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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Dec 17. 2021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2021년 '쇼미더머니 10'이 끝났다. 지난 무대의 모습을 회상하고자 음악 플레이 리스트에 쇼미더머니 음원을 차곡차곡 담아놓는다. 남편과 나는 초고속의 랩은 따라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그저 중간에 들어가는 멜로디 '훅'정도를 흥얼거린다.

여느 때와 같이 멜로디 부분을 따라 불렀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사진출처: 쇼미더머니 10 영상 캡처 <베이식>

딸아이는 깜빡이도 켜지 않고 불쑥 우리의 노래에 끼어들었다.

"잠깐! 이 노래 가사가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이 안 돼. 진짜 말도 안 되는 가사야!"

우리 부부는 황당한 표정으로 동시에 물었다. "뭐가?"

딸아이는 어이없다는 듯 랩을 쏟아낸다.

 "아니~ 어떻게 만남이 쉬워? 사람을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이별이 쉬운 거지. 아무리 좋아하다가도 이사 가거나 전학 가면 알아서 이별 되잖아. 그게 아니면 '헤어지자'라고 하면 끝인데 이별이 뭐가 어렵다는 거야? 이별이 훨씬 쉽지. 노래 가사가 말이 안 돼."


우리는 아이에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이기에 '만남보다 이별이 어렵다'는 것을  여러 차례 설명해 주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아이는 반복되는 설명이 듣기 싫었는지 "알겠어~ 이별 슬픈 거 인정!"이라는 말로 수긍하는 척 해보였지만 여전히 '이해불가'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속닥이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모태 솔로인 딸에게는 만남이 가장 어려움.
딸에게 이별이 만남보다 어렵다는 것을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함.
딸이 커서 좋아하는 남자랑 헤어져서 펑펑 울다가 잠이 드는 날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임.


나 역시 고등학생 시절 발라드 가수의 이별 노래를 외우고 따라 불렀지만, 한 번도 그 가사에 고개를 끄덕여본 적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그대 없는 날 보죠...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요.

내가 왜 싫어졌는지 가르쳐 줄 순 없나요. 아직도 그대 사진은 날 보며 웃고 있는데..."

그러나 남자 친구와 처음 이별을 겪었을 때 노래 가사가 나의 삶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수도 없이 같은 노래를 들으며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아대곤 했다.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모를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들이 참 많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요즘 나의 절친은  밤마다 나에게 전화해 울부짖었다.

"한나야~ 나 진짜 회사 다니기 싫어. 다른 거 뭐 할 게 없을까? 아... 잠들고 일어나면 또 아침이 오겠지? 그럼 회사에 가야겠지? 나 어떡해..."

회사에 가기 싫은 이유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절친은 관리자급의 상사와 옆자리를 앉게 된 이후로 부쩍 회사에 대한 괴로움에 몸서리를 쳤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대체 싫은 이유가 뭐야? 싫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라며 물었다. 친구는 눈알을 굴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뭐가 떠올랐는지 이야기를 쏟아냈다.

"일 시켜서 싫어. 일을 시키는 게 맞는데... 내가 당연히 그 일을 받아서 하는 게 맞긴 한데... 뭐랄까 나도 모르겠어. 싫어. 나한테 말 거는 것도 싫고, 전화 오는 것도 싫고... 왜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일들을 시키는 것도 싫고... 물론 내가 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고! 근데 내가 이상한 건지... 그냥 싫다. 그분도 잘해보려고 애쓰는 게 보이는데... 그래도 싫어."

나는 친구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넸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굵직한 이유도 없이 상대를 미워하는 친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친구의 반복되는 투덜거림에 나도 모르게 친구를 향해 "야! 너네 상사도 불쌍하다. 그렇게 사람을 미워해? 그 사람이 일 시키는 게 당연한 건데..."라고 말했고, 이별이 더 쉽다는 딸아이처럼 '이해불가' 표정까지 보너스로 안겨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다르다. 친구의 마음을 백 번 이해한다.

나도 최근 일을 하면서 딱히 나에게 비난받을 잘못을 하지 않지만 함께 일하면 내 에너지를 쏙쏙 뽑아먹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이 대화만 해도 숨이 막히고, 짜증이 난다는 것을 경험한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요즘은 어때? 힘들지? 너 진짜 힘들겠다. 어떻게 같이 일하냐? 난 잠깐씩 봐도 이렇게 힘든데... 그래 뭔지 안다니까~ 우리가 이유 없이 그 사람이 싫은 게 아니야. 뭐랄까... 큰 잘못은 없는데 그냥 안 맞아.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으니까 같이 있으면 힘든 거야!! 불쌍한 것~~ 옆자리에 앉아서 우짜노..."라는 말을 하며 철저한 아군이 되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던 것들.

남의 신발을 신고 십리를 걸어보지 않고선 그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던 말이 이래서 나왔나 보다.

그렇게 상대의 마음을 느껴볼 수 없었음에도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타인에게 조언하고, 다그치고, 가르쳤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고견이라 여기며 내 뜻대로 따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얼마나 손가락질했던가!


글을 쓰며 반성을 해본들... 나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이후에도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들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조심스럽게 다짐해본다.

그냥 입이라도 다물고 있어야지...


나는 '너'가 아니었기에... 나는 겪어보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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