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글 쓰는 여자야!"

by 이한나

1년에 3만 킬로미터씩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던 걸까? 기차 이동까지 생각하면 참 많이도 움직이며 살아왔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하는 강사라는 내 직업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뿐인가! 수많은 관중 앞에서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기도 힘들고, 매번 시험을 치르듯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 앞에 서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은 내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만은 나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의 고통이 가장 큰 것으로 느껴졌다.


이런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해방 통로였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블로그였지만, 하나하나 완성된 글이 내 기록에 쌓여가는 것을 보는 것은 내게 큰 성취감이었다. 그뿐이랴! 글을 쓰기 전 원활한 두뇌회전을 위해 스스로에게 제공하는 달콤한 디저트류와 커피 역시 또 하나의 행복이었다. 달디단 무언가를 입에서 오물오물하다 목구멍으로 다 넘어갈 때쯤 쌉싸름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입에 넣는 즐거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그렇게 당을 보충하고 사뿐히 노트북을 열어 머릿속에 담겨있는 생각을 자판기로 두드려가며 글을 써 내려가는 모습은 그 누구보다 고상하다고 느꼈다.


그때부터였을까? 글을 업으로 삼은 이들의 삶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지만 글은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칠 수 있다.

-글쓰기는 이동하지 않고 내가 편안한 곳에서 쓸 수 있다.

-대박 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좋아하는 글쓰기가 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내게 너무나도 큰 희망이었다.

나의 부푼 희망은 별 볼 일 없는 글들을 모아 책을 만드는 모험을 자행하게 만들었으나... 결과는 '망'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릴 때... 다시 말해 생각했던 만큼 뭐가 되지 않을 때 손쉽게 찾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포기'였다. 유난히 포기를 좋아하는 나는 글쓰기에게 수차례 '이별통보'를 했다.

그런데 글쓰기는 차디찬 이별에 굴하지 않고 세상 찌질하게 내게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글쓰기란 녀석은 자존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나는 한 번 더 생각해보겠다며 글쓰기의 손을 잡았고, 그렇게 연애시절 남편과 내 모습처럼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였다. 그런데... 만날 사람은 결국엔 만난다더니 나는 무슨 미련인지 결국 브런치라는 곳까지 와서 글쓰기를 하고 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다는 이곳 '브런치'

이곳에는 신기한 사람들이 많다.

1) 매일 글을 쓰는 작가(존경함+1)

2)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멋진 글을 완성하는 작가(부러움+1)

3)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작가(부러움+2)

4) 글로 돈버는 작가(부러움+100)


대단한 작가님들 틈에서 '우와 축하해요~', '너무 부럽습니다'라는 말로 마음을 전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래! 주눅 들지 말자!'며 마음을 고쳐먹고 훌륭한 작가님들을 따라 나도 무언가를 도전해볼까 하지만... 그것 또한 쉽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난 글쓰기에 영혼을 갈아넣을 사람은 아니었다.


결론: "에이씨~ 난 글렀어. 글은 아닌가 봐!"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마음에 착착 정리되는 몇 가지 생각들이 있었다.

1. 누가 내 글을 기다린다고~~~ 글을 쓰는 횟수에 부담 갖지 말자!

2. 뭐 대단한 글을 쓴다고~ 너무 잘 쓰려고 애쓰지 말고 편하게 쓰자!

3. 글을 쓰면 나를 돌아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정신건강에 좋다. 오직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글을 쓰자! 쓰면서 정신건강 찾고, 늙어서 치매 예방되면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어쩌면 나의 이런 태도가 '자기 계발'의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냥 나를 나대로 두고 싶다.

'계발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이 순간의 나도 훌륭해.'라며...

'그저 오늘 하루 내 마음 흔들리지 않게 꽉 붙잡고 산 것만으로도 충분한 계발이야.'라는 따스한 격려와 함께...


작가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바랐지만 내 기준을 낮춰본다.

'딸아이가 힘들고 지칠 때 읽고 싶은 글을 쓰는거야~ 가족의 끝없는 사랑과 추억들을 기억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글, 엄마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그런 글... 많은 이가 읽지 않아도 괜찮아...'


오래전 내 망작을 손에 쥐고 읽던 딸은 책을 다 읽은 뒤 내게 안겨 울었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거 같아."

내 글들이 책이 되지 않아도, 작가의 삶을 살지 못해도 고상한 글쓰기 취미는 절대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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