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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Aug 17. 2022

글 쓰는 게 좋긴 개뿔!!!

"제 취미는 글 쓰는 거예요.
정말 다른 거 안 하면서
마음 편하게 글 쓰며 사는 게
제 소망이에요."


'헐... 내가 진짜 이런 말을 했다고??? 글 쓰는 게 좋기는 개뿔!!! 음... 뭐랄까?? 나 생선 안 좋아하는 데 아주 가끔 아귀찜이 맛있거든~ 아마 글 쓰면서 살고 싶다는 말은 오랜만에 먹은 아귀찜이 입에 착 붙는 그런 상황 같은 거야! 근데 연달아 생선을 먹고 싶진 않아! 글쓰기도 그래...'


물론 글이 완성될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글이 쓰고 싶어 안달 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근데 지금 글을 왜 쓰고 있냐고???'

그렇게 나는 자발성, 자율성과는 다른 느낌으로 보증금을 걸고 매일 글을 쓰는 모임에 참여하거나, 매주 2개의 글을 발행하는 모임에 함께 하며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나란 인간을 잘 알고 있다.

불타오르는 호기심으로 냄비처럼 쉽게 끓어오르나, 진득하게 맛을 우려내기는 버거운 빠른 포기력의 소유자. 청소년 시절에는 작심 한 시간도 어려웠고, 아무리 중대한 시험을 앞두더라도 잠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져버리는 나였다. 오죽 잤으면 청소년기 시절 아버지는 내 책상에 성경구절을 적어놓으셨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불행하게도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은 내 안에 닿지 않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일을 준비해야 하는 다급한 순간에도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면 '일단 좀만 자자'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눈을 감아버린다.

'아... 나란 인간....'

-집에 있는 날이면 방광에 찬 오줌을 빼내기 위해 움직일 뿐 오후가 되도록 절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나.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목 앞까지 일정이 다가오면 안 되겠다 싶어 대충 흉내만 내자는 걸로

타협하는 나

-늘 처음에만 뜨거워 헬스장에도 영어공부에도 초기 비용만 쏟아붓는 나...


참 한심하다.

나란 인간은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


글을 쓰면서 한참 스스로를 혼내다 보니 괜스레 화가 난 나는 나를 변호하고 싶었다.

"꾸준함은 없었어도 내가 해야 할 것들은 다 했잖아~  잘하진 못해도 꾸역꾸역 졸업했잖아~ 비록 중간에 통계 수업 F 받았지만 다른 걸로 메꿔서 졸업 요건 충족했고, 한 번에 통과는 못했지만 논문도 끝까지 썼잖아~ 봐봐~ 해야 될 건 어떻게든 했네~ 집중력 떨어지는 거 알고 할 일 있을 땐 핸드폰 잠궈서라도 해야 할 일도 하는데 뭘 그렇게 스스로를 못 괴롭혀 안달임??? 못 잡아먹어서 난리네~ 게다가 나 저혈압이잖아~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성찰, 자성, 반성... 싫었다.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그저 잘했다고, 괜찮다고 하며 나를 안아주고 싶었다.

밖에 나가서는 "이 정도면 훌륭해~ 어떻게 사람이 완벽하니? 괜찮아! 좋아질 거야~"라는 말들을 1초에 한 번씩 내뱉을 만큼 잘하면서 나에게만큼은 왜 그리도 엄격했던 것인지... 나의 목을 세게 조이며 지금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든 한 걸음 더 나아가려 몸부림치는 것이 겸손이라 믿어왔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돌이켜본다.


이런 억울한 마음은 한 달에 두권 골라 볼 수 있는 이북 앞에서 철저하게 드러났다.

제목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는 책 "일단 나부터 칭찬합시다"

프롤로그에 있는 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은
자신의 존재를 긍정했을 때
활기가 넘치고 활성화되며,
잠재되어 있던 힘이 발휘됩니다."


나의 존재를 긍정했을 때 활기가 넘친다는 말.

그리고 잠재되어 있는 힘이 발휘된다는 말.

저자는 말했다. 뇌는 누가 칭찬을 하는지 상관없이 칭찬의 말을 들으면 행복 호르몬(옥시토신, 도파민, 세로토닌 등) 분비를 증가시켜 행복감을 누리게 되니 남에게 칭찬받기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를 칭찬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행복의 비법이자 잠재된 능력이 발현되는 비결이라고 말이다.


늘 그래 왔다.

-글을 쓰면서 좋은 것은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

-생각지도 못한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

-스스로를 꾸지람하며 더 나은 내가 돼가는 것...

그 시간이 나를 성장시키는 순간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휘몰아치는 억울한 마음 앞에서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힝... 나도 칭찬이 필요해..."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한 달에 두세 번 '나의 날'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의 날'엔 아침부터 분주하다. 그 누구와도 만남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부터 샤워를 하고, 메이크업을 하며,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일단 점심에 애슐리를 갈 거야~ 재밌는 영상을 보면서 천천히, 실컷 먹어야지~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을 거야~밥 다 먹으면 후식으로 일리 커피를 마셔야지~ 애슐리에 커피가 있지만 커피만큼은 커피 전문점에서 마실 거야. 그리고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읽다 머리를 자르고, 피부과에 갈 거야. 오늘은 나의 날이니 나를 위해 돈을 쓸 거야~ 그럴 거야. 그렇게 보낼 거야."


그랬다. 스스로 만든 '나의 날'에 하나도 빠짐없이 계획대로 움직이는 내가 있었다.

업체들이 카톡을 보내고, 전화를 해도 거절을 누르며 "먹어~ 나중에 연락하면 돼. 오늘은 강의 준비 걱정하지 말고 즐기자. 그래도 돼."라며 오롯이 나를 챙겼다. 그런 사이 입에 뭐가 묻었나 싶어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내 얼굴을 봤는데... 세상에 내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늘 거울 앞에서는 메기수염처럼 생긴 팔자 주름과 그늘진 미간주름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내가 내 미모에 감동을 받으며 눈을 껌뻑거렸다.

"너무 예쁘잖아~ 나 왜 이렇게 이쁜 거야? 어머나~ 소중해~~~"

쉬는 날 밀린 집안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있는 내가 참 좋았다.

신기하게도 그런 날이면 내 마음엔 천사들이 강림한 것인지 태평양처럼 마음이 넓어지고 어떤 일에도 미소로 응대하며 세상을 껴안는 내가 된다.


오늘도 나는 집 앞 투썸에 와서는 좋아하는 케이크 한 조각을 내게 선물하며 글을 쓴다.

이제부터는 나를 도닥이며, 잘해온 것들을 칭찬하며, 나를 위로하며, 나를 치켜세우며 내 안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싶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칭찬으로 글을 마무리해본다.

1) 건강 생각해서 케이크를 반이나 남겼다.

2) 잠보 엄마인 내가 딸내미 나갈 때 벌떡 일어나 건강 쥬스를 챙겨주었다.

3) 소중한 글을 완성했다.


오늘은 더 나를 아껴주기 위해 필라테스를 가야겠다!

"한나 최고!"

그리고 내 글을 읽은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도 칭찬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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