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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ul 10. 2022

한 번 당해봐야 기억하지?


강사생활 10년, 정직하게 살고자 노력했던 내 모든 삶이 순식간에 부정당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강의가 들어와도 애초부터 내가 영업한 곳이 아니면 수수료를 뗄지언정 에이전시를 통해 진행했는데...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나는 순식간에 나쁜 강사가 되어 있었고, 이 모든 상황을 에이전시와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로 받아들이기엔 큰 상처로 남아버렸다.

강의가 끝나고 홀로 있을 때면 눈에 눈물이 서서히 고였고, 이내 얼굴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억울한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힘겨웠다.  

마음이 아프니 몸도 아파왔고, 음식을 소화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사람이 싫었다. 말하기도 싫었고, 싸우는 것도 싫어질 때쯤... 또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쳐다보니 다행히 내가 참 좋아하는 강사님의 전화였다.

"그래그래~ 우리가 요즘 빌런들을 안 만났어! 좀 조용했다 했어~ ~ ㅏㅁ너이라ㅓㅁㄴ이ㅏ럼니아ㅓㄹ민아ㅓㄹ미나얾;ㅣㄴ아ㅓ림나어림너 ㅏ먼이ㅏ러ㅣㅁ나ㄴ"

내 울음소리에 화가 났는지 나와 함께 실컷 욕을 해 주는 소중한 사람.

그분이 있어 참 다행이었다.


'10년 전 내게 단비처럼 찾아온 그녀'

딸아이가 8살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결심했던 나는 그 시간만 생각하며 순간순간을 버텨냈다. 기다림 속에서 아이는 언제 컸냐는 듯 8살이 되었고, 나는 바라던 대로 운영하던 체육 사업을 접고 기업 강사가 되고자 교육을 받았다. 모르는 분야에 뛰어들어 바닥부터 쌓아가던 시절, 나는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은 목마른 마음과 반드시 해내겠다는 열정으로 새벽부터 벌떡 일어나 가장 빨리 교육장에 도착하곤 했다.

매번 그렇듯 설레는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교육 수료 일자가 가까워질수록 초조한 마음도 커져갔다. 

'이제 어떻게 돈을 벌어야 되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거지?'

어떻게 시장으로 뛰어들어가야 하는지 몰라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거릴 때 단비 같은 그녀가 내게 연락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나게 되었고,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친구가 되었고, 강의하다 속상할 때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의 편이 되어주었다.


그랬다. 그녀는 내가 강의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었고, 때때로 더 강해지라고 꾸짖으며 지금의 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런 그녀는 나를 만나기로 약속하면 꼭 그전에 확인 전화를 한다.

"강사님 우리 이번 주 만날 거지? 나 장 보러 왔어. 리코타 치즈 만들 재료 좀 사 가려고~ 이거 진짜 금방 하니까 걱정하지 마~~ 내 꺼 먹으면 다른 거 못 먹는 거 알지?"

이 분이 있었기에 나는 오늘도 리코타 치즈를 수저로 팍팍 퍼서 먹는다.


다행이다.

빌런을 만나 가슴이 아팠지만... 빌런 덕분에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이 사람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낀다. 혹시 빌런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사람들을 당연한 존재로 여기진 않았을까?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니... 내 앞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남편이 눈에 띈다. 나는 남편을 부른다.

"여보~~~ 있잖아~~ 빌런이랑 일 안 할 거야. 강의해달라고 하면 웃으면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말해줄 거야. 근데 말이야. 생각해보니 매달 꼬박꼬박 벌어오는 여보가 없었으면... 나 아마... 빌런이랑 일했을 거 같아. 내 자존심 챙길 겨를이 어딨어? 그냥 돈 벌어야지. 여보 매달 우리 가족 위해서 돈 벌어줘서 고마워.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그 순간 그래도 내가 거절할 수 있었던 건 여보가 있어서 그럴 수 있었어. 지금은 여보 믿고 잠깐만 자존심 지킬게. 그렇게 할게. 그리고 다른 곳이랑 더 열심히 일할게!"


마음이 차분해져서 일까? 오래전 오디언 북 '테트, 미래를 보는 눈'에서 들었던 캐나다 청년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갑작스럽게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받고, 가장 친한 친구가 자살을 하며 순식간에 어둠의 그림자로 가득 차버린 청년의 삶. 망가진 삶 속에 머물러 있던 청년은 결단을 내리고자 했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그는 죽기보다 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지만, 도저히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발견하지 못함'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청년은 무엇이 되든 긍정적인 것을 떠올려 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는 '일천 가지 굉장한 것들'이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일상에서 기분 좋아질 만한 순간들을 적으며 블로그를 써 내려가는데...


<일상에서 기분 좋아질 만한 순간들은 무엇이었을까요?>

'차를 몰고 가는데 계속 파란 불을 만날 때'

'러시아워 때 내 차 선이 가장 빠르게 움직일 때'

'사장의 잔소리가 짧게 끝날 때'

'상사가 볼 일 있다며 일찍 나갈 때'


청년의 블로그는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고, '행복한 스푼'이라는 책으로 발간돼서 아마존 10주 연속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불행을 잊게 하였고, 행운까지 가져왔다.


나는 행운까지 바라진 않는다.

그저 빌런으로부터 치유받고 싶기에 오늘도 글을 쓴다.

자세히 바라보면 소중한 순간, 소중한 사람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픈 나를 위해 약을 챙겨 늦은 밤 가져다주는 나의 큰언니.

오고 가며 커피 먹으라고 먼 캐나다에서 커피 쿠폰 챙겨주는 나의 작은언니.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주는 나의 엄마.

'만남의 축복'을 달라며 매일 기도해 주시는 나의 아빠.

'나와 함께 쌍욕을 날려주는 나의 스승이자 벗인 강사님.


'그래. 매일 햇님이 뜨고 화창한 날씨만 계속된다면 이게 얼마나 좋은 날씨인지 몰랐겠지.

내 마음은 사막이 되었을지도 몰라. 나란 인간은 한 번씩 비가 주룩주룩 와줘야 깨달으니까...

이렇게 글을 쓰면서 꼭 잊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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