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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Nov 26. 2021

ISTJ남편과 ENFP아내의 만남

이번 주는 하루 다섯 시간씩 운전하면서 이동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나는 나이 탓인지 마흔 이후로 장시간 운전하는 것이 힘들다. 이런 나를 위해 남편은 하루 연차를 쓰고 운전대를 잡겠다고 자처했다. 많은 일정 중에서 굳이 속초 일정을 고른 걸 보면 본인도 놀러 가고 싶었던 마음이 큰 것이 분명했다.


오래전부터 남편은 나의 매니저가 되길 소원했다.

"여보~~ 여보가 잘 나가면 돼. 오빠 운전 좋아하는 거 알지? 너는 차 안에서 강의 준비하고, 편하게 자면서 다니는 거야. 그니까 몸 값 좀 팍팍 올려봐~ 오빠가 제대로 모실 테니까~"

꿈같은 상황이지만, 어쨌든 오늘 하루는 남편이 나의 매니저가 되었다.


남편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아이를 챙기고, 나를 깨운다.

계획하고, 그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도착시간을 계산하며 "7시 30분에는 나가야 돼."라는 말로 시간 관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 다르게 행동이 느리고, 예상한 시간에 맞추는 것이 어렵다. 7시 30분을 목표로 잡으면, 늘 내 몸은 7시 45분쯤 준비가 완료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나를 알기에 나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지만 그럼에도 매번 헐레벌떡 달려가고, 뭔가 하나씩 놓치고 다니는 덜렁거림의 극치였다.

하지만 하루 매니저를 자처한 남편의 성격을 알고, 남편의 째려봄을 느끼며, 남편의 깊은 한숨을 대기 중에서 함께 마실 수 있기에 나는 최선을 다해 부지런함을 떨어보았다... 그러나 나는 안 되는 인간이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며 먼저 나가 있는 남편을 생각하니 평소처럼 빠진 게 없나 한번 더 체크하는 의식조차 치르지 못하고 급하게 남편을 따라갔다.

마음은 다급했지만 막상 보조석에 앉으니 좋았다. 운전해주는 남편 옆에서 귤을 까먹다 배부르면 의자를 힘껏 제치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었다. 편하게 화장을 했고, 강의 내용을 체크했다.

그렇게 절망의 순간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ㅣㅁ나어리;ㅏㅁ넝;리ㅏㅓㅁㄴㅇ;ㅣ라ㅓㅁㅇㄴ;ㅣㅏㅣㅏㅇ림ㄴ아ㅓㄹ;ㅣ만어"

강사생활 9년 만에 온 몸에 삐죽삐죽 털이 서면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오빠!!!!!!!!!!!! 나 미쳤나 봐. 정장을 챙겨놓고 안 갖고 왔어. 나 어떡해???"

정장 바지의 주름과 핏을 생명으로 여기는 나는 장시간 앉아있는 동안 바지가 구겨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강의장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는 습관이 있었다. 게다가 한겨울에는 오돌오돌 떨기 싫어 따뜻한 수면바지에 수면양말을 신고 이동하였다.

평소 이동시 복장

불행 중 다행인 것일까?

강의를 마치고 놀러 다닐 생각에 평소 입는 핑크색 수면바지가 아니라 스키니 진을 입고 있었다. 스타킹도 온데간데 없었기에 나는 청바지에 맨 발로 구두를 신고 강의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오 마이 갓!!!! 청바지를 가려보려고 코트까지 입고 강의해서 땀범벅이 됨.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미칠 것만 같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떠올랐다. 세상 치사하고 비열한 '남 탓' 그것도 '남편 탓'을 하면서 정신승리를 하는 것이었다.

"오빠~ 내가 여태껏 이런 적이 없는데... 아마 오빠가 눈치 줘서 급하게 나오느라 그런 것 같아. 오늘이 강사생활 중 최악의 날일 거야."

힘들게 운전해주고 욕이나 얻어먹는 남편은 분명 마음이 상하고 어이없다는 반응이 나올 것이 당연한데... 이 남자는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수긍을 했다.

"내가 엘리베이터 잡으러 나가니까 너도 불안했겠지. 너도 내 눈치 보느라 고생이 많네. 그리고 말이야..."

남편은 아주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너도 나 때문에 힘들겠지만... 너를 보고 있는 나도 복장 터져 미칠 거 같아. 아침에 깨워도 안 일어나고 셔틀버스 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느긋느긋 한 다민이 보는 것도 돌아버릴 거 같아 먼저 나가는데... 너까지 그런 거 보니까 나도 속 터져서 못해먹겠다. 나 진짜 결심했어. 회사 열심히 다닐 거야! 정말 열심히 다닐게.  매니저 되면 회사의 열 배는 스트레스받을 거 같으니 우리 각자 열심히 살자.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러다 저녁에 만나자. 이게 서로를 위한 길이야."

나는 대꾸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나도 마찬가지거든. 그냥 운전하면서 내 몸이 피곤한 게 낫겠다'라고 속삭여댔다.


2주 전 가족 MBTI 검사받을 때가 떠오른다.

원래도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막상 검사하면서 단 한 개도 동일하게 나오지 않으니 참 신기하기도 했다. 상담사도 우리 부부를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고 "원래 성향이 반대인 분들이 만나면 잘 산대요."라는 말로 우리를 위로했다.

이토록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나와 남편이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 참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역꾸역 대화를 하면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럼에도 도무지 이해 안 가는 것은 포기를 하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우리의 노력이 대견했다


그래서였을까? 닮은 것 하나 없는 부부가 저녁 식사를 앞두고 하나가 된다.

"생선만 빼고 먹자"는 남편과 "바다 친구들은 제외하고 먹자"는 아내.


남편은 "너 나랑 결혼 잘했지? 내가 매일 생선구이 먹자고 했으면 어쩔 뻔했냐??"라며 빙긋 웃었고, 나 또한 "바다 친구들 안 좋아해 줘서 고마워."라며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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