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경 작가님, 감사합니다.

by 이한나

눈치가 없는 나도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었다.

'이 사람 또 뭐가 서운할 걸까? 내가 뭘 잘못하기라도 했나?'

평소 나라는 캐릭터는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카톡도 보내고, 다시 전화를 걸어 마음을 풀어주려는 노력을 해봤을 것이다만... 그러기엔 너무나 피곤했다.

바쁜 일정, 끊이지 않는 자잘한 사건들로 지쳐 있던지라 그 당시 타인의 섭섭한 마음이 유독 '유별남', '까칠함'으로 느껴졌다.

별 거 아닌 일에 마치 내 잘못인양 따뜻한 말을 건네며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래! 쌩까는 거야! 그러던가 말던가!'


난 누구보다 '잘 잊는다'는 약점이자 강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있어서 나의 망각 능력은 좀처럼 발휘되지 않았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걸까? 기억하지 않으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봐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서운함이 촉촉이 베인 상대방의 목소리가 무한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이런 나 자신이 짜증나 아줌마들의 주특기인 혼자 말하기를 시도한다.

"아오 지긋지긋해. 이 놈의 성격이 문제라니까. 난 착해서 그런 게 아니야~ 성질이 급해서 못 참는 거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게 아니고~ 그냥 불편한 마음을 못 견디는 거라고!!"


이렇게 화장실에서 닦지 않고 나온 사람처럼 찝찝함과 불편함으로 힘들어질 때면 나는 나만의 상상 요법을 시도한다. 이것은 거창한 방법은 아니고 그저 상대에게 미안한 방법이다. 이유인즉슨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한 사람이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는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사고로 먼저 죽었다면,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먼저 손 내밀지 않았던 이 상황을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신기하게도 '죽음'이라는 상상은 나로 하여금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바다같이 넓은 마음까지는 주지 못했지만... 꽉 닫혀버릴 내 마음의 문을 아주 조금 열어주곤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죽음'이라는 명사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내 머릿속에 억지로 밀어 넣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언제까지 머릿속에서 돌아가나 두고 보자고!'라며 나를 내버려 두고 싶었다.


이틀이나 지났을까? 나는 '죽음'으로 만들어내는 나만의 상상 요법보다 더 강력한 것을 만나게 되었다. 의도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순식간에 차가워진 내 마음을 녹여버렸고, '그래 먼저 전화해봐야겠다'라는 마음과 함께 내 손가락을 핸드폰으로 옮겨주었다. 이렇게 나를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글'이었다.

매달 공짜로 제공되는 이북을 다운로드했을 뿐인데...

한번 열어볼까 해서 열어봤을 뿐인데...

하나의 글이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툭 튀어나와서는 내 마음을 만져댔다.


<기준>

'왜 고작 이런 걸로 서운해 해?'

마치 서운함에도

서운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것처럼,


상대의 서운함은

그 '기준'에 미치치 못하는 것처럼

이유를 따져 묻기 시작할 때


사랑하는 사람이

서운함에 마음 아파한다는 사실보다

그 이유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할 때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해요.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서운함을 안아 줄 이유는 충분합니다.

사랑한다면, 상대의 상처에

자신의 기준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안녕, 소중한 사람/ 저자: 정한경)


미안해요. 당신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재단해서...

미안해요. 속상한 당신 마음 안아주기 싫어 외면해 버린 것도...

생각해보니 당신은 내가 참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용기 낸 손가락 덕에 내 마음에는 평화 사절단이 찾아왔다.


정한경 작가님, 감사합니다.

저도 작가님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네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조금씩 노력해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깐죽 대마왕에게 보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