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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Mar 10. 2020

150만 원짜리 글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 중인 나는 현재 3개월째 백수다.

1월에 하루 일하고, 2월부터 바빠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바이러스 확산 여파로 모든 것이 취소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마당에 교육받는 것은 말이 안 되니 당연한 일이다.


부부가 함께 자영업을 하고 있다면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매달 월급 받는 남편이 있어서, 나는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냈다.


그러나 아무리 남편이 있다 해도 갑자기 버는 돈이 없어지니, 스스로가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심지어 가족이 외식을 하는데, 서빙하는 분이 빌지를 내 자리에 두고 가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밥을 다 먹고, 남편에게 빌지를 웃으며 건넨다. "잘 먹었어~ 여보"


'그래! 이럴 때 쉬어가는 거지! 지금 이 시간은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라는 생각을 마음 속으로 외치며 살아가는 나에게 딸아이는 비수를 꽂았다.


그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목욕만 하면, 물을 오래 틀어놓는 아이에게 나는 한 소리했다.

"다민아! 넌 진짜 비누칠도 안 하면서, 물을 계속 틀어놓고 목욕하는 건 잘못된 거야."

아이는 곧바로 "엄마도 물 맞는 거 좋아하잖아."

"엄마는 잠깐이지만, 너는 씻으러 들어가면 20분이 넘잖아. 20분이 넘는 시간의 물을 받으면 얼마나 많은지 아니? 우리나라 물 부족 국가야. 아껴 써야지! 그리고 뜨거운 물값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우리 집은 급탕비가 다른 집의 두배라고!!!!"


아이에게 확실하게 임팩트를 주고 싶던 나는 결국 한마디를 더했다. "이제부터 그렇게 오랫동안 씻으면 너 용돈에서 급탕비 만 원 빼고 줄 거야!!!"

아이는 "그런 게 어딨어? 그게 용돈이랑 무슨 상관이야?"라며 열을 냈지만, 나는 여유롭게 말했다.

"너는 돈을 벌지도 않고, 쓰기만 하면서 물도 막 쓰고 하니 용돈이라도 깎아야 되는 거 아니야?!"

"엄마! 나는 아직 학생이고 돈을 벌 수 없는 나이니까 돈을 못 버는 건 당연한 거잖아. 아껴 쓰라고만 하면 될 것을 왜 돈을 쓰기만 한다고 그래? 엄마도 마찬가지로 아빠가 벌어다 주는 돈 쓰기만 하잖아! 아빠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맨날 소파에 앉아서 먹고 놀면서 왜 그래?"


아~어찌 이리 얄밉게 말할까?

순수하고 착했던 내 딸은 누가 데려간 것인가?

나는 빨리 머리를 굴려 이 사태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엄마는 지금 논문 쓰고 있으니 어쩔 수 없거든!!!!"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멈췄어야 했는데.... 아이는 한마디 더 했다.

"엄마 논문 떨어졌잖아. 엄마는 성과를 못 냈잖아. 나는 비록 돈은 못 벌어도 성과는 내고 있어!"

아... 나는 이 말에 너무 멍해져서 아무 말도 못 했다.

남편은 심각해진 것을 알고는 "이다민! 너 선 넘었다. 이건 아니야!"

그제야 아이는 뭔가를 깨달은 듯 "엄마 미안해.... 엄마 내가 미안해"


물론 16살 아이에게, 아껴 쓰라고 말할 때 장난이라도 '돈도 못 벌고 쓰기만 하면서~'라고 말한 내 잘못이 크다.  말이  아니였는데...

나의 잘못된 말에 아이는 칼을 갈고 있다 덤벼들었나보다.


하지만... 내 신세가 너무 초라해졌다.

뭐랄까... 집에서 운동복 입고 이불을 어깨에 걸친 채 노트북을 하며 밥을 축내고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지난달부터 내 카드값을 계산해서 남편에게 "00000원 부족해... 돈 보내줘"라고 말해야 되는 내 상황.

남편이 나에게 돈을 안 번다고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왜 이리 작아지는 걸까...


돈도 없어 어디 외출도 안 하고, 머리도 자르지 않는 나에게 드디어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사건은 바로 지난 목요일이다.

나는 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주식과 관련된 부분을 보게 되었다.

OO주식이 흐름을 타 상승할 것이라는 것을 본 나는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 보험적금에 얼마가 있을까?' 빠르게 조회한 뒤 연차를 쓰고 낮잠을 자는 남편을 깨워

"여보! 나 보험에서 400만원 빼서 쓸 수 있어. 나 딱 한 번만 주식해보고 싶어. 나의 전 재산을 OO주식에 올인해줘."

남편은 진심이냐고 재차 물었고, 나는 확고하게 '고'임을 알려주었다.

남편 역시 나처럼 작은 돈을 가지고 주식을 하고 있어 계좌가 있었기에 바로 400만원어치 주식을 사주었다.

그런데... 그런데... 금요일 아침 9시 30분에 남편은 나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너 50만 원 벌고 싶댔지? 대박인 게 이게 말이야... 올랐어. 100만 원이나..."

이게 웬 말인가?
백수에게 주는 선물인가?
과감하게 나의 것을 투자한 용기의 보답인가!


난 너무 신이 났다. 나는 무슨 깡인지

여보! 여보 갖고 있는 주식 말짱 소용없는 건가 봐. 맨날 떨어지잖아. 그냥 갈아타!!! 사람들이 오빠 주식은 바보나 갖고 있는 거랬어! 빨리 갈아타!


남편은 늘 백만원이 마이너스였던 상태였다. 마누라의 한 방을 구경한 남편은 나를 신뢰하며 자신의 주식을 버리고 내 주식에 합세하였다.


주식이 올라 신이 난 나는 가족 모두를 이끌로 마트로 총출동했다.

'오늘은 내가 사고싶은 거 사야지'라는 마음으로 싼 과일이 아닌 당도 선별된 비싼 과일만 담고, 딸에게도 "먹고 싶은 거 담아!" 라며 오래간만에 맘껏 장을 봤다.


신기하게도 나는 갑작스럽게 당당해졌다.

목소리도 커졌다.

오빠! 내가 오빠꺼 다 메꿔줄게. 걱정 마!!!


남편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활용을 버리고, 청소를 열심히 했다.


그러나 나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세상은 원치 않았나 보다.

나의 주식들은 하루도 버티지 못한 채 쭈~~~~~~~~욱 내려가서 오빠의 돈도, 내 돈도 마이너스를 타기 시작했다.

오~~~~~~노~~~~~~~~~!!!!

나는 절망했다.

남편은 원래 마이너스 백이었지만, 나는 마이너스 150이 되었다.


역시 나 같은 개미는 하는 게 아니었어.
오전에 팔았어야 되는데...
다른 걸 샀었어야 되는데...
그냥 하지 말걸...
마트가서도 돈 조금만 쓸걸...


오만 생각이 다 들었고, 간만에 미용실에 간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남편은 머리를 깍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우울해하는 나에게

원래 다 그런 거야!
오빠가 1억  만드는 방법 가르쳐줘?
주식에 2억을 투자하면 돼! 그럼 1억을 잃고, 1억을 만들 수 있대.
 나야 작은 돈 그냥 오래 둘 목적으로 놔뒀건 거고... 넌 하지 마...
오빠도 다 정리할게. 속 끓이지 말고, 우리 맘 편하게 살자. 원래 그런 거야.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이 참 좋으면서도, 남편에게 고마웠다.

결혼해서 주구장창 돈을 벌면서도 '한 번도 우쭐거리지 않았던 남편'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젊은 시절이 생각나 메일을 열어보았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남편이 보낸 메일을 읽으니 마음이 시큰하다.

돈을 벌건, 성과를 내건, 집안일을 하든 간에...

가족이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는

서로 각자가 하는 일에 대한 존중과 감사였다는 것을 잊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연차를 쓰고 집에 있지만, 솔선수범하며 열심히 집안일을 했다.

남편이 다음 주부터 회사를 가도 남편이 오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아침부터 힘들게 일하고 온 남편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리고 남편이 돌아오면 따뜻하게 말해줘야지. "여보, 하루 내내 회사에서 일하느라 힘들었지? 아침부터 고생 많았어. 과일 뭐 줄까??"라며 말이다.


나는 결심을 한다.

내가 나중에 바빠지고, 돈을 많이 벌어도 절대로 목소리가 커지지 말아야지.


내 글을 읽은 남편의 한 마디!
글 소스 받는데 150만 원 들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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