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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ul 17. 2022

'몰라요' 밖에 몰라?



'아놔... 그냥 쉴 걸...'

8월 비수기를 준비하며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주력이 아닌 청소년 강의를 한 차례 맡은 것이 실수였다.

"얘들아~~~ 일어나요!! 일어나자!"

'강의도 하기 전에 잠부터 깨워야 한다니... 역시 청소년 강의는 청소년 전문가들이 해야 되는구나. 나는 아니야... 얘네들은 대체 왜 이렇게 자는 거야!!!! 왜 미동도 없냐고!!!'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쯤 눈을 뜨고 있는 학생 몇몇이 나에게 조언을 한다.

"강사님, 뭘 해도 안 일어날 거예요. 3교시쯤 되면 일어나니까 그냥 포기하시고 하세요. 저희는 할 거니까 눈 뜨고 있는 저희들 보면서 하세요. 저희는 하고 싶어요." 

그렇게 힘겹게 자기소개서 특강이 시작되었다.

몇몇 아이들은 배운 대로 자신의 성장과정과 성격의 장단점을 술술 써 내려갔다. 반면에 잠은 자지 않지만 어느 것을 써야 할지 몰라 '저는'만 적어 놓은 채 멍하니 칠판만 바라보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이 무언가 적어냈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가까이 다가가 질문을 했다.

나: 혹시 취미생활이 있니? 뭐 할 때가 즐거워?

학생: 그런 거 없어요.

나: 그래도 좋아하는 게 있을 건데~~~?

학생: 진짜 없어요.

나: 그럼 사람들한테 들었던 기억나는 칭찬이 있을까?

학생: 딱히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성실하다 정도... 제가 늦은 시간까지 아르바이트하는데도 학교에 지각하지 않고 빠지지 않아서 그렇대요.

나: 좋다 좋다~~~ 성실함이 얼마나 큰 장점인데~~~ 대단하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말이야~~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사장님이나 다른 분이 해주신 이야기는 없어?

학생: 그냥 고깃집 알바예요. 써빙하고 설거지하는... 딱히 별 이야기는 없는데...

나: 괜찮아~~! 일단 우리 성실성을 어필해보자! 


다행이었다. 아이의 장점인 '성실성'을 부각할 만한 무언가의 스토리를 찾았으니 이제 써 내려갈 일만 남았다. 몇 마디 안 되는 말이지만 묻는 질문에 답해주는 것만으로 고마웠던 나는 "좋다! 좋아~!!"를 연발하며 학생의 손에 연필을 쥐어 주었다. 내 손에 학생의 손이 닿는 그 순간이었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촉을 18살 학생의 손에서 느끼다니...

'이건 아닌데... 이런 느낌이 날 수가 없는데...' 나는 학생의 손을 다시 잡아보았다.

손바닥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겉피가 다 벗겨지고 맨들맨들하면서도 까슬까슬한 손.

눈으로 보니 학생의 손바닥은 피부의 노란기는 없이 붉은 채로 있었고, 손 끝이 다 갈라져 있었다.

"맨 손으로 설거지하는 거니?"

나의 질문에 고개를 끄떡이는 학생.

"안돼. 절대 안 돼. 세제가 얼마나 독한데!!! 손 안 아프니? 불편해도 꼭 장갑 껴야 해. 알겠지? 꼭 장갑 껴야 된다. 에효... 얼마나 아팠을고..."

이후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나는 학생의 한 마디가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박혀있다.

"제가 무조건 벌어야 되는 상황이라서요."


그놈의 '몰라요', '생각 안 나요'만 뱉어내는 학생들이 싫어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학생들 강의는 하지 않겠다고 짧은 시간 동안 수십 번 다짐했는데... 학생의 손을 잡은 그 순간 꽁꽁 얼었던 마음이 눈 녹듯이 내려앉았다.

'나도 몸이 힘들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내일 일조차 고민하기도 싫은데... 너는 어땠을까... 학교 마치자마자 늦은 시간까지 아르바이트하면서 얼마나 몸이 고됐을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면 행복한지, 어떤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는지 생각해보기엔 너도 하루하루가 많이 힘들었나 보다...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너에게 오늘의 특강은 버거운 시간이었을까?'


"괜찮아. 한 문장이라도 써봐. 선생님이 도와줄게" 나의 간절함이 닿아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학생은 '저는 성실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물개 박수로 칭찬하는 나를 보며 학생은 씩 웃었다.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학생에게 말했다. "너가 원하는 곳에 취직하면 좋겠다. 이런 성실함이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거야."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다 아주 오래 전 중학생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샤프를 꾹꾹 누르다 샤프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친구에게 샤프심을 빌리려고 했다.

"영미(가명)야!! 나 샤프심 좀 빌려주라~"

"미안한데... 나는 닳아 없어지는 건 안 빌려줘."

그때 친구의 대답에 순식간에 멍해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서 영미는 '세상 치사하고 인정머리 없는 친구'였기에 '나도 닳아 없어지는 건 빌려주나 봐라!'라는 생각으로 단단히 마음을 닫아버렸다. 그러나 이후 영미의 상황을 알게 된 나는 지금도 영미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영미는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여의고, 집에서 함께 살게 된 새로운 가족으로 인해 준비물을 사는데도 눈치를 보며 마음고생을 했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돈을 달라고 해야 했으니 닳아서 없어지는 건 빌려주기 싫었을 수도 있겠다. 영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의 나는 중학생은 아니지만 여전히 중학생 때 모습처럼 내 신경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쉽게 판단한다.

아무것도 적지 못하는 학생을 보며 '글을 써본 적도 없나' 답답해했고.

'모르겠어요'를 남발하는 학생을 보며 '대체 아는 게 뭐냐??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거냐?' 며 그들을 부족하게 여겼다.

그들의 행동과, 그들의 말투, 그들의 자세를 문제 삼으며 쉽게 평가했고, 쉽게 단정 지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모든 행동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어른이라면... 미성년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어른이라면...

한 번쯤은 그들 안에 있는 숨은 마음을 찾아봐 주는 어른이 돼보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써 내려갈 뿐이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럴까?'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상대의 진심을 찾아가보려는 어른...


모든 선생님이 다 싫어할 만큼 막장의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던 나에게 "한나는 뭘 좋아하니?"라고 물으며 다가오셨던 나의 고등학교 3학년 선생님처럼... 아무 가능성이라곤 보이지 않는 나를 향해 "넌 가르치는 일을 하면 참 잘할 거 같아~!"라고 말씀하시며 잇몸을 드러내고 활짝 웃어주셨던 나의 선생님처럼...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도 그런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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