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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Jun 22. 2022

엄마!!! 제발 공부한다고 하지 마!!!


전화가 울린다.

'제발~~~ 제발~~~ 역시... 또 엄마다... 벌써 5번째 전화'


"(흠! 목소리를 가다듬고 친절하게!) 여보세요?"

"인터넷이 아무리 해도 안돼. 안 들어가진 다니까~ 너랑 할 때는 됐는데... 이 놈의 노트북!!! 왜 됐다 안됐다 하는 거야?? 노트북이 이런 식이면 안되지!!"

올해 68세인 엄마는 공부를 하겠다며 방통대 국어국문과에 지원하려고 한다.

9월이 되기 전에 컴퓨터를 배우겠다던 엄마는 노트북을 산 다음날부터 나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엄마!! 화상 통화로 연결할게. 크롬 들어가 봐. 한 번 누르니까 당연히 안되지! 따닥!! 두 번 빠르게!! 더블클릭을 하라고~~"

"어머~어머~~ 된다~~!! 따닥 누르니까 되네~~ 타자연습 좀 하고 있을게~~ 또 모르면 전화할게!"


무려 다섯 번의 통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짜증 내는 어투로 말하지 않았다. 평소 짜증 대마왕에 까칠이인 내가 이번만큼은 달랐다.

사실 한 달 전 엄마와 피 터지는 말씨름 후에 나는 꽤나 많은 출혈이 있었고, 이후 열흘 가량 엄마와 연락을 하지 않으며 지치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왔다. 평소 끝이 없는 언쟁을 좋아하는 우리 모녀는 매번 언제 그랬냐는 듯 극적 타결을 하며 깔깔 웃다 전화를 끊는 게 일상이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매번 일어나는 언쟁의 주제는 이렇다.

나: 엄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렇게 말하면 상대가 기분 상할 거란 마음은 안 들어?

엄마: 야~ 그게 나쁜 뜻이냐? 너는 꼭 네 아빠처럼 말꼬리 잡더라. 아주 니 아빠 2세 났네~

나: 뭐야!!! 사과는 못할 망정!!! 엄마가 잘못했으면 쿨하게 사과를 해야지! 왜 사과를 안 해? 매번 말꼬리 잡는다는 말을 하지 말고... 입장을 바꿔 봐!

엄마: 엄마가 그렇게 말해도 나쁜 마음으로 한 게 아니라니까! 너도 나이 먹어봐. 니가 생각하는 대로 말이 나오나~~


나는 머리가 큰 이후로 한평생 같은 주제 "엄마 말 좀 이쁘게 하라니까!"로 엄마와 싸워왔다.

8년 전에는 엄마와 언쟁하던 중 아빠가 들어왔고 아빠는 나를 보며 화가 난 표정으로 서재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한테 그만해라!!!! 네 엄마 나이가 60이야!"

20살이 넘은 뒤로는 아빠한테 혼나 본 적이 없었던 지라 다소 긴장한 얼굴로 아빠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한평생 이야기했는데 안 바뀌어! 진짜 안 바뀌어~~! 바꾸려고 하지 마! 아빠 보면서 참아!! 너는 어쩌다 엄마 만나잖아. 나는 계속 같이 있어야 돼!"


어떻게 해서라도 엄마를 바꾸고 싶어 했던 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겪은 격렬한 언쟁으로 오랜 시간 아팠던 나는 "이제 엄마 살아계실 동안 다시는 안 싸울래"라는 결심을 했다.

신은 나의 결단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엄마에게 노트북을 선사한 것일까?

'컴퓨터를 가르쳐 주며 짜증을 내는지, 버럭 화를 내는지 반드시 지켜보겠노라!!!'라며 나를 시험대에 올려놓은 것 같았다.


도무지 화상통화로는 설명의 한계를 느낀 나는 한 시간 반을 달려 엄마의 집에 도착했다.

가는 내내 '하나님... 제가 짜증내지 않게 저의 입술을 막아주세요!!!'라며 간절히 기도했고, 그 기도는 이루어졌다. 친절한 한나 씨는 "이게 백스페이스라는 거야~~ 눌러봐~ 지워지지??? 복사하기는 컨트롤 + C!!! 잘하네~~" 라며 폭풍 칭찬까지 곁들이고 있는 나였다.


'엄마는 안 바뀐다. 바꾸려 하지 않겠다. 받아들이자... 그냥 우리 엄마다.'

수백 번을 다짐하고 마음을 다잡는 나를 향해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나야~~ 엄만데~ 나도 너처럼 노트북 거치대랑 키보드랑 유선 마우스랑 마우스 까는 것 좀 사줘. 엄마가 돈 줄테니까~~ 이왕 시작한 서비스 끝까지 해야지?"

'아... 하나님... 저 또 까칠해지려고 해요. 서비스를 책임지라는 저 발언이 맘에 안 듭니다.'

하지만 나는 친절한 막내딸이니 공손하게 묻기로 했다.

"아니~ 왕복 세 시간이나 걸려서 가르쳐 준 나한테... 서비스를 끝까지 하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엄마의 41년 단골 멘트가 스멀스멀 나오는 시점이었다.

"야!!!!~~~ 내가 너 낳고 키웠잖아!!!"

"어머???? 진짜... 그냥 고맙다고 해주면 기왕하는 거 기분 좋게 할 거 같은데!!"

엄마는 웃었다.

"으흐흐흐... 고마워서 그래. 고마워 우리 딸..."


우리 엄마는 바뀌지 않는다.

단 하나라도 불편한 마음은 너그럽게 흘려보내는 법이 없는 나란 인간도 바뀌지 않는다.

그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감정 조절에 실패해 버럭 화내지 말고! 짜증 내며 말하지 말고! 원하는 것을 공손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자.


비록 오늘 오전 내내 엄마의 컴맹 탈출 수업을 신청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한 시간 반 앉아 있었지만(엄마 내 글 보고 있지??) 그럼에도 오늘은 엄마의 노고를 기억하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진짜 맛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밥상을 차려준 엄마지만(본인이 최악이라고 말함), 딸 온다고 땀 뻘뻘 흘려가며 밥상을 차려 준 엄마!

-센스와 눈치는 제로여서 가끔 사람들 앞에서 나를 곤란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거센 풍파 다 헤치고 세 딸들 잘 키워준 우리 엄마!

-맛있는 건 먹어보란 말도 안 하고 혼자 다 먹지만(심지어 어린 시절 피자 토핑은 본인이 먹고, 맛없는 빵만 줌)...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풍성한 반찬으로 여러 개의 도시락을 싸줬던 우리 엄마!

-순간 열 받으면 욕도 하고, 소리도 쾍쾍 지르지만... 카톡으로 '고맙다. 사랑한다' 고백해주는 우리 엄마!


오늘은 그렇게 엄마를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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