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나 Nov 30. 2021

제발 김치 좀 담지 말라고!!!

드르르르르륵~~ 드르르르르륵, 핸드폰 진동이 테이블 전체를 흔드는 것 같았다.

'엄마'였다.


나: 여보세요?

엄마: 한나야, 너 갓김치 먹을래? 먹을 수 있어?

나: 응 먹을 수 있지(김치 담았나 보네. 좀 주려고 그러나?)

엄마: 니가 어디서 먹어봤어? 너 진짜 먹을 줄 알아?

나: 엄마가 전에도 해준 적도 있고 먹을 줄은 알아.

엄마: 너 진짜 갓김치 먹을 거야?

나: (나를 주고 싶은 거 같은데 거절할 수 없지!) 어! 좀만 줘!! 많이 말고~ 좀만!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엄마의 짜증이 답변으로 돌아왔다.

"아이~ 그럼 갓김치 담아야 되잖아. 오늘 아주 힘들어 죽겠는데... 어쩔 수 없네. 담아야지 뭘!"

어이를 상실한 나는 "뭐야~ 그런 거면 주지 마! 나는 이미 있는 거 주는 줄 알았지! 됐어~ 안 먹어도 돼. 내가 김치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라고 말하며 갓김치의 이야기를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아~ 정말 왜 자꾸 농사지었다고 이런 걸 주는 거야. 엊그저께는 배추 받아서 어쩔 수 없이 배추김치 담고, 총각무 줘서 총각김치 담고... 짜증 나게 오늘은 갓을 주고 갔잖아. 내가 진짜 오늘은 김치 담기 싫어서 다른 사람들한테 갓을 줄려고 하니까 다 싫다고 하고... 어쩔 수 없이 갓김치를 담아야 되잖아... 아오!!! 암튼 너는 내가 갓김치 담아줄게!(깊은 한숨 연발)"

순식간에 당한 공격이어서 방어할 여유조차 없이 전화는 끊어졌다.


갓김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던 메뉴가 18년 전에도 있었다.

18년 전, 임신 중이었던 나는 동태전이 미치도록 먹고 싶었다.

명절날 몇 개 집어먹는 게 다 였던 나였지만, 뱃속에 아이가 있는 동안만큼은 동태전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엄마 나 동태전 좀 해줘! 나 정말 동태전 먹고 싶어."

엄마는 갓김치를 대할 때보다 더한 짜증을 내며 귀찮아했고, 해주지 않았다. 직접 해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생이었던 나는 동태전이 고급 기능을 요하는 요리로 느껴져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렇게 동태전이 너무 먹고 싶어 참지 못했던 어느 날, 나는 냉동실을 뒤져 꽁꽁 언 동태포를 꺼냈다.

엄마가 집에 돌아와 바로 동태전을 할 수 있도록 해동을 시켜놓겠다는 큰 의미에서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생각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엄마는 집에 돌아와 식탁 위에 놓여진 동태포를 보고 "아유~ 다 녹아서 오늘 안 하면 안 되잖아. 이걸 대체 왜 꺼내놔???"라며 오만 짜증을 냈다.


이런 갓김치 상황 같으니라고!!!!

나는 그 길로 나와 곧 결혼할 지금의 남편에게 전화해 동태전을 부르짖으며 엉엉 울어댔다.

감사하게도 한 번도 요리해본 적 없는 남편이 어디서 배워온 건지 틈만 나면 동태전을 부쳤다.


'임신했을 때의 서운함은 평생 간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아줌마들 여럿이 모여서 '서운함 배틀전'이 열리기라도 하면 아팠을 때 혹은 임신했을 때 일어났던 일들이 대부분이니 이건 확실하다!

나 역시 괜찮은 줄 알았는데... 18년 전 동태전 사건이 즐겨먹지도 않는 갓김치 덕에 소환되었다.

나는 갓김치 받을 날만을 기다렸다. 그냥 넘어갈 내가 아니었다. 드디어 기회를 잡은 나는 엄마에게 공격을 개시했다.

"이제 김치 담아주지 마. 누가 담아달랬어? 담아주면서 힘들어 죽겠다는 둥, 귀찮다는 둥 오만 짜증 다 내면서 왜 김치를 담아주는 거야?? 나는 있는 거 주는 줄 알고 달랬다가 진짜 어이없어서... 나 진짜 이제 안 줘도 되니까 제발 담지 마~ 알겠지? 이 놈의 갓김치 때문에 임신했을 때 엄마가 짜증 내면서 만들어 준 눈물의 동태전까지 떠올랐으니까~ 다시는 하지 말라고!!! 아오~ 김치 한 번 먹는다고 했다가 된통 당했네~"


엄마는 무슨 속인지 한참을 웃더니 말했다.

"야! 나도 힘들어서 그랬다! 우리 딸한테도 힘들다고 말도 못 하냐??? 내가 힘들어도 우리 막내딸이 먹고 싶으면 해 줄라고 물어본 거지~~! 치사하게 동태전 이야기까지 꺼내냐?"

말문이 턱 막힌 나는 '아이고 어머니... 대체 어머니는 왜 그러십니까?'라는 애통한 마음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우리 엄마는 보통 머릿속에 상상되는 '아름다운 어머니의 상'과는 달랐다. 어린 시절을 비롯해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내가 그려왔던 어머니 상과는 사뭇 다른 우리 엄마를 보면서 의아해하기도 했다. 대체 언제, 어떻게 내 머릿속에 '아름다운 어머니의 상'이 새겨진 건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내 안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어머니 상'은 시도 때도 없이 나의 엄마를 향해 평가의 잣대를 내밀었다.


"오빠! 내가 우리 엄마를 다른 엄마들이랑 너무 비교했나 봐. 엄마 하면 떠오르는 이상적인 모습에 내가 너무 집착했던 거 같아."

남편은 씩 웃더니 "이게 다 고두심(배우) 때문이야. 고두심뿐이야?? 친정엄마에 나오는 김해숙(배우)이며, 또 엄마로 자주 나오는 김혜자(배우)며... 우리가 TV로 너무 인자한 엄마들만 보다 보니까 현실을 몰랐던 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장모님이 자식들 안 사랑하겠냐? 그저 사랑하는 방식이 다른 거지 뭐~!"라는 말로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랬다. 나는 한 평생 우리 엄마를 TV에 나온 엄마들과 비교하며 살아왔다.

엄마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였지만, 나는 엄마를 향해 엄격한 기준을 내밀며 다른 엄마가 되길 바랬다.

고두심, 김해숙, 김혜자가 연기하는 엄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우리 엄마 역시 자식들을 무한 사랑하는그냥 엄마였는데 말이다.

오늘도 엄마는 동치미를 담아 나에게 건넨다.

무를 통째로 주면 귀찮아하고 안 먹을 거라는 것을 안 엄마는 먹기 좋게 썰었으니 바로 떠먹으면 된다고 알려준다.

몸이 아파 짜증은 내도 나를 위해 김치를 담고 아빠에게 김치통 위에 '한나'라고 적으라고 시킨다.

그럼 우리 아빠는 꾹꾹 눌러 '이쁜 공주 꺼'라고 적는다.


엄마 그리고 아빠, 사랑해줘서 고마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줬던 것처럼...

지금 엄마의 모습, 지금 아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딸이 되어볼게.

비록 징징거리고 짜증 잘 내는 딸이지만... 엄마 닮아서 그런 거 알지??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매거진의 이전글 ISTJ남편과 ENFP아내의 만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