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마치고 짐을 챙길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가 움직인 동선을 따라 이리저리 둘러본다. 몇 달 전에도 이 회사에 노트북 선을 놓고 왔던 전적이 있던 터라 "노트북선 노트북선"을 중얼거리며 노트북 선을 뽑으려 하는데...
'어랏! 플러그를 꽂는 공간을 덮어둔 뚜껑은 왜 열리지 않는 것인가... 모냐...'
나의 당황스러움을 눈치챘는지 신입사원들은 나를 도와줄 요량으로 쪼그려 앉아 오만가지 연장을 가져와 뚜껑을 열어본다. 안타깝게도 '닫혀라 참깨'로 꼼짝하지 않는 뚜껑이었다.
'저녁 약속 있는데... 나가야 되는데... 미치겠다ㅜㅜ'
다급한 내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아니면 열리지 않는 뚜껑에 뚜껑이 열린 것인지 한 남성분이빈틈에 손을 넣어 뚜껑 자체를 들어보는데!!!!
헐!!! 힘을 주기도 전에 뚜껑이 시원하게 열린다. 그것도 반이 쪼개진 상태로...
다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뭐야... 아예 부러진 거네. 그래서 아무리 돌려도 안됐나 봐"라며 그간 고생이 무색한지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다행히 나는 노트북 선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강의 마치고 벌어진 2>
여느 날처럼 강의를 마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었다. 주차장이 비좁아 지하 2층까지 내려가야 하는 우리 아파트인데...
"와우! 지상 주차장에 자리가 있다니!!~~"
신이 내린 선물을 덥석 물은 나는 땅 위의 공기를 맡으며 주차를 한다. 그러나 상쾌한 기분과는 다르게 주차가 맘에 들지 않는다. 분명 반듯하게 한다고 하는데 뭔지 모르게 비뚤어진 느낌... 그래도 한국인의 정서상 삼 세판을 생각하며 두 번은 더 해 봐야 할 거 같았던 나는 열심히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를 반복했다.
'그래 이제 됐다!'며 앞을 보는데~~~~
'아놔~ 왜 비딱한데!!! 피곤하다... 고만하자... 다른 차에 피해 주는 정도는 아니니...'라는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차를 바라보는데~~
"아!!! 모야!!!! 옆 차가 비뚤어지게 주차한 거잖아. 괜히 저 차에 맞춰서 주차하니까 삐뚤어 보인 거였네! 왜 주차라인을 안 보고 저 차만 봤을꼬..."
급하게 억울함이 밀려왔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내 마음에 며칠 동안이나 머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내 잘못이 아닐지 몰라. 뚜껑이 문제 있던 것처럼..."
"내 생각이 잘못된 게 아닐지도 몰라. 다른 차가 삐뚤게 주차한 것처럼..."
사실... 나는 예상과 다르게 잘못된 일 앞에서 나를 탓하는 것이 자동시스템화 된 사람이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그런 것인지는 잘 알지 못하겠으나... 무언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는 일 앞에서는 모든 것이 점점 내 잘못처럼 여겨졌다.
-'내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내가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알았다면'
-'내가 빠르게 움직였다면'
-'내가 수락했다면'
-'내가 거절했다면'
수많은 가정들로 나를 탓하며 나를 채찍질하고 있는 '나'였고, 그러한 내 모습에 의문을 품지 않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문득 열리지 않는 뚜껑을 보며,
또 삐뚤게 주차된 차를 보며...
모든 것이 내 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서서히 찾아왔다. 그리고는'남들을 향해 믿어줬던 것 만큼 나를 믿어줘도 되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을 내 안에 불러 들인다.
오늘은 내 안에 살고 있는 엄격한 감독관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가끔은 한나 잘못이 아니잖아. 백 프로 한나 잘못이 아니잖아. 한나 좀 그냥 내버려 둬. 좀 이뻐해 줘라!"