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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ul 01. 2022

불행을 파는 여자


사람들은 가끔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너는 왜 맨날 마이너스야?"

"맞벌이인데 왜 그래?"

"적금은 안 해?"

"네가 명품 좋아하는 애도 아니잖아?"


'아놔... 순수하게 궁금한 거야? 아님 나를 걱정해주는 거야? 혹시... 나 보면서 위로받냐?

그렇게 걱정이 되면 밥이라도 사야 할 건데... 도통 모르겠네.'


내가 말이야.

적금은 못해도 국민연금은 넣고 있어! 그뿐인지 아니?

개인연금도 있단다.

게다가 할부일지언정 내 명의로 된 차도 있고, 은행과 함께 지분을 나눈 집도 있다고~

대체 뭐가 그렇게 걱정이니?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남의 남편 연봉부터 실수령액까지 묻니?

내가 괜찮다니까! 내가 견딜만하다고!!!

제발 부탁할게~

"말로만 괜찮다고 하는 거 아니야?", "너처럼 괜찮다 괜찮다 하는 애들이 한 번에 와르르 무너져. 그냥 힘들면 힘들다고 해!", "넌 지금 외면하고 있는 거야. 너 지금 힘들잖아!" 이런 말들 좀 하지 마!


짜증이 날 정도로 내 걱정을 하는 사람들로 피로함을 느낄 때쯤 언니의 권유로 '불행을 사는 여자'라는 단편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첫 장면부터 누가 보아도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완벽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한 여성이 나온다. 그녀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볼 때면 애정의 눈빛으로 사람들을 돕는다. '어쩜 저리 선량한가' 싶어 주인공인 그녀에게 한참 집중하던 차에... 뭔가 남다른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보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괜찮고, 얼마나 완벽한지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타인에게 입증하기 위해 타인의 불행을 찾아다녔다. 누군가의 아픔, 힘듦, 눈물 앞에서 '자신의 행복한 삶을 보라고! 이렇게 살아야 된다'며 그들에게 가르쳐댔고 허락도 없이 그들의 삶을 흔들어댄다. 그녀 옆에 있는 누군가는 늘 불행한 사람이었고, 그녀는 불행을 사는 사람이었다.


드라마를 보다 생각이 났다.

합법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남편밖에 없기에 '우리 남편이 최고다'를 세뇌하며 살아가는 나를 보며 "너 연기지? 아직도 남편 좋아하면 병이야~ 네가 아직 남편 실체를 제대로 모르는 거 아니야?"라며 막말을 일삼는 사람들...

개그 욕심이 많아 사람들 앞에서 까불까불 거리는 나를 향해 "넌 여태껏 힘들어 본 적이 없니?(내가 언제 안 힘들다고 함?) 넌 정말 이상하다~ 잘 생각해 봐~ 숨기는 거 아니야?"라는 말로 반드시 나를 불행의 대열에 세우고 싶은 사람들.

그들에게 묻는다.

"왜 그러는 거야? 너네 내 불행을 사고 싶니?"


여기까지가 탐정이 되어 내 삶의 불행을 샅샅이 찾아내려는 사람에게 한 마디 하고 싶어 쓴 글이다.

제발 관심 같지 않은 관심, 내 성질을 돋우는 걱정은 넣어 두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글을 쓰다 보니 이상하게도 타인을 향하던 거울은 끝끝내 나를 비추고 만다. 그리고는 기어코 내게 질문을 한다.

"자네는 타인의 불행을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던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며칠 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이제서야 손가락을 두드리며 물음에 답을 한다.

"아.... 그게 말이죠.... 제가 드라마 여자랑은 완전 다르죠. 근데... 좀 비슷한 것도... 솔직히 톡 까놓고 말할게요. 어제도 불행을 사 왔어요. 제가 아는 분 딸내미가 전교 1~2등 하는데요. 그 집에서 불행 좀 사 왔습니다. 매일 스스로 새벽까지 공부하는 딸내미라 엄청 부러웠는데 세상에~ 걔가 시험만 보고 오면 집에 와서 운다고 하더라고요. 생각보다 시험을 못 보면 엄마 붙들고 운다는데... '어휴 너무 힘들겠다. 차라리 공부 좀 안 해도 멘탈 갑인 우리 딸 키우는 게 낫겠다!' 이러면서 제 행복을 찾아왔어요. 그래서 그런가 우리 딸이 이쁘긴 하더라고요."

그랬다. 나도 그렇게 '아휴... 너도 속상하겠다'라는 말을 하면서 쥐도 새도 모르게 나의 행복을 확인하기 위해 그들의 불행을 사 왔다.

"어머~~ 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차라리 내가 낫다니까"

"나는 양반이여~~" 이런 말들과 함께...


물론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바라보며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도 필요하다지만...  뭔지 모를 불편함이 내 마음에 조금씩 차올랐다.

"미안해요. 당신의 불행으로 내가 행복해지려 했나 봐..."


글을 마치고 싶다. 글쓰기의 진정한 묘미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이후에는 변화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 옳은 듯한데... 오늘만큼은 도무지 다짐을 할 수가 없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조차 먹을 수가 없다. 나는 내 삶과 타인의 삶을 저울에 달고 종종 위안을 삼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나의 그릇대로 내 마음을 정리해보려 한다.

"내 삶에 슬픈 불행이 찾아오면 나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신 앞에서 다 내려놓을게요. 당신도 내 불행을 사요. 내 눈물이랑 아픔을 보면서 지금 당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확인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 행복으로 나를 꼬옥 보듬어 줘....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또 힘들어지면 나도 당신의 불행을 살 거야. 하지만 당신에게서 사온 그 불행으로 당신의 삶 전체를 정의하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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