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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Nov 24. 2021

시아버지, 그 위에 며느리

시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요리를 하느라 분주했다.

김치만두를 시작으로 잡채, 소갈비 등 많은 음식을 행복한 표정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손녀들은 '당신은 요리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며 흥얼거리기도 했다.


토요일도 그랬다.

김치 쪽갈비에 된장찌개 그리고 다양한 반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밥통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주걱을 들고 밥을 휘휘 저은 뒤 새하얀 흰밥을 그릇에 덜어 건네주셨다.


이토록 아름다운 밥상을 앞에 두고 아버지는 잔소리로 식사를 시작하셨다.

"밥이 왜 이렇게 질어?"

적당한 찰기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왜 그러실까라는 생각이 들 때, 어머니는 바로 대답하셨다.

"한나가 진 밥 좋아해."


아버지는 어떠한 말씀도 없이 묵묵히 식사를 하셨다.

고마우면서도 민망한 이 상황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버지는 된장찌개를 참 좋아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된장찌개를 먹지 않았기에 어머니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정희 아빠! 된장찌개 왜 안 먹어? 좋아하잖아~ 얼른 먹어!"

아버지는 된장찌개를 먹지 않겠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며 "됐어! 된장찌개가 싱거워."라는 말을 하셨고, 어머니는 곧바로 "한나가 짠 거 싫어해"라며 상황을 종료했다.


진밥까지는 웃을 수 있었지만, 된장찌개에서까지 내 이름이 나오니 그저 송구스러운 마음이었다.

문득 내가  내 의사 표현을 이토록 명확하게 하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요 입은 '그러려니'하는 법이 없이 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조잘거리는 타입이었다.

"어머니~ 왜 이렇게 밥알이 날아다녀요??"

"어~~~ 어머니~ 나 이건 너무 짜서 안 먹을래~"

"근데 김치가 왜 달지? 어머니 난 단 건 싫은데... 담엔 안 달게 해주시면 안 돼요?"

"어머니~ 이제 고구마 심지 마세요. 나 이렇게 캐는 거까지 시킬 줄 몰랐어. 그냥 사 먹을게요. 담부턴 절대 심지 마세요!!!"

하는 것도 없이 차려주는 밥이나 먹는 주제에 참 말도 많은 나였다.


언제인가 너무 솔직한 나의 말에 어머니도 격하게 반응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 나 이건 입맛에 안 맞으니까 안 가져갈래요. 내 스타일 아닌데 괜히 가져가서 못 먹으면 너무 아깝잖아요."

어머니는 "그래"라고 대답하시고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아휴~~ 씨발"이라는 말을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참고로 우리 시어머니는 욕을 찰지게 하는 매력 뿜뿜)

세번째 손가락 올린거 아닙니다! '브이' 한 거랍니다~~~

욕까지 들은 상황에서 이대로 지나칠 내가 아니었다.

"우와... 대박!!! 무슨 며느리한테 그런 욕을!!!! 나 다 들었어! 어머니~~~ 나 들었다니까~~~어머니 지금 욕했지???? 와~~~ 음식 안 가져간다고 씨발이래... 우리 어머니 진짜 너무 하시네."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씽크대만 바라보고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너무 안 가져간다고 하니까. 내가 힘들게 했는데... 우리 아들도 먹을 수도 있고, 다민이도 먹을지도 모르는데... 나도 모르게 욕이..."


나는 한참을 낄낄거렸고, 그 이후로는 먹든 안 먹든 모든 음식을 받기로 결심했다.



월요일이 되면 사람들은 "주말에 뭐 했어?"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그 대답에 시댁에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다들 '쉬지도 못했네. 힘들었겠다'라는 말로 대꾸해 준다.

오고 가는 거리를 떠나서 배우자의 부모님을 뵙는 자리가 아마도 불편하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결혼 초를 생각해 보니 처음에는 시부모님 계신 곳이 너무 어렵고 불편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시댁은 그 어떤 곳보다 편안하고 따스한 곳이다. 

단순히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도 나도 서로가 어려울  때도, 불편할 때도, 상처 입으며 힘겨워할 때도 있었다.

다만 우리는 마음을 숨기기 보다 서로를 향해 솔직해지는 시점이 있었다.

"서운해요"

"그건 좀 불편해요"

"힘들어요"

"좋아해요"

"그렇게 하고 싶어요"라며 표현되었던 내 마음들.


"차라리 돈으로 주는 게 좋겠다."

"이거 맘에 안 든다. 바꿀 수 있니?"

"너의 음식은 내 입맛에 안 맞으니 그냥 식빵이나 다오"

"아이고 별로 볼 것도 없다. 집에나 가자!"라고 표현되었던 어머니의 마음들.


각자가 타인을 믿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 보다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곳.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면서도 혹시라도 상대가 서운하지 않을까 마음을 보듬어주는 곳.

투박해도 서로의 진심을 믿을 수 있는 곳.

그래서 나는 시댁이 편안했나 보다.


돌이켜 보니 그동안 내가 만나기 부담스럽고, 긴장이 되는 곳은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수 없는 두꺼운 사회적 장치를 장착해야 되었던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나를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곳을 떠올리니 몇몇 사람들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

언니들, 부모님, 남편...

이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을 더 힘껏 사랑해 보겠다고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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