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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Aug 18. 2022

여보! 나 출판사에서 메일 받았어!

feat. 반려메일


"오늘 글 너무 정신없던데. 딱 구독 취소하고 싶은 글이야~ 신기하게 구독자들 쭉쭉 나갈 줄 알았는데 안 나갔네!  네가 봐도 이번 글 별로지 않아? 뭐랄까~~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빨리 글은 마무리 짓고 싶고, 어떻게든 끝은 봐야 하니 이것저것 연계성 떨어지는 이야기들 다 가져온 거 같다니까~"


'와~~ 이 새끼 봐라... 창작물을 대하는 기본 자세가 안됐네. 저 깐족거리는 거 어떻게 하면 좋지?? 팰까??'

불 꺼진 침대 안에서 썩어가는 내 표정을 봤을 리는 없겠지만 침묵에서 흐르는 냉랭한 기류를 눈치챈 남편은 속히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오빤 말이야~ 여보가 먼저 어떠냐고 물어봐서 말해주는 거야~ 건설적인 피드백을 해 줘야 되지 않겠어?? 누구보다 네가 잘되길 바래서 하는 말인 거 알지?"


다행히 매번 글을 쓸 때마다 구독자가 빠져나가는 불상사가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 명이 늘어난 것이 아닌가??? (구독자님, 감사합니다!)


브런치에는 착한 구독자님들이 너무나 많다.

부족한 내 글에 '라이킷'을 누르고, '공감해요', '마음에 여운이 남아요', '마음이 통했나 봐요', '저도 작가님처럼 해보겠어요!' 등등 예쁜 말들로 내 마음을 촉촉하게 해 주니 말이다. 그들의 따스한 한마디 때문이었을까? 내게는 밀어낼 수 없는 묵직한 용기가 장착되었다. 그 용기는 전부터 생각해오던 출간 기획서를 작성하게 만들었고, 수백 군데가 넘는 곳에 원고를 투고하도록 이끌었다.

'그래 나도 내 글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받아보겠어.'

'궁금해... 내 글이 누군가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하루하루, 매일매일, 순간순간... 초조함 그리고 기대감으로 핸드폰 메일을 연다.

안타깝게도 내 메일함에는 함께 할 수 없다는 반려 메일이 쌓여간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기분이 좋아지는 고급스러운 메일을 받았으니...

"(상략) 저희는 평론가는 아닙니다. 오직 저희 출판사에서 발행할 때의 적합성만을 검토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따라서 소견일 수 있으며,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회에 더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후략)"

나는 메일을 읽으며 혼잣말을 시작했다.

"그래요. 언젠가라도 당신들과 좋은 인연을 맺고 싶네요. 꼭 그러고 싶어요. 당신의 격에 어울리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아름다운 메일을 서너 차례 읽다 보니 두 달 전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원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교수님을 강의장에서 만난 것이었다. 교수님은 곧 강의가 시작될 것을 알기에 꼭 해야 할 말만 하시겠다며 강의장 문 앞에서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학자가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관점이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학문적 지식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거든. 다른 학자들은 또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보겠지. 내 것이 옳다며 타자의 것을 배타하면 안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 것을 주장할 때도 타인에게 거부감 들지 않게, 너무 쎄지 않게..."

(그저 내가 들었던 기억을 토대로 적다 보니... 교수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온전히 담지 못해 아쉽다)

 


소중한 반려 메일과 교수님의 이야기...

그것은 내 마음속에서 콜라보를 하며 과거 내가 학생들에게 퍼부었던 지독한 비평의 기억을 끌어냈다.

고급스럽지도, 예를 갖추지도 못했던 내 모습들...

짧은 시간 내에 내가 컨설팅한 학생이 우승했으면 하는 바람에 차가운 비판을 쏟아내고, 즉각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사람을 놓쳤다. 그리고 그것이 주관적인 내 관점이라는 것을 놓쳤다.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다.


다행이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나는 어쩌면 이 메일을 받기 위해 투고를 했던 것은 아닐까?

당분간은 반려 메일을 받아도 덜 우울할 거 같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치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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