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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un 26. 2022

후회야... 환대할게...

일단 밥 먹고 만나자!


"엄마! 강의 망쳐서 기분 안 좋은 거야? 그래도 강사료는 주잖아!! 강의 망쳤는데 돈 주니까 엄청 좋은 거 아님??~~~ 그걸 생각하면 기분 좋지 않아?~ 이미 지나간 건데 잊어~~ 엄마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고 좋잖아~ 지금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맛있게 해물찜을 먹는 거야!"


딸아이의 위로 같지 않는 위로가 끝나자 남편이 말을 이었다.

"야~! 이경규가 그러더라. 세상은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딱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게 있대. 뭔지 아냐?? 술 먹고 개 되는 거!!!! 이미 지난 일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지금 네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실컷 먹는 것뿐이야. 그냥 먹어!"

아버지에 그 딸이었다.


지난 간 일, 이미 벌어진 일, 끝난 일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매번 자책하고 후회하면서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내 인생의 모토 '대충 하자'처럼 지나간 일을 쿨하게 넘기면 좋으련만 나는 내 일에서만큼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강의가 끝남과 동시에 강의 중간중간 만족스럽지 못했던 순간순간이 머리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쉬지 않고 계속 돌아간다.(아니면 후회가 들지 않게 퍼펙트해야 되는데 이게 또 그러지도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숨 자거나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나의 무거운 마음도 점차 가벼워진다.


"로또만 되봐. 강의는 바로 끝이야!"라는 말로 생계형 강사임을 자처하며 꿋꿋이 버티다가도... 강의만 끝나면 스스로 벌을 서는 시간이 버거워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참 많이 변했다. 변한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해물찜을 맛있게 먹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 아버지와 그 딸에게 말한다.

"그냥 오늘까지는 힘들어하는 게 내 강의료에 포함된 거야. 고민하면서 후회하면서 그래도 맛있게 해물찜 먹을게~ 오늘은 특별히 파전도 쏜다!!"

곧장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와~~~~~~!!!!"  (단순한 녀석들...)


1년 전쯤 강의를 계속할까 말까 고민하며 써놓은 글이 있었다.


차에서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쩔 건데? 강의할 거야, 말 거야?'

"대답할 게 있냐? 할 거지..."

다시 물었다. '그럼 강의할 때마다 버터를 잔뜩 먹은 거처럼 더부룩함은 어떻게 할 건데?'

"9년 그렇게 살았어... 그냥 살 거야. 원래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이야. 그리고 방금 생각난 건데... 내가 이상한 거 아닐 수도 있어. 자책하는걸 다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


그 당시 '다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애정하는 네이버 '뿜'에서 본 수영 천재 '샤바르시 카라페트얀'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20살의 나이로 세계 수영 선수권에 진출한 그는 첫 출전과 동시에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3년간 각종 대회에서 세운 세계 신기록만 11개로 차기 올림픽의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이미지 출처: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그런 그가 댐 근처를 달리며 체력훈련을 하던 중 전차가 경로를 이탈해 호수로 빠진 것을 목격하게 된다. 도착한 구조대원들은 완벽하지 못한 장비로 인해 우왕좌왕하며 신속하게 구조하지 못했고, 이 상황을 지켜본 샤바르시는 곧장 물속에 뛰어든다. 체력적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혼탁한 물속에 뛰어든 샤바르시는 날카로운 유리 파편에 자신의 몸이 찔리는지도 모른 채 물속의 전차와 육지를 오고 가며 92명의 승객 중에 30명을 구조한다. 시간이 갈수록 탈진상태에 가까워진 그는 자신이 무엇을 데리고 오는지 구별할 수 조차 없을 만큼 지쳐 마지막엔 사람이 아닌 가죽 의자를 데려오고 만다.


후일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샤바르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속에 뛰어드는 것 외에는 인명구조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실수할까 봐 두려웠어요. 물속은 너무 어두워서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요. 나는 잠수 도중에 정신이 없는 나머지 사람 대신 의자를 움켜잡고 나오는 바람에 또 한 명의 승객을 구할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그 의자는 여전히 악몽이 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고요."

뒤로 이어지는 그의 엄청난 이야기가 있었지만... 난 그의 악몽 이야기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다.

'30명을 구했음에도 한 번의 실수를 생각하며 때때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는 말'

저렇게 대단한 일을 해도 후회가 있는데 내가 힘들지 않으려 했던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그랬다. 이런 생각을 한 뒤로 나는 자책을 곁들인 후회의 시간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심지어 "야~~ 이게 복기라는 거야~~ 바둑 끝나고 어떻게 뒀나 스스로 분석하는 것처럼... 나도 더 좋은 강의를 하기 위해 분석하는 시간이라고~~!"라는 말을 내뱉으며 그 시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여유로운 한나씨로 변신한 나는 해물찜 앞에서 사진을 찍어본다.

"그래! 일단은 먹자~~ 맛있게 먹고 이따가 고민해야지~~~ 지금은 맛있게 먹고, 8시부터 다시 후회해야징~~"


(손석구 버전) 후회야... 내가 환대할게.

환대할 거니까 밥 먹고 보자.

내가 맞아줄 것이고, 내가 소화해 낼 것이다.
후회와 자책이 나를 삼키지 않고, 내가 그들을 소화해 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제발 공부한다고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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