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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ul 30. 2022

아버지 잘 가... 안녕...


"원래 이 맘 때쯤이면 전화가 오잖아. 차 안 막혔냐고, 잘 도착했냐고 아빠가 매번 물어보셨는데... 이제 전화가 오지 않아.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없네..."

남편은 또 눈시울이 붉어진 채 나를 바라본다.

그랬다. 시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난 지 4일째 되는 날, 여전히 실감하지 못하는 남편과 나는 웃었다 울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장례를 마치고 시댁에 가서 이것저것 어머니를 도와 정리하던 중 어머니는 줄 것이 있다며 아버지의 지갑을 꺼내오셨다.

"한나야. 이거 네 아빠가 며느리 주라고 새 돈으로 바꿔놓고 가셨다. 이건 아빠가 주는 거야."

빳빳한 5만 원짜리 지폐가 내 손에 쥐어지는 순간, 가슴 안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솟아올랐고 나는 입술을 깨물며 덤덤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돈을 쓰다듬었다.

'미안해... 아버지...  그렇게 아픈 줄 몰랐어. 우리 만날 때마다 아픈 모습 안 보여주려고 마약 진통제를 두 배로 먹고 나오는 줄도 몰랐어...  미안해... 긴 투병 기간에 익숙해져서 미안해... 아버지는 전화하는 거 좋아했는데 많이 걸지 않은 것도 너무 미안해...'


더 이상의 통증을 견딜 수 없던 아버지는 하루라도 빨리 요양 병원에 입원시켜주길 원했고, 자신의 짐을 버리라는 말과 함께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런 와중에도 아버지는 남편을 향해 "내 걱정은 하지 마. 난 괜찮아."라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는 몰랐다. 우리도 몰랐다. 다음 날이면 함께 통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아버지는 몰랐다. 우리도 몰랐다. 첫 면회에 눈을 감고 만나게 될 것을...

코로나 시기로 원활하지 못한 면회 환경이었지만 고맙게도 아버지는 가족을 다 만날 때까지 자신의 생명줄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의식이 희미한 그 순간에도 아들이 왔다는 것을 알고 무거운 손을 들어 아들의 손을 잡아보려 했던 아버지... 그렇게 모두를 다 만난 아버지는 삶의 숙제를 마쳤다는 듯 힘겹게 이어왔던 생명줄을 천천히 내려놓더니 우리 곁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되었다.


"아버지 이렇게 가는 게 어딨어? 나는 아버지한테 하고 싶은 말 많았는데... 아버지! 내가 한 말 들었어? 아버지 귀에 속삭이던 내 말 들은 거지? 아버지가 눈을 감고 있어서 내 말을 들었는지 너무 궁금해... 아버지 기억나? 나 매니큐어 바르고 오라고 5만 원 줬던 거~ 나 처음으로 발톱 칠하고 좋아하는 거 보면서 그렇게 좋냐고 웃었잖아. 코로나로 일 없을 때 기죽지 말라고, 먹고 싶은 거 실컷 사 먹으라고 돈도 주고... 그때는 몰랐는데 우리 아버지 며느리한테 참 잘해줬네... 고마워..."


입관을 하는 날이 되었다.

깨끗이 몸을 닦고, 수의를 입은 아버지에게 장례지도사는 마지막 길에 섭섭한 마음이 들면 안 되니 마음에 묻어놨던 이야기들을 하라며 옆으로 한 걸음 비켜주었다.

나는 아버지의 시신에 손을 올리고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미워했던 거 미안해. 미워했던 거 미안해... 아버지 잘 가..."


사실 가족을 많이 힘들게 했던 아버지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의 마음에 남아있는 오랜 상흔을 바라보며 나도 같은 편이 되어서 아버지를 미워했다. 아니 미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5년의 투병 기간 동안 다른 사람이 되려고 했다.

공중 화장실에서도 보기 힘든 빳빳한 휴지를 쓰면서까지 돈을 아끼려 했고,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어머니가 쓰는 침대 매트리스를 바꾸는데 보태기도 했다. 가족 여행에서는 지난 시간 아버지로 인해 힘들었다는 자녀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과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아버지...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아버지가 아픈 시간 동안 노력했던 모습이 지금에서야 보이네. 아버지 마음을 빨리 알았어야 되는데... 아버지 마음 기억할게... 아버지, 내 시아버지여서 고마워..."


고마운 내 마음을 남편에게도 알리고 싶던 나는 카톡을 열었다.

 

행복하게 잘 살게.
어머니도 잘 챙길게.
아버지도 이제 아프지 말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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