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죽 대마왕에게 보내는 글

남편 받거라!

by 이한나

난 글을 발행하기 전 '논리 타령'을 시작으로 지적질을 일삼는 남편 그리고 그를 쏙 빼닮은 딸아이에게 내 글을 읽어봐 줄 것을 권한다.


그러나 이전 글에서만큼은 달랐다.

글을 쓰는 내내 내 마음이 평온해지고 생각이 정리되는 것을 경험한 나는 그 당시 감정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속히 글을 발행했다.


특히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남편에게 '좋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나는 재빨리 카톡으로 남편에게 글을 공유했다.

남편은 답변은 이랬다.


'그래... 나도 진지한 여자야. 왜 이래?!'


그렇게 바쁜 저녁시간을 보내며 발행한 글은 기억 속에서 흐려졌다.

평소처럼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지만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나는 남편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오빠 나 잠이 너무 안 와. 커피도 안 마셨는데 잠이 너무 안 와. 왜 이러지?"

남편은 차분한 목소리로 "바로 잠드는 법 알려줘?"라고 다정하게 물었다.

"응 알려줘."

"어제 네가 쓴 글 한번 읽어봐. 바로 잘 거야. 크크큭"

"........ 뭐냐? 돌려 까냐? 내 글이 지루하다는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음..... 뭐랄까~~~ 길어. 다 끝난 거 같은데 또 내리니 글이 있고, 또 있고... 암튼 길어~ 이런 글은 말이야. 제목 앞에 괄호 치고 '(진)'이렇게 붙여주면 안 될까?"

"진?? 그게 뭐야?"

"뭐 (진)지 빨고 있다고... (진)짜 길다고. (진)짜 바로 잠들 수 있다고. 이런 표시로 제목 앞에 진이라고 써줘. 그럼 딱 자기 전에 읽을게."


진짜... 깐죽 대마왕.


하지만...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냥 쓴다.

때로는 진지할 때도, 때로는 지루할 때도, 때로는 진짜 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쓰다 보면... 또 좋은 글들이 쓰일 테고...

그것들이 모일 때가 있겠지...

남편에게.

오빠! 픽사(Pixar)의 예전 CEO 애드 캣멀이 들려준 이야기가 뭔 줄 알아?
성공은 말이야~~~자신이 만든 초안과는 전혀 다른 버전으로 탄생한대. 그 말인즉슨 성공할려면 초안은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거야!!!

비록 (진)짜 길고, (진)짜 지루하고, (진)짜 졸린 글이지만...
난 초안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걸 기억해!
초안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이 깐죽 대마왕아!!!!!!!!!!!"

지금 하는 일이 무의미해 보이고... 성과 없는 거 같아 보이지만...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향해 천천히 가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오늘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맛있는 멜론을 깎아 선물한다.

(남편! 네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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