고 있고 그래서 더 의아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사랑은 해야만 하는 걸까?
누군가 "사랑은 항상 해야 하는 겁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할 거다. 그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여기서 사랑을 하는 대상이 어디까지냐는 것이다. 홀로 사는 로빈슨 크루소 같은 이를 빼고 사회생활,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의 경우, 상대에 대한 존경과 호의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며 좀 더 나은 관계로 발전해간다.
사랑의 사전적인 정의를 보면 그 대상에 어떤 것이 들어가는지 알 수 있다. '이성(異性)의 상대에게 성적(性的)으로 이끌리는 상태', '부모, 스승, 신(神)이나 윗사람 ↔ 자식, 제자 등 아랫사람 사이의 존경이나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교환', '남을 돕고 이해하는 것', '가치 있는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일' 등으로 기술되어 있다. 여기에 포함되는 모든 대상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 '항상'에 근접한 시간 동안 무언가를 긍정적,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표현할만한 상태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연애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사랑은 처음 언급한 '이성'에 국한된 아주 폐쇄적인 의미의 사랑일 가능성이 크다.
사랑의 규격과 조건
MBC의 유명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전직 아이돌 그룹 씨스타 출신 배우 윤보라 씨는 결혼과 사랑, 이별에 관해 김희철 씨가 "사랑은 이별의 출발점인 거 같아요"라고 하자 "결혼하면 안 헤어지잖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MC 윤종신 씨는 옆에 있던 김국진 씨를 바라보며 "결혼해도 헤어질 수 있어요"이라며 모든 출연자가 한바탕 웃고 넘어간 적이 있다. 윤보라 씨의 말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대부분 사람들, 특히, 미혼인 사람들은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결혼이라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나름 적령기라는 시기에 들어오니 자연스럽게 결혼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무언가 완성하지 못한 난제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과 여, 여성과 남성의 만남, 20대나 30대의 만남,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고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이들의 데이트. 언젠가부터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동화 속 공주와 왕자를 그리는 모습은 더 강해졌다. '어차피 내가 연애를 하지 못할 테니 판타지라도 소비하자'는 일부 소비자들의 욕구와 이를 교묘하게 팔아치우는 방송사의 판매 욕구가 만나면서 '사랑'은 '결혼'과 '(잘 꾸며진) 연애'라는 하나의 공식과 정형화된 모습이 갖춰진 상품으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연애는 어느 시대, 사람, 환경을 막론하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 다만, 방송에서 정해진 기준과 평균점을 이미지를 구체적인 모습으로 구현하면서 이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은 연애를 '달성하기 어려운 것',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은 직업, 외모, 능력 등 소위 조건이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 역시 사랑, 특히 결혼으로 관계를 끝맺음해야 한다는 강박을 보여준다. "결혼하려고 나왔어요"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사람들. 그 모습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그 모습만이 '정상'으로 비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소위 '정상 연애'라고 불리는 생각에 잠식되면 연애하지 않는 나는 '비정상'이 되어버린다.
'행복하게, 결혼했답니다'가 아닌 '각자의 행복과 사랑'을 기원하며
정말 사랑의 끝은 결혼이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인 것일까? 현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비정상'은 아니다. 사랑은 노력해서 억지로 채워야 하는 미션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마음과 마음, 감정과 감정, 생각과 생각이 공유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소개팅을 하고 만남 어플을 설치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성,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회를 늘리는 것은 노력이 가능하고 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무조건 사랑을 해야 하고 결혼이라는 과제를 달성해야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는 주된 것과 부가적인 것이 바뀐 느낌이다. 형식적이나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사람에 따라 결혼을 떠올리거나 사랑을 계속 이어가는 게 연애를 넘어 사랑하는 데 있어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지면서 사랑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이성과의 사랑을 통해 무언가를 완성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테지만 단순히 연애, 결혼이 인생의 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결혼은 단순한 감정으로 연결되는 게 아닌, 생활의 면이 강하다. 단순히 내 부족한 면을 채우기 위해, 마지막 퍼즐 하나를 맞추기 위해 연애와 결혼을 생각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8년 전, 아일랜드에서 일과 공부를 병행할 때 브라질에서 온 가브리엘라는 연애에 관해 "사랑을 하면 더 발전하는 거 같아. 내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으니까"라는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그게 연애든, 결혼이든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보다 타인의 모난 점까지 이해해 줄 정도로 좋아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긍정적인 사이가 되는 건 아닐까. 부족한 걸 채우려고 하는 건 이기적인 기대가 포함되어 있잖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럴수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원래 어려운 거다. 상대만큼 나 역시 마음의 변화와 불안함이 클 테니. 그래서 사랑하기를 포기하거나 굳이 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랑하는 데 있어 정상과 비정상은 없다. 그리고 그 모습도 정해져 있지 않다. 서로 바라보고 좋아하며 존경하고 이해하려는 관계만이 있을 뿐이다.
굳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눈다면 사랑하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재단하고 다양한 모습 대신 하나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하려는 일부의 시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